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초 남기고 “OK”…류현진 담판의 달인

입력 2012-12-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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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다저스와 계약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류현진이 지난달 19일(한국시간) 미국프로농구(NBA) LA 레이커스의 홈경기를 지켜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흘러나오자 환하게 웃고 있다. 그러나 계약협상은 사진 속 여유로운 모습과는 정반대로 초를 다툴 만큼 급박하게 돌아갔다. 스포츠동아DB

다저스 6년 장기계약·마이너조항 요구에 거부
마감시한 직전 이닝옵션 등 수정안에 협상 재개
류현진 5년내 FA 옵트조항 추가하자 마침내 OK!

한 달을 기다렸다. 딱 4분이 남았다. 이 시간이 지나면 빈손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그러나 배짱 좋은 류현진(25)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에서 기다리는 부모와 협상 상황을 전달하는 에이전트의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LA 다저스는 결국 ‘구단이 원하면 선수의 동의 없이 마이너리그에 보낼 수 있다’는 조항을 삭제했다. 비로소 류현진의 입가에 배시시 웃음이 번졌다. “오케이.”

다저스가 내민 계약서에 류현진의 대리인 스콧 보라스가 사인한 시간은 현지 시간으로 9일 오후 1시59분30초(한국시간 10일 오전 6시59분30초). 계약 마감 시한까지 불과 30초를 남겨 놓은 상황이었다. ‘대한민국 에이스’는 메이저리그 명문 구단을 상대로도 주눅들지 않았다. 마침내 ‘똑똑한 계약’을 성사시켰다.


● 유니폼 미리 준비한 다저스, 6년 3000만달러 제시

처음부터 분위기는 좋았다. 다저스는 류현진과의 첫 미팅 때 등번호 ‘99’와 ‘류(RYU)’라는 글자가 새겨진 유니폼 상의를 건넸다. 99번은 류현진이 한국에서 7년간 달고 뛰었던 행운의 등번호. 한화에 입단하자마자 15번을 달 뻔했던 류현진은 대선배 구대성이 갑자기 복귀하면서 주인 없이 남아있던 99번을 받아들었다. 그러나 이후 한국 최고의 투수로 우뚝 서면서 더 이상 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징적인 번호가 됐다. 류현진을 원했던 다저스는 미리 99번 유니폼을 준비해뒀고, 그 정성에 류현진의 마음도 열렸다. 그러나 이후 협상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도중에 메이저리그 윈터미팅이 끼어 있으니 더 그랬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협상 마감 하루 전. 다저스가 내놓은 최후통첩은 6년 총액 3000만달러였다. 다저스 관계자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 고심 끝에 책정한 금액이었다”고 설명했다.

LA 다저스 홈페이지는 10일(한국시간) 류현진과의 계약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4선발’로 지목했다. 전날 계약한 프리에이전트(FA) 최대어 투수 잭 그레인키(왼쪽)와 함께 류현진을 나란히 세워 보도한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사진|LA 다저스 홈페이지 캡처



● ‘자존심은 지킨다’ 일단 고개 저은 류현진

보라스가 ‘고객’의 의사를 물었을 때, 류현진은 계약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금액보다는 6년이라는 장기 계약이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다저스가 갑자기 포함시킨 마이너리그 옵션은 류현진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한국에 있는 아버지 류재천 씨에게 전화해 “미국에서 정말로 뛰고 싶지만,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계약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 역시 “선수 동의 없이 마이너리그로 보내면 언제 다시 올린다는 보장도 없는데, 마냥 계약하라고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계약이 계속 미뤄지는 사이, 다행히 양 측의 생각차이는 좁혀지기 시작했다. 류현진이 계약기간 6년을 받아들였고, 다저스는 매년 연봉에 100만달러씩을 더해 보장 총액을 3600만달러로 올렸다. 또 매 시즌 옵션 100만달러가 추가돼 6년 총액 4200만달러까지 높아졌다. 다저스 관계자는 “성적이 아닌 ‘이닝’ 옵션이다. 건강한 몸을 유지한다면 충분히 채울 수 있는 수준”이라고 귀띔했다.


● 류현진은 ‘계약기간’, 다저스는 ‘옵트아웃’ 각각 양보

다저스는 류현진을 ‘오래’ 잡아두고 싶어한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까지 이미 한 팀에서 7년간 뛰어본 류현진의 입장은 그 반대다. 류현진 측이 가장 중요한 계약기간에서 한 발 물러선다면, 다저스 역시 양보해야 했다. 따라서 5년 이내에 750이닝을 던지면 다음 시즌부터 선수가 FA를 선택할 수 있는 ‘옵트 아웃’ 조항을 추가했다. 류현진은 한국을 대표하는 ‘이닝 이터’였다. 실력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협상이었기에, 그도 단숨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침내 마이너리그 옵션이 빠졌다. 다저스 입장에선, 애초에 협상을 위한 ‘카드’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높다.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고 싶다”는 꿈, 그리고 “한국 프로야구 출신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직행하는 만큼 자존심은 지키겠다”는 다짐. 류현진은 결국 둘 다 지켰다. 마운드에 섰을 때처럼 두둑한 배짱과 자부심으로 자신의 능력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냈다. 아버지 류재천 씨는 “4∼5년 후에 FA 자격을 다시 얻을 수 있으니까 그것도 좋고, 금액에도 충분히 만족한다”며 기뻐했다. 결국 계약은 마감을 30초를 앞두고 극적으로 완료됐다. 보라스가 고객 류현진의 이름이 적힌 계약서에 사인하던 순간, 한국프로야구는 새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겼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goodgo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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