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경의 전성시대는 곧 현대왕조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잊혀진 에이스가 돼 버렸고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 그래서 2011년을 맞는 김수경의 각오는 더 특별하다. 스포츠동아DB
코치직 제의 거절…연봉 50%…삭감 13년전 신인의 마음으로 돌아가
오늘은 오늘에만 서 있지 말고,
오늘은
내일과 또 오늘 사이를 발굴러라.
건너 뛰듯
건너 뛰듯
오늘과 또 내일 사이를 뛰어라.
---김현승 <새해 인사> 중에서
1년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1년의 첫 날을 맞이하는 마음은 누구나 각별하다. 어제와 오늘은 단 하루가 차이가 날 뿐인데도, 스타트라인의 스프린터처럼 용수철 같은 탄력이 생긴다. 넥센 김수경(32)이 딱 그렇다. 백척간두의 고독한 칼끝에서 마지막 시즌이라는 각오를 되새기고 있기 때문이다.
○코치 제의도 거절. ‘아직은 때가 아니다’
김수경은 2010시즌초 단 한 경기에 등판한 뒤, 2군행을 자청했다. 당시 김시진 감독은 “해 보기도 전에 마음을 약하게 먹으면 안 된다”고 만류했지만, 김수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1998년 신인왕. 1999년 탈삼진왕, 2000년 다승왕. 화려한 이력을 써내려 간 그는 김시진 감독의 애제자요, 넥센 정민태 투수코치가 현역시절 가장 아끼는 후배였다.
김수경은 “내 구위는 내가 제일 잘 아는 법이다. (감독님께서) 나를 얼마나 배려하시는지 알기 때문에 내가 먼저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기약 없는 강진 생활. TV를 통해 소속 팀의 경기를 볼 때마다 가슴이 쓰렸다. 넥센 관계자들은 시즌내내 “김수경은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하는 선수다. 그래서 구위 회복이 안되는 상황이 더 안타깝다”고 했다.
결국 김수경의 성실성을 높게 산 구단은 시즌 중 그에게 코치직을 제의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김수경은 “아직 내 나이가 그럴 때가 아니다”라며 고사했다. 그렇게 한 시즌이 끝나고 연봉 협상이 시작됐다. 구단은 다시 한 번 김수경에게 코치카드를 내밀었다.
이번에도 김수경의 답은 같았다. 그는 “나를 잘 봐주신 것이니, 너무 감사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서른을 넘긴 나이이지 않나”라고 했다. 연봉삭감은 불가피했다. 큰 힘겨루기 없이 전년(2억2000만원) 대비 50% 삭감 된 1억1000만원에 사인했다.
○신인의 마음으로, ‘나의 새해는 백지’
김수경은 “연봉이 그렇게 삭감되는데 왜 쓰린 마음이 없었겠나. 하지만 재기한 다음에야 (구단에도) 드릴 말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빨리 계약을 마무리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2010년의 마지막 날에도 한가로울 수 없었다. 매서운 추위를 뚫고, 그는 오후 내내 웨이트트레이닝 기구와 씨름했다.
경력만 놓고 보면 넥센 어느 누구보다도 화려하지만, 이제 그의 자리는 없다. 김시진 감독도 이미 시즌 중에 “더 이상의 특혜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거친 들판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셈이다. 김수경은 “이제는 모든 것이 백지다. 신인이던 13년 전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김시진 감독은 고졸신인투수가 프로입단 이후 급격히 구위가 향상된 성공사례로 김수경을 꼽는다. 당시 김수경은 스프링캠프 기간동안 착실한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체중을 불려 구속을 늘렸고, 그 해 신인왕까지 거머쥐었다. 김 감독은 “처음 봤을 때는 다소 왜소한 느낌이었는데 스프링캠프가 끝날 때가 되니 완전히 남자의 몸이 돼 있었다”고 회상했다.
김수경은 13년 전처럼, 13일부터 시작되는 넥센의 스프링캠프에서 승부를 내야 한다.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기회다. 그는 “페이스조절 같은 것은 잊은 지 오래다. 처음부터 몸 상태를 끌어올려 감독님께 무엇인가를 보여 드리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