MVP노병준 눈물로 쓴 인간극장

입력 2009-11-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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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노병준의 아내 김안나(왼쪽) 씨와 아버지 노흥복 씨가 7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직접 관전하며 응원하고 있다. 도쿄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폐암투병 아버지와 두아이 낳고서야 면사포 쓴 나의 아내…”
포항 배려로 원정응원 동행한 두가족
남편 골에 기도하던 아내눈엔 이슬이
옆자리 앉아 며느리 감싸안은 시아버지
종료휘슬 소리에 “이겼다” 눈가가 촉촉
노병준 “아들·남편으로 떳떳” 눈물 글썽


그토록 기다린 종료 휘슬이 울리자 남편을 간절히 응원했던 아내의 볼에는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녀 곁에 앉아있던 시아버지도 함께 울었다.

7일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알 이티하드(사우디아라비아)와의 2009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포항은 후반 12분과 21분 노병준(30), 김형일(25)의 연속포에 힙입어 2-1로 승리, 아시아 클럽 최강에 등극했다.

93분의 혈전. 포항 구단의 배려로 역사의 현장을 직접 찾은 선수단 가족들도 내내 가슴을 졸여야 했다. 이날 새벽부터 서둘러 원정 응원을 나온 포항 서포터스 구역 한복판에 있었지만 모자를 눌러쓴 노병준의 부인 김안나(25) 씨의 모습은 한눈에 들어왔다. “남편이랑 문자메시지 30통을 주고받았어요. ‘지금 나 경기장으로 가’ ‘오늘 선발로 나간다네. 잘할게. 걱정 마’ 등 특별한 얘기는 없었는데…. 마음을 알 수 있죠. 남편인데.”

0-0으로 전반을 마친 포항이 후반 12분 리드를 잡았다. 남편의 오른발에서 시작된 짜릿한 프리킥 선취골.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두 손을 꼭 모은 채 기도하던 그녀의 눈가에 쉼없는 눈물이 맺힌다.

그때 가만히 자신의 오른편에 앉아 우는 며느리를 감싸는 시아버지. 5개월 전 폐암 선고를 받은 노병준의 부친 노흥복(63) 씨였다. “새벽 1시부터 서둘러 며느리와 일본에 왔심더. 주변에서는 그토록 가지 말라 캤는데, 어찌 안가요. 내 평생에 아들이 뛰는 이렇게 큰 경기를 보지 않으면 어떻게 해요. 그런데요, 이젠 빨리 끝났으면 합니더.”

9분 후 또 한 번 환호성이 터졌다. 김형일의 헤딩골. 초조히 벤치를 서성이던 포항 파리아스 감독이 주먹을 불끈 쥔다. 여전히 눈가가 촉촉한 김 씨의 표정에 그제야 안도감이 서린다. 입가를 두른 흰색 마스크를 턱 밑으로 끌어내린 노 씨도 “이겼다”를 외쳤다.

그러나 ‘모래바람’ 알 이티하드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경기 전, ‘경계령’이 떨어진 모하메드 누르가 후반 29분 한 골을 만회한 것. 그제껏 혼신의 힘을 다하던 포항 멤버들은 아낌없이 몸을 날리며 투지를 불살랐다. 지독히도 지나가지 않던 추가시간에는 노병준이 옐로카드까지 받았다. 초조함에 입술을 꼭 깨무는 가족들.

결국 주심이 긴 휘슬을 불자 가족들은 모두 할 말을 잃은 채 눈물만 계속 흘렸다. 이어진 시상식. AFC와 대회 스폰서사 포카리스웨트가 선정하는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노병준의 이름이 호명됐다. “애기 아빠, 맛있는 것 해줘야죠. 불고기도 매운 닭도리탕도. 큰 자리에서 축복받는 모습을 보니 행복해요. 그냥.” “우리 아들 저기 있죠? 꼭 안아줘야죠. 자랑스러운 녀석이라고.”

믹스트 존에서는 노병준도 울었다. “작년 두 애(수인·수찬)를 먼저 낳고 뒤늦게 면사포를 씌워준 아내와 아픈 아부지가 생각나요. 오늘 두 사람이 경기장에 나왔는데. 아빠는 항상 강한 분인 줄 알았어요.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요. 애기 기저귀 값도 없어 허덕이는 남편을 믿어준 아내도. 그래도 이젠 떳떳한 남편, 아들로 설 수 있어요. 물론, 지금 TV로 저를 지켜봤을 두 아들 놈들한테도. 고마워요. 사랑해요. 그리고 행복해요.”

도쿄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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