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Q ‘영원한 국민배우’ 안성기의 삶과 영화] “아직도 여자가 부담스러우니,나 원 참…”

입력 2010-01-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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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는 동안 안성기는 자주 환한 웃음을 보여 주었다. 그와의 인터뷰는 애초 예정된 1시간을 훌쩍 넘겨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연애/ 별로 해본 적이 … 형제만 있어 여자를 잘 몰라
국민배우/ ‘규격화’싫어 … 그냥 ‘배우’로 불러주면 좋은데
술 / 이제 술맛 알아 ‘박중훈 한잔 소원’도 들어줬지
술집/ 소폭? 좋지 … 여자 옆에 앉으면 부담 돼 안 가
안성기와의 인터뷰는 당초 정해진 1시간을 훌쩍 넘어 2시간만에 끝났다. 인터뷰는 그의 신작 ‘페어러브’(감독 신연식·제작 루스 이 소니도스)의 14일 개봉을 앞두고 마련된 자리였다. 하지만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배우에게 영화와 관련한 의례적인 질문만 하고 끝날 수는 없었다.

정해진 시간이 다되어 몇 가지 질문은 나중에 서면이나 전화통화로 하자고 요청했다. 안성기는 시계를 잠시 보더니 “지금 하지, 뭐”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웃었다. 인터뷰를 끝내고 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한 매니저를 만났다. 안성기와의 인터뷰 때 일화를 말해주자 그는 “워낙, 거절을 못하시는 분이라…”라며 웃었다.


-‘페어러브’에 대한 느낌이 어떠신가요.


“참 좋아.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는 따뜻했지만 흥행 부담이 있었어요. 지금은 관객 반응을 보면서 그런 우려가 씻겼지만 개봉관이 적어서…. 찾을 게 많은 영화 같아. 감독과 함께 배급사를 찾아가 배급 약속을 받기도 했어.”


- 영화 속에서 ‘오빠’라 불리는데 그런 호칭은 얼마 만에 들으셨나요.

“내가 남자 형제들 뿐이라서 거의 없지, 뭐. 쑥스럽고 어색하고…. 대사 중에도 ‘오빠라고 불러’라고 하는데 그게 가장 어색했지. 약간 응큼하기도 하고. 감독이 작가로서 능력이 상당히 좋은 것 같아. 대사톤도 자연스럽고 너무 편했어.”


- ‘페어러브’에 대해 하시고 싶은 말씀이 많으신가봐요.

“이번 캐릭터는 마치 나 같은 면이 많아요. 말투도 좀 느리고 굼뜨잖아, 내가.(웃음) 그런 모습이 영화에서 순수해 보일 수 있는데 꼭 소년이나 젊음 같은 느낌이 들어. 나름대로 가꿔진 내 몸매처럼. 하하하! 준비를 안하면 불안한데. 또 뭐든 갖춰져야 출전하는 편이어서 작품마다 어떤 디테일과 계산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번엔 거의 하지 않았어. 계산하면 눈빛이 맑을 것 같지 않더라고. 대사도 더듬으면 더듬는 대로 갔어.”


- 연애는 많이 해보셨나요.

“하하! 아내 말고는 뭐…. 형제들 사이에서 자라 여자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몰라. 총각 때는 연애하면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 조심스럽기도 했고. 연기하느라 그럴 기회도 별로 없었고. 먹여 살릴 수 있을 때 결혼하자고 생각했어”


- 지난 해 공군에 입대한 큰 아들이 오늘(11일) 첫 휴가를 나왔죠.

“신종플루 때문에 좀 늦어졌어.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군에 다녀오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입대를 권했지. 내가 ROTC(한국외국어대) 출신이어서 복학생의 늙수그레한 재미도 못봤는데 그런 맛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친구들 만나느라 바쁜가 봐. 하하!”


- 배우를 포기하고 싶으셨던 적은 없었나요.

“옛날 일이지. 80년대 검열 등 문제로 표현의 한계가 많았을 때였어. 힘들었지. 이러고도 해야 하나 생각도 했고.”


- ‘국민배우’라는 호칭에 갇혀 산다, 그래서 답답하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으셨나요.

