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현철 “진정성 없는 연기, 기술 좋아도 말짱 도루묵”

입력 2015-05-27 14: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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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보니 스타가 됐다는 말은 배우 서현철에겐 조금 과장된 표현일지 몰라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몇 주 전, MBC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 출연하며 재치 있는 입담으로 시청자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들었다.

그에 대한 반응은 즉시 포털 사이트의 인기검색어로 이어졌고 대중들은 ‘서현철’이라는 배우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대학로에서 그와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후배들과 막걸리 한 잔 걸치며 나눴던 농이 이렇게 화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공연 홍보하러 갔다가 그냥 몇 마디 했을 뿐인데 예상치 못한 반응이라 뭔가 싶어요. 사실 막판에 입담이 터진 걸 제작진께서 편집을 잘해주셨어요. 노래 안 하려고 준비했던 이야기였는데 결국 노래까지 하게 되고. 하하. 반응이 좋은 덕분에 공연 홍보도 많이 됐다고 하니 참 다행이에요. 좋은 경험이었어요.”

현재 연극 ‘월남스키부대’와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를 공연하고 있는 서현철을 서울 대학로에서 만났다. 아침에 드라마 ‘징비록’을 촬영하고 강원도에서 직접 운전을 하고 온 그는 피곤함이 역력해 보였지만 입담은 지치지 않았다. “아, 오늘 너무 피곤해서 연기가 절로 나오겠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방송을 보면서 그의 재미있는 일화에도 눈길이 갔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서른 살이 되어 연기자로 인생길을 틀었다는 점이었다. 그는 30세 이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사람이었다. 남들처럼 똑같이 학교를 다녔고 직장생활을 했다. 월말이면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봉투가 익숙해질 때 운전대를 과감히 튼 이유는 “이건 아니다” 싶어서였다.

처음에는 ‘연기자’가 되는 게 꿈은 아니었다.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었다. 그는 “수화교실을 다니며 준비했지만 내 인생을 던질 용기가 없었다”며 사회복지사의 꿈을 접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한 서울 국립극장에서 하는 연기수업을 다니게 됐다. 그런데 이게 웬일, 점점 하다 보니 욕심도 생기고 더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가슴 한편에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이 남았지만 자신의 길을 향해 나아가고자 했다.

“배우가 돼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직장인은)아니라는 생각이 컸어요. 반복되는 일상에 삶이 무의미해지고 월급이 인생의 족쇄가 되더라고요. 쉽게 뿌리치고 싶지만 없으면 불안감이 드니까.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주말에는 산에도 다니고 해봤는데 그거로는 부족했어요. 사실 월급이 제 인생의 목표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연기를 하며 인기를 얻거나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욕심은 없어요. 인생의 절반은 남이 하는 대로 살아봤으니 절반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해보자고 결심했죠.”


서현철은 대학로의 웃음을 책임지는 배우다. 그가 하는 대부분의 작품이 80~90%는 코미디 연기를 바탕으로 하는 극이지만 다양한 웃음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현재 공연 중인 연극 ‘월남스키부대’에서 그가 맡은 ‘김 노인’은 연기 자체는 유쾌하나 속을 들여다보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젊음을 바친 어르신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담겨있고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에서는 조수 ‘풀’ 역으로 주인공들의 호흡을 척척 받아주며 이야기를 연결시킨다. 그가 연극계의 ‘찰리 채플린’이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품을 선택할 때, 보통 제작자나 연출자가 먼저 그를 찾는 경우가 더 많다. 서현철과 함께 작품을 했던 사람들은 그가 연습 중 무심결에 뱉어낸 생각이나 진실 여린 연기에 감탄하기 때문이다. 그가 하는 코미디는 무엇이 다를까.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 “웃기는 척, 이 ‘척’을 안 하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코미디는 연기가 웃긴 게 아니라 상황이 웃긴 거예요. 예를 들어 한 사람의 옷깃에 불이 붙으면 한 사람은 불을 끄려고 별 짓을 다하고 옆에 있는 사람도 사력을 다해 불을 끄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들의 얼굴은 절실해요. ‘어떻게든 불을 꺼야 돼!’라는 심각한 표정이 가득해요. 연기적으로 따지면 정극과 별 차이가 없어요. 단지 그 상황이 보기엔 재미있을 뿐이에요. 연기자는 극중 역할에 몰입해서 진짜로 연기하면 되는 것 같아요.”

서현철과 이야기를 나누며 가장 많이들은 단어는 ‘진실성’, ‘진솔함’, ‘진정성’이었다. 20여 년 연기생활을 하며 그가 추구하게 된 가치관이다. 그가 이러한 마음을 갖게 된 이유는 연극을 하겠다고 무작정 대학로로 나와 다운증후군 아이들과 하게 된 작품이었다.

“장애아동들과 함께 하는 게 있고 그들에게 보여주는 공연이었어요. 그 작품을 하면서 ‘연극은 진지한 소꿉놀이’라는 걸 느꼈어요. 다 짜인 약속인데, 알면서도 거기에 동화되더라고요. 극 중에 저 역시 몸은 큰데 마음은 어린 장애를 가진 아동 역을 연기했어요. 부모님께 짜증내고 장난감 사 달라고 조르고 투정하는 연기를 했었거든요.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분장실에 찾아온 아이들이 제게 ‘너 엄마 말 잘 들어야 돼, 안 그러면 엄마가 속상해하시잖아’라고 하더라고요. 순간 가슴이 뭉클했어요. 그 아이들에게 제가 그냥 ‘어른’이 아니라 자기와 같은 또래로 보인 거잖아요. 이 네모난 공간에서 내가 진심으로 연기했을 때 누군가는 ‘뭔가’를 진짜 느끼고 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어 “‘앞으로 할 일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극이란 작품의 가치나, 배우의 기술적인 연기 등도 중요하지만 연기자의 진실함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사람들이 뮤지컬, 연극을 ‘고급스런 문화’라고 생각하시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엔 연기를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줄 알았는데 결국 다들 사람이더라고요. 그래서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고 공감되는 연기를 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라고 덧붙였다.

말을 듣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살이에 힘든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그는 이미 바래왔던 ‘사회봉사자’가 되어있는지도 모르겠다고. 그 공간이 봉사현장이 아닌 무대라는 것 밖에는 차이가 없는 것일 뿐. 이 말을 하자 서현철은 “아마 그런지도 모르겠다”며 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러려면 더 솔직하게 연기해야죠. 멋진 연기가 아니라 진솔한 연기를 해야죠. 사람이 너무 욕심을 부리다 보면 본질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작품성, 테크닉? 진정성 없는 연기는 말짱 도루묵이에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SHOW&NEW·창작 컴퍼니다·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 방송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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