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박정진.
방출대기→대기만성…34세 유망주 “뒷문 노터치”
한화 박정진(34)이 방출위기를 이겨내고 팀의 수호신으로 자리잡았다. 박정진은 8월까지 52경기에서 74.2이닝을 소화하며 2승4패 9세이브 방어율 3.13의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그의 장점은 타자를 압도하는 빠른공과 슬라이더다. 피안타율 0.202로 전체투수 가운데 가장 낮고 위기를 즐길 줄 아는 승부사적 기질도 강점이다. 한대화 감독은 일찌감치 내년 시즌 마무리투수로 박정진을 낙점했다. 리빌딩을 하고 있는 한화가 믿음직한 마무리투수를 확보한 것은 정말 대단한 성과다. 데뷔 12년만에 박정진이 자신의 가치를 마음껏 뽐내고 있다. 부상과 많은 시련을 이겨내고 얻은 성과이기에 그 누구보다도 값지다.
프로 12년차…부상-군복무-부진 시련
지난해 방출위기서 ‘마지막 기회’ 잡아
20대 뺨친 체력·쉼없는 땀방울로 부활
폼 바꾸고 밸런스 찾아…언터처블 활약
139km 명품슬라이더 장착 타자들 압도
타고난 승부사 기질…소방수 성공시대
○한화의 탁월한 선택
지난해말 박정진은 방출대상 선수였다. 군복무후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고 적지않은 나이도 걸림돌이었다.
“이렇게 옷을 벗는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죠. 다른 팀에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그러나 하늘은 박정진이 한화를 떠나는 걸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한대화 감독이 부임하고 코칭스태프가 바뀌었다.
은퇴하고 2군에서 박정진을 지켜본 정민철 코치가 “정진이 볼 좋습니다. 왼손의 장점도 있고 한 번 더 기회를 주시죠”라고 감독에게 건의했다. 한대화 감독은 정 코치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박정진은 그 나이에 일본 교육리그에 참가했다.
교육리그에서 박정진은 단연 빛났다. 9경기에 나가 1점대 방어율을 기록했다. 교육리그를 참관했던 한대화 감독은 “투구폼을 약간 간결하게 고치면 더 좋겠다”며 박정진을 격려했다. “쫓겨나는 줄 알았다가 기회가 왔는데 당연히 열심히 했죠. 감독님이 관심까지 가져주시니까 진짜 해볼 만 하더라구요.”
한화 선발진의 에이스가 류현진이라면, 올해 불펜의 에이스는 단연 박정진(왼쪽)이었다. 박정진은 입단 12년 만에 묵직한 구위와 두둑한 배짱을 앞세워 승리를 여러 차례 지켜냈다. 내년 시즌 마무리로 낙점받은 박정진이 경기 후 포수 신경현과 하이파이브하는 모습.스포츠동아DB
○바꾸자, 바꿔보자
박정진은 1999년 한화 1차지명 선수다. 데뷔 때부터 150km의 빠른 공을 던졌다. 그러나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항상 제구력이었다.
박정진의 폼은 아주 독특하다. 오른팔을 높이 치켜들고 왼팔의 릴리스포인트도 다른 투수들보다 높다. 그러나 이 때문에 오른쪽 어깨가 빨리 열리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래서 올해 오른팔의 위치를 낮게 내렸다.(삼성 차우찬도 박정진처럼 높았던 오른팔을 내리면서 올해 컨트롤이 좋아졌다.) 그리고 크게 스윙하던 팔의 움직임도 간결하게 바꿨다. 젊었을 때는 고치기가 쉽지 않았다. 절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5년 이상 던졌던 폼을 바꾸는 게 쉬울리 없다. 그러나 바꿔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박정진은 정말 큰일을 해냈다.
폼을 바꾸면서 왼팔의 높이가 더 높아졌다. SK 김광현 못지않은 높은 릴리스포인트가 만들어졌고 130km대 초반에 머물던 슬라이더의 스피드가 139km까지 나왔다. 왼손타자들은 요즘 박정진의 슬라이더를 최고로 꼽는다.
