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 김민성. 스포츠동아DB
넥센 김민성(28)에게 25일(잠실 LG전)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날’이었다. KBO리그 사상 최초로 1경기에서 9개 아웃카운트를 잡아먹었다. 알고 보니 KBO리그 신기록이었다.
김민성은 이날 5번 3루수로 선발출장해 5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는데, 단순히 홀로 아웃된 게 아니라 병살타만 2개나 쳤고, 평생 한번 경험해볼까 말까한 삼중살타까지 기록했다.
1-0으로 앞선 2회초 첫 타석에서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난 김민성은 1-3으로 뒤진 4회초 1사 1·2루 찬스에서 6(유격수)~4(2루수)~3(1루수)으로 이어지는 병살타를 쳤다. 3번째 타석은 1-4로 뒤진 7회초 무사 1·2루. 여기서 김민성의 강한 타구가 LG 3루수 루이스 히메네스 정면으로 가고 말았다. 히메네스가 3루를 오른발로 밟아 2루주자 포스아웃시킨 뒤 2루수에게 던지고 다시 1루수로 연결되는 삼중살(트리플플레이)을 완성했다. 올 시즌 3호이자 역대 64호 삼중살. 삼중살타로는 역대 15번째 기록이다(직선타로 2명이 동시에 아웃되면 병살타로 집계하지 않듯, 직선타구는 삼중살타로도 기록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역대 64차례 삼중살 중 삼중살타는 이번이 역대 15번째다).
넥센이 8회초 한꺼번에 5점을 뽑으며 6-4로 역전하는 순간에도 김민성은 아웃됐다. 5-4로 앞선 뒤 계속된 1사만루. 여기서 1루수 땅볼로 아웃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엔 3루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여 아웃을 당하면서도 1타점을 올렸다는 사실이었다.
그대로 승리했다면 김민성은 7개의 아웃카운트로 이날을 마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8회와 9회 1점씩을 내주며 6-6 동점이 되는 바람에 승부가 연장전으로 접어들었고, 또 타석이 돌아왔다. 연장 10회초 선두타자 김하성의 좌중간 2루타와 윤석민의 우중간 적시타로 7-6으로 앞서나간 뒤 계속된 무사 1루서 타석에 들어선 김민성은 5~4~3 병살타를 기록하고 말았다.
알고 보니 1경기 아웃카운트 9개는 역대 신기록. KBO가 집계를 해보니 1982년 KBO리그 출범 후 종전 한 타자의 1경기 최다 아웃카운트 기록은 8개로, 모두 7차례 나왔다<표 참고>. 그런데 이날 김민성은 누구도 넘지 못하던 8개의 한계선을 돌파하게 됐다.
하루가 지난 26일 잠실 LG전을 앞두고 만난 김민성은 의연했다. 오히려 “기록은 깨라고 있는 것 아니냐. 이런 기록이 있으면 저런 기록도 있는 거다. 전혀 개의치 않는다”면서 “팀이 졌다면 모르지만 운 좋게도 팀이 이겼으니까 다행이다. 타자가 병살타 무서워서 소극적으로 치면 안 된다.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또 오늘이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염경엽 감독 역시 “나도 태평양 시절에 3루수 정면 타구로 삼중살을 한 번 당한 적이 있다”면서 “강정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어제 실책을 하고 삼진 3개를 당해도 오늘 아무렇지 않게 경기를 하는 강한 멘탈이 있기 때문이다. 박병호도 떠나고 강정호도 떠나면서 김민성이 우리 팀 중심 역할을 해야 하니까 부담이 될 거다. 이걸 극복해야 하는데, 다행히 시즌 초반엔 조금 흔들렸지만 점점 좋아지고 있다. 멘탈적으로도 더 강해지고 있다. 김민성이 우리 팀 기둥이 되는 과정이다”며 믿음을 보냈다.
현진건은 운수나쁜 날을 운수좋은 날로 그렸다면, 김민성은 운수나빴던 그날을 운수좋은 날로 받아들였다. 그날 1경기 9아웃 외에는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팀이 이겨 독박을 쓰지 않았으니까.
잠실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