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DA:다] 뮤지컬 ‘아리랑’, 이제 듣기만 해도 눈물이 납니다

입력 2015-08-03 20: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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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마치고, 배우와 관객이 함께 ‘아리랑’을 부른다. 누군가의 손수건은 적셔지고, 누군가는 코를 훌쩍거리며 눈물을 참는다. 이 땅에서 가장 가슴 아프던 그 시절을 겪어든, 겪어보지 않았든 한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느껴지는 하나의 감정. 억울하고 서글펐지만 참아내고 꿋꿋하게 살아낸 민초들의 의지가 담긴 ‘아리랑’의 노래 가락이 광복 70주년이 지금에도 흘러나왔다.

작가 조정래가 5년에 걸쳐 ‘한국일보’에 연재했고 1000만 독자에게 사랑 받은 대하소설 ‘아리랑’이 뮤지컬로 새 생명을 얻어 숨 쉬게 됐다. 일제강점기 시절을 살아냈던 민초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투쟁의 역사를 담은 이 작품은 원작 12권의 방대한 분량임에도 깔끔하게 무대로 옮겨져 진일보한 한국뮤지컬을 보여줬다.

● 연출력이 살려낸 민족의 애이불비(哀而不悲)

역시 ‘고선웅’이었다. 올해 최고의 기대작이라고 해도 ‘아리랑’은 고선웅의 손길로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수백 명의 인물이 나오는 원작 소설에서 감골댁의 가족사로 내용을 추슬러 집중하면서도 민족의 전체의 모습을 그려냈다. 또한 그가 늘 강조했던 ‘애이불비(속으로는 슬프면서 겉으로는 슬프지 않은 체함)’의 감정이 극 전체를 에워쌓아 관객들에게 억지 감정을 요구하지 않았다. 진심과 본질을 추구하는 데 성공했다.

내용은 일제강점기 시절 죽산면을 배경으로 일곱 명의 인생이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 서로 사랑하던 방수국과 차득보, 방수국을 몰래 사랑하는 노비 양치성, 개화사상을 지닌 양반 출신을 사랑하는 송수익을 흠모하는 차옥비 그리고 방수국과 하와이로 노역을 간 오빠 방영근 그리고 엄마 감골댁 등이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민족적 비극을 맞게 되는 동시에 이들의 관계도 어긋나게 된다.

‘아리랑’은 슬픔을 강조하지 않는다. 배우들이 눈물을 쥐어짜지도 않고 특별히 보는 이로 하여금 고통을 느끼게 하는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슬픈 장면, 눈물이 예상되는 장면은 연출하지 말자는 고선웅 연출가의 의도가 짙게 묻어났다. 파란과 곡절이 많은 시대지만 그 안에는 청춘남녀의 사랑도 있고 타향살이를 하는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그리움도 있는 일상적인 감정을 담담하게 담아냈다. 또한 슬픔을 뛰어넘는 민초들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풀은 눕지만 꺾이지 않은 채 다시 일어난다는 민족의 신념을 그리며 우리 선조들의 숭고한 삶을 진실 되게 표현했다.


● 주·조연부터 앙상블까지 단연 최고의 기량

우리 민족의 이야기라서 그런 것일까. 조금 과장을 보태면 배우들의 눈이 어느 때보다 반짝이는 것 같다. 한 마디로 최고의 기량을 선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방수국 역을 맡은 윤공주다. 극 시작에서 “나는 득보 사랑허재”라면서 발랄하게 등장하는 그는 고난과 유린의 세월을 몸소 감내하며 과거 우리네 여인들이 어찌할 도리 없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세심하게 표현했다. 그럼에도 득보를 향한 사랑을 지키고 삶을 포기하지 않은 채 버텨낸다. 마치 민초들의 삶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특히 양치성에 대한 분노를 대사가 아닌 몇 분간의 부르짖음은 압권이다.

또한 ‘아리랑’의 신데렐라는 국악인 이소연이다. 국립창극단의 대표 배우인 이소연은 ‘아리랑’을 통해 뮤지컬 데뷔를 무사히 치렀다. 우리 가락이 넘치는 ‘아리랑’에 이소연의 소리가 더해지면 그 파괴력은 실로 대단하다. 수국의 친구로서 수난의 나날들을 이겨내는 옥비 역의 이소연은 관객들에게 그만의 구성진 소리로 한국의 흥과 한을 오롯이 선사한다.

양치성 역을 맡은 김우형 역시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을 연기한다. 극중 양치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나쁜 친일파라고만 생각할 수 없는 어지러운 시대가 낳은 또 다른 피해자다. 캐릭터를 연기한 김우형은 악인과 피해자라는 경계선의 중심을 잘 잡으며 연기한다. 이와 반대 성격인 독립을 위해 애쓰는 의식 있는 양반 송수익 역을 맡은 서범석은 민족의 지치지 않는 투쟁을 상징하듯 밟아도 다시 일어나는 민족의 모습을 대표적으로 선보였다. 감골댁 김성녀 역시 인고의 어머니상을 카리스마 있는 연기로 승화시켜 관객들을 눈물지게 한다.

● 마음에 ‘탁탁’, 입안에선 ‘척척’ 감기는 음악

오랜만에 ‘킬링 넘버’가 있는 뮤지컬을 발견했다. ‘아리랑’은 미술, 의상, 안무 등에서 빼어난 모습을 선보인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강점은 음악이다.

평소 조정래 작가의 사상을 존경했고 고선웅의 대본이 감동적이었다고 말하는 작곡가는 김대성은 “뮤지컬 ‘아리랑’이 음악을 통해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뮤지컬로 보여지길 바라고 2시간 40여분의 시간이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하는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바이올린, 첼로, 오보에 등 전통적인 서양 악기에 해금과 북만을 덧입혀 만든 ‘아리랑’만의 음악세계는 사철가, 토속적 농요 등 우리의 전통을 감동과 친숙함으로 전달한다. 1장 1막부터 수국과 득보가 부르는 ‘진달래의 사랑’ 의 “나는 득보 사랑허재, 나도 수국이 사랑허재”는 입안에서 ‘척척’ 감긴다. 그리고 ‘탁탁’, ‘풀이 눕는다’ 등은 마음을 ‘탁탁’치며 민족성을 불붙게 하는 신기한(?) 에너지를 발산하게 한다. 그리고 학교 음악시간 때나 월드컵 때나 외쳤던 ‘아리랑’을 곱씹으며 우리의 민족과 역사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것 같다. 이제는 ‘아리랑’만 들어도 눈물이 날 것 같다. 벌써부터 재공연이 기다려진다. 9월 5일까지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 아트센터. 문의 1544-1555.

총평. 완벽한 원작과 연출 그리고 배우. 또…할 말이 많아지는 작품. ★★★★☆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신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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