“이젠 그 틀에 적응해 불편함은 잘 모르고 살아요. 평소에 평범하지만 모범적으로 산 것 같아 거추장스럽지도 않고. 영화 속 바른 사나이 이미지가 씌워졌는데, 이젠 다른 역할을 해도 안 어울려.(웃음) 그런데…, 그냥… 뭐랄까…, 이젠 규격화, 정형화한 데 대한 부담이 있지. 배우라고 하면 여유롭고 자유로워 보이지 않을까. ‘국민배우’말고 ‘배우 안성기’로만 불렸으면 좋겠는데. 허허! 그래도 그런 호칭이 참 고맙고 감사하지.”


- 예전에 박중훈이 ‘술 한 잔 하자고 먼저 얘기해달라’는 말을 전한 적이 있는데요.

“그래, 그랬지. 기억난다. 하하! 상대방에게 내가 먼저 술 마시자고 한 적은 거의 없지. 요즘엔 막걸리나 와인을 조금 하는 편인데, 술 한 잔 함께 하면 분위기도 좋아지고, 그래서 요즘 분위기 봐서 내가 먼저 하자고 해. (박)중훈이에게도 문자 메시지로 조만간 한 잔 하자고 했어. 발전한 거지.”(웃음)


- 술은 많이 즐기지 않는 편이시지요?

“술이 예전보다 좀 늘었어. 저녁에 술 생각이 가끔 나기도 하고. 하하! 강우석 감독이 술자리를 많이 챙기는 편이잖아. ‘왜 저러고 살까’ 했는데 이제 그 마음을 좀 알 것 같아. 내가 독주를 잘 못 마시는데 소폭은 소주와 맥주를 적절히 배합하면 맛이 괜찮더라고. 전에 술 마시는 사람들이 날 싫어했겠다 싶어. 항상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니까. 술을 권했는데 거절당하면 기분 나쁜 것도 이젠 좀 알겠더라고.”(웃음)


- 술집도 거의 가시지 않겠어요.

“술 취해 노는 걸 좋아하면 그럴 수도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 여자들 옆에 앉아 함께 술 마시는 것도 부담스럽고. 노래방처럼 칸칸이 들어가 있는 게 싫어. 보고 있자니, 닫힌 공간에서 외로움을 달래는 것 같기도 하고.”


- 많은 연예 관계자들의 경조사에 늘 빠지지 않으시는데, 한 달에 경조사비는 얼마나….


“그건 비밀이지. 하하! 오라는 연락은 ‘당신이 나타나 달라’고 보내는 거니까 가서 축하해주고 함께 슬퍼해야지. 그게 사는 거잖아. 사람들 만나서 기쁨과 슬픔을 나누다보면 느껴지는 것도 많고. 그것도 사는 여유야.”


- 맡으신 직책이나 직함은 좀 줄었나요.

“현상유지야. 하하! 좀 크게 봐선 유니세프 홍보대사,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 등이 있는데 모두 힘닿는 데까지 하고 싶어.”


- 이젠 후배들에게 맡기시면….

“그럼 좋겠는데 서로 바쁘니까. 아직은 내가 앞장서야 할 것 같고. 내년이나 내후년이면 많은 후배들이 40이 되잖아. 분담하자고 하고 싶어. 하하! 아직 때가 아닌 건지, 내가 아직 그러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어. 뭐, 이제 다른 후배들이 나서주겠지.”



○안성기는 누구?

1952년 1월 대구에서 태어나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했다. 70여편의 영화에 아역으로 출연한 그는 68년 이후 스크린을 떠난 10여년의 활동 공백기가 있었다. 그동안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학과에 진학했고, 이후 ROTC 출신 장교로 복무했다.

1977년 ‘병사와 아가씨들’로 다시 영화에 돌아왔고, 80년 그 자신 실질적인 성인 데뷔작으로 꼽는 ‘바람 불어 좋은 날’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8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배우이면서 다정하고 깔끔하면서도 모범적인 이미지로 ‘국민배우’의 호칭을 얻었다. 또 한국영화의 변화를 지켜보며 배우들의 ‘맏형’으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1982년 부인 오소영 씨와 결혼해 두 아들을 두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김종원 기자 wo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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