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박완서 같은 대문호도 나이 마흔에 여성동아를 통해 등단했다. 9년차라고 하지만, 그의 나이는 이제 스물일곱. 스포츠에서도 대기만성은 있는 법이다. 두산 노경은은 또 하나의 ‘인동초’ 스토리를 꿈꾼다. 스포츠동아DB.
9년차 만년 유망주의 삭발투혼
부상 박정배 대신 캠프 합류
‘불펜 에이스’ 오명 씻겠다
두산 노경은(27)은 무려 9년차 ‘만년 유망주’다. 부상 박정배 대신 캠프 합류
‘불펜 에이스’ 오명 씻겠다
2003년 계약금 3억5000만원에 1차 지명됐지만 개인통산 성적은 72경기 6승8패 1홀드 방어율 5.90. 이렇다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늘 ‘불펜에서는 에이스, 마운드 위에서는 신인’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그도 “마운드에 올라가서도 하던 대로 던지면 되는데 ‘잘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늘 불안했다”고 고백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묵직한 직구로 주목받았고 슬라이더, 커브, 서클체인지업, 투심패스트볼, 싱커, 스플리터까지 못 던지는 구종이 없었지만 결국 자신감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럼에도 공익근무를 했던 2005∼2006년을 제외하고 ‘전지훈련 단골손님’이었다. 워낙 체격조건이 좋고, 볼만 두고 봤을 때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기대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시즌 입단 후 처음으로 캠프를 불참하게 됐다. 그때는 발목이 좋지 않아 자진해서 빠진 경우다. 그게 실수였다. 캠프에서 땀을 흘린 투수들이 우선적으로 경기출전권을 쥐었다.
그에게는 가진 것을 보여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보여준 게 없으니 올 시즌 캠프에서도 제외되고 말았다.
절박한 심경으로 삭발을 했다. 반항이 아니었다. ‘이천에서 열심히 훈련해서 올해 제대로 보여드리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박정배가 팔꿈치 이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극적으로 캠프막차를 타게 됐다.
노경은은 “9년이라는 시간을 빙 돌아왔지만 이제 나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롯데 이대호와 맞붙어도 피하지 않고 싸워서 이길 자신이 있다. 예전에는 경기에 나가는 것조차 싫었는데 지금은 하루라도 빨리 공을 던지고 싶어 근질근질하다”고 할 정도다.
늘 아들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어머니를 위해서 이를 더 악물었다. 2∼3년 전부터 스트레스로 생긴 흰머리를 염색으로 감추고, 전지훈련에 제외됐을 때 “올해 캠프를 가게 됐다”며 선의의 거짓말까지 한, 속깊은 아들다웠다.
그는 “절박하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며 “오죽하면 그동안 기(氣)가 빠진다며 보지 않았던 점까지 봤겠나. 점괘가 ‘장군이 칼을 차고 있는 형상’이라던데 마운드 위에서 싸우면 무조건 이긴다는 얘기라고 받아들였다”고 귀띔했다.
이어 “예전에는 힘으로만 밀어붙였다면 138km를 던져도 무릎 쪽으로 던지는 게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보직을 떠나 다시 한 번 1군 마운드 위에서 설 수 있다면 공을 던질 수만 있다면 나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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