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1박2일…“이젠 너무 지겹다”

입력 2010-03-18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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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1박2일' 등 TV 예능프로그램의 피로감
정말 오랫동안 보아왔습니다.

'무한도전'이 시작된 것이 2004년 4월이니 벌써 만 5년이 다 되어가는군요. 처음에는 생소한 포맷과 마이너한 출연자 그리고 산만한 구성으로 약간 고전하는 듯했으나 이후 승승장구. 무한도전은 한국 예능계에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습니다.

'무한도전'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KBS는 '1박 2일'을 들고 나왔습니다. 1박 2일이 시작한 지도 벌써 2년이 훌쩍 넘었군요. 1박 2일 역시 정해진 각본 없이 출연자들의 즉흥성을 기반으로 한 '리얼 버라이어티'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무한도전'과 '1박 2일'을 통해 유재석과 강호동은 수년간 각종 연예 시상식을 휩쓸며 유라인과 강라인이라는 말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대세가 된 리얼 버라이어티의 세계에 입문하기 위해 왕년의 예능 강자 이경규, 김용만 등도 돌아왔습니다.

5년째를 맞이한 리얼 버라이어티의 효시 '무한도전' 최근 소재 고갈로 고전하고 있다.



▶예능계의 큰 물줄기 '리얼 버라이어티'

현재 공중파와 케이블을 통해 방송되고 있는 리얼 버라이어티만 해도 MBC는 2개(무한도전, 단비) KBS는 무려 4개(1박 2일, 남자의 자격, 천하무적 야구단, 청춘불패 등), SBS는 (패밀리가 떴다, 골드미스가 간다) 케이블에도 '무한걸스' 등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1박 2일'과 '남자의 자격'으로 구성된 해피선데이의 지난주 시청률은 무려 25.9%(AGB 닐슨)에 달할 정도로 방송계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주말 저녁 웃음과 감동을 선사하는 방송계의 절대 강자가 바로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얘기죠.

하지만 최근 리얼 버라이어티에도 균열의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국민MC 유재석이 이끌었던 '패밀리가 떴다'는 출연자 전원이 바뀌며 시즌 2로 새로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참돔 낚시 조작 논란'이 일어나며 "리얼버라이어티는 리얼인가, 아닌가?"라는 존재론적 문제가 대두되기도 했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시청률의 하락일 것입니다. 유사한 컨셉의 '1박2일'이 포함된 해피선데이가 25~30%의 시청률 고공행진을 하는 동안 '패떴'은 1월 시청률이 15%대에 머무르며 5주 동안 20위 이내에 두 번밖에 들지 못했던 것입니다.

리얼 버라이어티 후발주자들의 고전 또한 심각합니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특성상 출연자 개개인의 캐릭터가 자리를 잡고, 방송 포맷에 대해 시청자들이 친숙해지기 위한 시간이 다소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1년이 지난 '남자의 자격'이나 '천하무적 야구단'은 여전히 자리를 못 잡고 있습니다. '청춘불패'나 '패밀리가 떴다 2'는 아예 아이돌의 인기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이마저도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대명사 '무한도전'마저 시청률에서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무한도전은 다른 리얼 버라이어티와 달리 기획이 만들어내는 이슈에 따라 시청률 등락폭이 큰 편이지만 1~2년 전과 비교하면 그 폭발성이 많이 줄어든 상태입니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위기는 사실 그 우스꽝스러운 명칭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리얼버라이어티의 마지막 시도인 '공익적 예능'을 표방한 MBC의 야심작 '단비'



▶연예인이 막노동판에서 일하는 게 리얼 버라이어티?

리얼이라고 하지만 정말 실제는 아니고 버라이어티라지만 캐릭터나 상황의 고정을 피하기 힘든 것이 리얼 버라이어티의 숙명입니다. 제작진도, 출연자도 그리고 심지어 시청자도 리얼이 아님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리얼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는 장치가 필요하며, 그것은 바로 일상과 평범함에 대한 천착입니다.

"연예인이 시골 허름한 집에서 밥도 해먹고, 일도 하고, 잠도 잔다.",
"연예인이 막노동판에서 일도 하고, 일반인과 소개팅도 하고, 유치한 게임도 한다."

이것이 모두를 스스로 속이는 마법의 장치입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모두가 참여하는 가상 리얼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겠죠.

이 장치를 더욱 리얼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캐릭터입니다. 캐릭터를 통해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들 간의 권력과 관계를 캐릭터 간의 권력과 관계에 이식시킵니다. '무한도전'의 1인자 2인자 놀이, '패떴'의 유사 가족관계, 1박 2일의 강호동의 절대 권력은 바로 이런 장치들의 결합입니다.

