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야구여행] 풍랑을 겪은 자만이 순항의 기쁨을 안다

입력 2016-07-01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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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시헌은 키가 작다는 이유로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하고 신고선수로 들어왔을 때도, 이유 모를 슬럼프에 빠져 48연타석 무안타 신기록을 세웠을 때도, 긍정의 동아줄을 붙잡았다. 풍랑을 겪어봤기에 순항의 기쁨을 안다. 스포츠동아 DB

■ ‘키 작은 거인’ NC 손시헌 긍정의 힘

프로서 외면 당한 작은 키 핸디캡도
0할에서 올 시즌 3할 반전스토리도
시련 딛고 꽃피운 베테랑 인간 승리
“슬럼프에 빠진 자 날 보고 일어서라”


#1. 느닷없이 ‘키 논쟁’이 일었다. 2010년 11월 어느 날 사직구장. 광저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국가대표팀이 소집돼 훈련할 때였다. 당시 두산 소속 김현수(28·현 볼티모어)는 키 188cm으로 대표팀에서도 손꼽히는 거구였다. 김현수는 “유전적으로 내 키가 큰 게 이상하다”며 “우리 어머니는 키가 150cm 정도고, 아버지도 보통 키에 못 미친다. 외삼촌은 엄마보다 더 작다. 할아버지나 외가 쪽을 봐도 키 큰 분이 없다”는 주장. 그러더니 “어릴 때부터 키를 크게 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왔다”면서 “탄산음료 등 키가 크는 데 해가 되는 것은 절대로 입에도 대지 않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키가 큰다고 해서 항상 밤 9시에 자서 아침 6시에 일어나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팀 선배 손시헌(36·현 NC)이 눈을 흘겼다. “누군 그 시간에 안 잤나? 초등학교 6학년 땐 137cm였다. 그래도 요즘 친구들 만나면 나를 보고 성공했다고 한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랴. 프로필상으로 손시헌과 함께 키 172cm인 정근우(34·현 한화)가 끼어들었다. “키? 난 어릴 때부터 항상 교실 맨 앞에 앉았다. 꾸준하게 작게 성장하더라.” 덕아웃이 웃음바다가 됐다.

손시헌은 키가 작다는 이유로 선린인터넷고를 졸업할 때도, 동의대를 졸업할 때도, 프로팀의 지명을 받지 못한 아픔을 겪었다. 결국 2003년 신고선수(현 육성선수)로 두산 유니폼을 입고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물론 지명 받지 못했을 때는 당연히 힘들었죠. 그런데 당시 ‘신고선수로 들어오라’고 제의해온 구단이 5개나 됐어요. 신고선수면 어때요. 오히려 지명 받은 선수는 자신이 팀을 고르지 못하지만, 지명 받지 못한 저는 5개 팀 중에 팀을 고를 수 있었어요. 아마추어 시절 이름 날리고, 높은 순위로 지명 받아서 프로에 들어온 선수라도 2군에서 연차를 쌓아가다 야구 그만둔 선수가 한둘이 아니잖아요. 당시 신고선수는 7월 1일부터 정식선수로 등록될 수 있었는데, 전 그날 정식선수가 되고, 1군에 올라와서 주전이 되고, 쉼 없이 달려와 지금까지 야구하고 있어요. 키가 작거나 크거나, 지명을 받거나 받지 못하거나, 프로 들어오면 모든 시작점은 똑같아요. 그것뿐이에요.”

정근우 역시 부산고 시절 손시헌처럼 키가 작다는 이유로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고려대 진학 후 2005년 신인드래프에서 2차지명 1라운드에 이름이 불려지면서 계약금 1억4000만원을 받았다. 당시 정근우의 아버지 정병기씨는 한 시상식장에서 손시헌을 처음 만났을 때 “당신 덕분에 우리 아들이 계약금을 1억원 넘게 받았다”며 포옹부터 했다고 한다. “키 작은 선수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세상의 편견을 먼저 무너뜨려 주면서 키 작은 아들에게 길을 열어준 데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었다. 실제로 정근우는 지금도 “키가 작았던 학창 시절 내 우상은 손시헌 선수였다”고 말한다.

#2. 똘망똘망한 눈빛, 야무진 입술. 손시헌은 그 눈빛과 입술만큼이나 야구도 똘망똘망하게, 야무지게 하는 선수로 통한다.

그러나 ‘키 작은 선수’의 롤모델로 승승장구하던 손시헌이지만, 지난해 커다란 절벽을 다시 만났다. 2014년 10월5일 마산 두산전부터 시작해 지난해 4월11일 마산 SK전 2번째 타석까지 48연타석 무안타. OB 유지훤이 1983년 기록한 47연타석 무안타 기록을 역사의 뒤편으로 밀어내고 신기록을 작성했다.

“솔직히 처음엔 남들은 빗맞아도 안타가 되던데, 전 어떻게 그런 안타도 하나 안 나오나 했어요. 속으로 ‘이제 나이도 30대 중반으로 접어드니 나에게도 한계가 찾아왔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다시 생각했죠. ‘그동안 난 최고 슈퍼스타도 아니었고, 재미있게 야구를 하면서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라고. ‘차라리 신기록을 세우자’라고. 야구장에서 재미있는 걸 찾으려고 했어요.”

4월11일 마산 SK전 3번째 타석에서 마침내 좌전안타를 때리며 49타석째 만에 안타 맛을 봤다. “전광판에 1안타 치면서 숫자가 0.033으로 바뀌니까 솔직히 차라리 0.000이 낫더라고요. 더 창피하더라고요. 그래도 바닥을 치고 나니까 하나씩 올라가는 재미가 있었어요. 작년 그 경험은 인생 공부의 기회이기도 했고요. 힘들 때일수록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젠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바닥을 쳤던 그때를 생각하죠.”

손시헌은 지난해 전반기에 타율 0.201을 기록한 뒤 후반기에 0.301의 타율을 올리면서 시즌 타율을 0.245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올 시즌 6월까지 3할대 타율(0.305)을 올리고 있다. 한번도 작성해보지 못했던 시즌 3할 타율이 욕심나지는 않을까.

“통산타율이 3할이어야 3할타자죠. 제 통산타율은 2할6푼대(0.267)입니다. 3할 한번 치는 게 뭐가 중요해요. 타율이 떨어지는 데 대해서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야구장에서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죠.”

풍랑을 겪어본 자만이 순항의 기쁨을 안다. 절망의 벽에 부딪칠 때마다 긍정의 문을 연 손시헌은 “오늘도 수많은 선수들이 슬럼프에 허덕이고 있지만 48연타석 무안타까지 쳐본 저를 보고 희망을 찾았으면 합니다”라고 강조한다. 우리 인생도 그렇다. 어제까지 48연타석 무안타가, 오늘부터 3할로 바뀔 수도 있으니까.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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