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김주영은 조광래 감독 아래서 프로에 데뷔했을 뿐 아니라 대표 선수로까지 선발되는 등 특별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스포츠동아DB
대표팀 깜짝승선 김주영과 조광래감독의 인연
대학 1학년때 포기했던 축구,그리고… 프로의 문 활짝 열어준 스승 조광래 칭찬한번 없었지만 채찍은 달콤했다.“너 준비됐나?” 꿈만 같은 전화 한통 스승이 열어준 길 …“가슴이 뛴다”
경남FC 수비수 김주영(22)은 조광래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 오르자 아쉬움이 컸다. 자신을 키워준 스승이 팀을 떠난다는 점이 가장 마음 아팠다.
또 자신을 너무 잘 알아 태극마크를 달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주영의 주변 사람들이 “조 감독님이 대표팀 감독이 돼 뽑힐 수도 있겠다”고 했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생각을 갖지 못했다.
“감독이 다른 분이라면 제 단점을 잘 몰라 테스트 차원에서라도 뽑을 수 있지만 조 감독님은 다 아세요. 게다가 단 한번도 칭찬을 받지 못한 선수가 어떻게 대표 선수가 될 수 있겠나 싶었죠.”
그러나 김주영은 30일 오전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대표팀으로 떠난 이후 단 한마디 대화도 나누어보지 못한 스승의 목소리가 들렸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였다. “너 준비 됐나?” “네? 네!”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했지만 이내 그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조 감독이 자신을 대표팀에 선발한 뒤 ‘준비하라’는 뜻이다.
조 감독은 “(윤)빛가람이처럼 철없는 짓 하려면 오지 말고”라는 농담을 건넨 뒤 전화를 끊었다. 조 감독을 알고 난 뒤 처음으로 칭찬을 들은 그는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신을 프로선수로 키워준 스승이 어려운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김주영에게 조 감독은 평생의 은인이다.
2008년 연세대 1학년 재학시절 운동을 포기하고 일반 학생이 된 자신에게 다시 기회를 줬다.
그 해 9월 입단테스트를 받기 위해 경남을 찾았다. 연습게임까지 뛸 준비를 하고 갔지만 그는 30분 만에 돌아갔다. 조 감독은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 몇 마디 말만 들어본 뒤 ‘OK’사인을 냈다.
“그 때는 별말씀 안 하셨어요. 연습 경기를 뛰는 걸로 알고 갔는데 그냥 ‘뽑아 줄 테니 준비하고 있어라’고만 하셨을 뿐이에요.”
예상보다 쉽게 프로에 데뷔했지만 조 감독의 혹독한 조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칭찬이라곤 들어보지 못했다. 혼나기만 했다. 때로는 육두문자도 들어야 했다. “내가 지금 볼을 차도 너보단 잘 차겠다.”, “발만 빠르다고 안 돼. 볼을 잘 차야지.”
그러나 김주영은 스승의 이야기가 싫지 않았다. 스승의 채찍질이 그에게는 맛있는 당근처럼 느껴졌다. “단 한번도 감독님 말씀에 상처받거나 속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즐거웠고,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감독님 덕분에 지금자리까지 올 수 있었으니까요.”
신갈고 출신인 그는 고교 시절 딱 한번 대표팀을 경험했다.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U-20월드컵을 준비하던 조동현 감독이 고교생 위주로 팀을 구성하며 김주영을 뽑았다. 하지만 그는 이후 탈락해 재승선하지 못했다.
당시 신갈고는 전성기였다. 김주영의 1년 후배들인 이승렬, 김보경, 이범영, 오재석 등으로 구성된 신갈고는 고교 무대를 휩쓸었다.
김주영은 항상 후배 덕분에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다며 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보다 앞서갔던 후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됐다. “동급이라고 할 수 없어요. 후배들은 이미 대표팀 붙박이 멤버고, 저는 테스트 멤버잖아요. 제가 더 배워야 할 게 많으니까 또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아요.”
김주영은 자신을 낮췄다. 하지만 그는 이미 K리그에서 검증된 선수다. 올 시즌 돌풍을 일으키는 경남의 주축 멤버다. 경남이 17실점으로 전체 공동 2위인 것도 김주영의 역할이 적지 않게 컸다. 184cm의 장신이면서도 100m를 11초대에 달리는 빠른 스피드와 뛰어난 탄력까지 갖췄다.
어린 나이에 겪은 시련을 이겨낸 김주영이 또 한번의 성공스토리를 쓸 수 있을까.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