○체력은 팀내 최고. 박정진은 20대
투수에게 러닝은 매우 중요하다. 넥센 김시진 감독은 “투수가 러닝을 싫어하는 순간 이미 내리막길”이라고 단언한다. 박정진은 잘 뛴다. 하나마쓰 트레이닝코치는 “스프링캠프에서 20m, 30m, 50m, 400m를 타임체크하는데 항상 박정진이 1등이었다”며 박정진의 몸은 20대 초반이라고 칭찬했다. 30대 중반의 나이인 박정진이 올해 최고의 공을 던지는 빼놓을 수 없는 비결이다.
○투구는 밸런스다
삼성 선동열 감독은 투수의 생명을 밸런스로 꼽는다. 올해 한화 스프링캠프를 찾은 피츠버그의 박찬호도 “투구는 밸런스”라고 했다. 정민철 투수코치는 구종보다 먼저 밸런스를 가르친다. 올해 박정진이 깨달은 것은 투구밸런스의 위력이다.
“제가 데뷔초부터 어깨부상도 많고 컨트롤도 나빴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결론은 밸런스가 나빴어요.”밸런스가 나빴기 때문에 몸에 이상이 오고 마음대로 컨트롤이 안됐다. 컨트롤에 대한 부담은 구위를 약화시켰고 자신감마저도 잃게 만들었다.
그는 정민철 코치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2년 동안 저랑 룸메이트였어요. 코치님이 항상 강조하시는 게 밸런스였죠. 훈련하는 방법도 알려주시고.”
올해 투구폼교정과 함께 박정진의 밸런스는 데뷔후 최고다. 컨트롤도 좋고 볼끝과 변화구의 움직임도 타자를 압도한다. 무엇보다 큰 것은 어떤 타자도 두렵지 않은 자신감 회복이다. 투구는 밸런스다. 공을 던질때 뿐만이 아니다. 박정진은 러닝을 할 때도 밸런스를 생각하며 밸런스 있게 뛴다.
○데뷔때부터 꿈은 구원왕
선발보다는 마무리투수가 좋다. 스릴이 있고 위기를 막았을때 기쁨은 선발투수와는 다르다. 프로데뷔때 그의 꿈은 구원왕이었다. 세이브를 하고 포수와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이 가장 멋져 보였다. 한번도 풀타임을 마무리로 뛰어본 적이 없는 박정진을 한대화 감독은 일찌감치 내년 시즌 마무리투수로 점찍었다.
“올해보다 더 좋은 공을 던져야 승리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착실하게 준비하겠습니다.” 박정진은 러닝부터 피칭, 밸런스 훈련까지 시즌 뒤 계획을 이미 세워놓고 있다. 후배 류현진에게 배운 서클체인지업을 더 강력하게 만드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있나?”
1998년 박정진(당시 세광고)은 요미우리 이승엽, 두산 김선우 등과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나가 우승을 차지했다. 연세대 시절에도 그는 150km의 빠른 공을 던지는 아마추어 최고 투수였다.
그러나 프로에서는 2003년을 빼곤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어깨 부상으로 수많은 시간을 재활로 보냈고 1군에서 그의 공은 통하지 않았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귀했지만 2008년부터 그는 2년 동안 1군에서 12이닝밖에 던지지 못했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있나?”몇 번이고 야구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를 붙잡은 건 친구들이었다. ‘유니폼을 벗는 것은 가장 쉬운 일이다.’,‘아직 할 수 있다. 진짜 네 공을 한 번 던져봐야 하잖아?’
올해 박정진의 활약은 그 누구보다도 값지다. 방출위기까지 몰렸던 그가 30대 중반의 나이에 성공신화를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박정진의 야구는 지금부터다. 내년 시즌 리빌딩 한화의 멋진 마무리투수로 우뚝 서기를 기원한다.박정진은 누구?
▶Who 박정진? ▲생년월일=1976년 5월 27일 ▲키·몸무게=183cm·82kg ▲투타=좌투좌타 ▲출신교=청주 중앙초∼청주중∼세광고∼연세대 ▲프로 데뷔=1999년 한화 1차지명 ▲연봉=3500만원 ▲2009년 성적=17경기 10.1이닝 5실점(4자책) 2홀드 방어율 3.48스포츠동아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