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일화 신태용 감독. 스포츠동아DB
‘홍철아 수비안정 우선’ ‘박진포 크로싱 OK!’
선수마다 맥짚어주는 ‘촌철살인 코멘트’ 메모
우승제조기 비밀수첩 3권 단기전 V 일등공신
성남 일화 신태용(41) 감독은 우승 제조기다. 선수시절 받은 우승 트로피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지도자 데뷔 후에도 작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 이어 올해 FA컵을 제패했다(성남 1-0 수원). 처음으로 선수와 지도자로 모두 챔스리그와 FA컵 우승을 경험하는 진기록도 세웠다.
특히 토너먼트 승부에 강해 ‘승부사’ 소리를 듣는다. 이유를 묻자 신 감독은 “특별히 그런 게 있나. 다만 단기전은 선수 능력을 어떻게 최대한 끌어내느냐가 중요한데 잘 맞아 들어간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나 분명 비결은 있었다. 그가 2009년 성남 지휘봉을 잡은 뒤 써 온 수첩도 그 중 하나다.
이 수첩에는 11명 선발 전원에게 알기 쉽게 맥을 짚어주는 ‘촌철살인 코멘트’가 들어 있다. 신 감독은 경기 직전 라커룸에 이 수첩을 갖고 들어가 선수들에게 일러준다.
성남 신태용 감독의 ‘촌철살인 코멘트’가 담겨 있는 수첩. 왼쪽이 수원과 FA컵 결승 직전, 오른쪽은 작년 11월 AFC 챔스리그 조바한(이란)과 결승을 앞뒀을 때 주문한 내용. 윤태석 기자
● 촌철살인 코멘트
15일 수원과 FA컵 결승을 앞두고 쓴 수첩을 보면 ‘홍철은 수비 안정이 우선. 그러나 나갈 타이밍에서는 적극적으로 나갈 것’이라고 적혀 있다. ‘안쪽보다는 바깥쪽으로 몰 것’이라는 구체적인 조언도 있다. 신인 박진포에게는 ‘긴장하지 말고 평소처럼 할 것. 안쪽으로는 절대 주지 말 것’이라고 주문했다. ‘요즘 경기에서 크로싱이 좋았다’는 내용도 있다.
사실 박진포의 크로스가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사기를 북돋워주는 차원이었다.
신 감독은 “경기 직전 구체적으로 콕 집어 칭찬해주면 자신감이 배로 상승한다”고 했다. 작년 AFC챔스리그 결승전 직전에도 ‘철호는 호영이와 동건이가 빠져 들어가게끔 종 패스를 해라’ ‘호영이는 경남 경기 같이 자신감을 가져라’ ‘성환이는 너무 의욕이 앞서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딱 딱 들어맞았다.
신 감독의 선수 경험이 바탕이 됐다. 그는 “경기 직전 핵심 체크포인트를 알고 들어가는 것과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가는 건 천지 차이였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3년 간 쓴 수첩이 3권. 시간 날 때 차근차근 훑어보며 복기하면 앞으로 경기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도 있다.
● 간결한 선수단 미팅
신 감독은 선수단 미팅을 최대한 자제한다. 전력 분석 등을 핑계로 일과 후 코치들을 부르는 일도 없다. 경기 3∼4일 전 코칭스태프 미팅, 경기 전날 선수단 비디오 분석, 경기 당일 라커룸 미팅 등 딱 3번만 한다. 보통 15분 안에 끝난다.
미팅이 길어지면 집중력이 떨어져 별 효과가 없다는 걸 선수 때 깨달았기 때문이다. 코칭스태프 미팅 풍경도 독특하다. 코치들은 자신을 감독이라 가정하고 어떤 전술을 펼지 신 감독 앞에서 브리핑을 해야 한다.
신 감독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코치들의 입에서 꼭 1∼2개씩 튀어 나온다. 신 감독은 지도자가 된 뒤 선수시절 풍부한 경험을 아주 잘 활용하고 있다.
‘좋은 선수는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속설을 뒤집는 좋은 본보기다.
성남|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Bergkamp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