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빵집, 뉴욕제과, 멕시칸치킨 만큼이나 제목이 정겹습니다. 빠리빵집.

그러고보니 ‘파리’가 아닌 ‘빠리’여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심지어 이 빵집은 바게트가 아니라 단팥빵이 주력입니다.

연필로 슥슥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물을 듬뿍 푼 수채물감으로 색칠한 것 같은 뮤지컬입니다. 요즘 식으로 치면 과거로 돌아가는 일종의 회귀물인데, 현재와 과거를 완전히 단절시키지 않아 판타지의 분위기도 납니다.

엄마가 죽은 후 소주만 마시는 무뚝뚝한 공무원 아빠.

파티셰가 되고 싶은 열아홉 살 아들 성우는 파리 유학을 가고 싶지만 아빠는 완강하게 반대합니다. 갈등이 깊어집니다.

여름방학을 맞아 아빠의 소개로 성우는 빠리빵집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출근 첫날에 젊디젊은 엄마와 아빠를 만나게 됩니다. 자신과 같은 열아홉 살 엄마, 아빠의 사랑을 맺어주어 과거를 바꾸고자 하는 성우의 시도는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엄마, 아빠의 어릴 적 캐릭터가 현재와 정반대인 점이 재미있습니다. 무뚝뚝한 아빠 영준은 다정다감한 시인 지망생, 천사 같은 성품의 엄마 미연은 세상 까칠한 여고생입니다.

성우가 겪는 과거 여행의 키는 빠리빵집 사장님이 쥐고 있습니다. 극 중 살짝(대사 한 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이내 묻혀버립니다. 그 역시 어린 시절 파리로 떠나 헤어진 여자친구의 추억을 갖고 있습니다.

기량이 탄탄한 배우들이 출연해 밋밋한 생지에 달큰한 단팥을 옆구리 터지도록 채워 넣습니다. 조형균(영준)의 꿀보이스는 이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달달합니다. 악센트가 강한 최우혁(성우)과의 이중창도 나쁘지 않습니다.

미연 역을 맡은 임예진의 연기가 돋보였습니다. 엄마의 혼령과 어린 시절 미연을 애매한 구석 없이 잘 표현했습니다. 조형균 영준과의 케미가 좋아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듯 유쾌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대사 역시 엄마 미연의 것입니다.

“여보, 이렇게 빨리 헤어질 줄 알았다면 당신 처음 만난 순간부터 사랑할걸 그랬어. 그러면 우리 셋, 더 많은 추억을 쌓았을 텐데.”

성우가 부르는 솔로곡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에 나오는 대사로 이 작품의 존재이유와 같은 주제를 애틋하게 드러냅니다.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차용한 아이디어는 이 작품의 극본을 쓴 김한솔 작가의 멋진 감각입니다. 영준, 성우, 미연이 부르는 넘버 ‘러브레터’의 가사에도 이 소설이 활용됩니다.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봉평은 세 사람을 연결해주는 기억 속의 공간이자 과거 여행의 종착지입니다.

“나귀가 걷기 시작하였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안 아둑신이같이 눈이 어둡던 허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걸음도 해깝고 방울소리가 밤 벌판에 한층 청청하게 울렸다. 달이 어지간히 기울어졌다(이효석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마지막 문장)

※ 일일공프로젝트는 ‘일주일에 한 편은 공연을 보자’는 대국민 프로젝트입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사진제공 | 라이브러리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