하지만 이 마법의 장치들은 매우 심각한 몇 가지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SBS '패밀리가 떴다' 다양한 조작 논란을 통해 리얼버라이어티의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첫 번째는 바로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입니다. 일반인들의 일상은 매우 지루합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집, 학교 혹은 회사, 집을 반복합니다. 이 지루한 일상을 TV를 통해 또 봐야한다구요? 이보다 더 공포스러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 위험을 제거해주는 것은 바로 연예인이라는 존재입니다. 연예인 자체는 특별하고 이질적인 존재이기에 그들이 보여주는 우리의 남루한 일상이 욕망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입니다.

'1박 2일'의 위기는 바로 이 지루함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고는 있지만 '1박 2일'은 매우 지루합니다. '1박 2일'을 남녀탐구생활 식으로 표현하면 이 정도가 아닐까요?

"운전해요. 가위바위보해요. 까나리액젓 먹어요. 침낭 하나 던져주고 밖에서 자요. 또 운전해요. 또 가위바위보해요. 또 까나리액젓 먹어요. 또 밖에서 자요. 또 또 운전해요… 매주 똑같아요. 장소만 달라요."

정도일 것입니다. 이 반복되는 지루함을 돌파하기 위해 '1박 2일'은 박찬호 같은 월드스타를 출현시키기도 하고, 시청자들을 프로그램에 참여도 시킵니다. 하지만 월드스타나 수 천대 일의 경쟁을 뚫은 시청자가 나오면 뭐합니까. 똑같이 밖에서 자거나 까나리액젓이나 들이키는 것을요.

2년간 전체 시청률 상위권을 차지해온 KBS \'1박2일\'. 그러나 이제 그 뻔한 공식이 시청자들에게 피로감을 주기 시작했다(사진=KBS)



▶참을 수 없이 반복되는 '1박2일'의 지겨움

두 번째 위험은 바로 이 일상과 연예인이 결합하는 순간 발생합니다.

그들은 연예인이어야 하고 동시에 일반인이어야 합니다. 그들은 연예인으로서 일상에 환타지를 주입시켜야 하고, 동시에 일반인처럼 일상을 경험해야 합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그들이 일반인처럼 보이면 리얼은 참을 수 없이 남루해지고, 그들이 연예인으로 보이면 리얼에 대한 모두의 동맹은 한 순간에 깨집니다.

'패떴'이나 다른 프로그램들이 논란에 종종 휘말리는 것은 사전에 연출되었기에 리얼이 아니었다는 점보다 그들은 어쩔 수 없는 연예인이었다는 것이 폭로되었기 때문입니다. '골드미스가 간다'나 '청춘불패'는 이런 의미에서 참으로 맥 빠지는 리얼 버라이어티입니다.

여성 연예인이 일반인과 소개팅을 한다고 한들, 아이돌 스타들이 트레이너를 입고 삽질을 한다고 한들 그들은 전혀 일반인스럽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하무적 야구단'은 그 반대의 경우죠. 전국민이 열광하는 야구의 힘을 빌고자 했지만 오히려 그 야구에 연예인이 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연예인의 리얼을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야구를 볼 뿐입니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세 번째 위기는 외부적 요인입니다. 리얼 버라이어티가 전성기를 누리던 2-3년 전과 달리 사회적 환경이 험악해졌습니다. 경제적 불안감이 대중들을 짓누르고 있는 가운데 여행, 기부, 농촌생활 등의 주제는 남의 일이 되고 있습니다.

'1박 2일'을 통해 여행 심지어 노숙 붐이 일었던 것도 한때, 지금 한국사회의 젊은이들은 여행을 다니고 노숙에 도전할 여유를 상실했습니다. '1박 2일'을 보며 '우리도 한번 해볼까?'라는 현실성이 약해져버린 것이죠.

리얼버라이어티의 스포츠 적인 확산 KBS '천하무적 야구단'. 시청자들은 야구 이외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노출된 전략, 위기 탈출이 진정한 리얼 버라이어티

'단비'의 경우는 좀 더 심각합니다. 오랜만에 돌아온 스타PD의 여전히 계몽적인 시선도 거북합니다만, 한국사회 내부에서도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는 계층이 많은 가운데 다른 나라의 사정에 대중들이 시선을 돌릴 여유가 없어 보입니다.

이러한 위기에 그나마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은 '무한도전'으로 보입니다. 물론 '무한도전'의 시청률이나 파괴력도 예전보다는 많이 약화되었고, 대박을 터트리는 기획도 줄어들고는 있지만, 2~3주 단위로 매번 새로운 기획들을 내놓는다는 점에서 다른 리얼 버라이어티 보다 탄력적인 모습입니다. 뭐 지난주에는 번지점프대 위에서 노숙을 하고, 알레스카에서 게임이나 하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오랫동안 한국 예능을 이끌어 온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에서 위기의 징후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들이 계속 인기를 유지해 나가기 위해 변화를 시도하고 새로운 웃음과 감동의 포인트를 찾아나가기를 기원합니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조건반사적 웃음을 계속 유지만 하려 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리얼 버라이어티, 정말 마이 무따 아이가."

조희제/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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