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 자기 관리 열심히 하고 뚝심 있는 사람”
“마지막 수광이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 보고 안심”
“생애 첫 팬미팅 하고 싶어”
“안녕하십니까,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배우 나인우(본명 나종찬‧28)였다. 까만 얼굴, 188cm 큰 키의 남성이 성큼성큼 회의실로 들어오더니 중앙에 앉았다. 위풍당당하게 ‘회장석’에 앉은 모습은 ‘1박2일’ 막내와는 달랐다. 기자들이 “회장님 같다”고 하니 그는 “네, 오늘의 안건은 나인우의 모든 것을 파헤치는 것”이라고 여유를 부렸다. KBS 2TV 수목 미니시리즈 ‘징크스의 연인’ 종영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됐다. 인터뷰는 7월 26일 서울 성수동 큐브엔터테인먼트 본사에서 진행됐다.“마지막 수광이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 보고 안심”
“생애 첫 팬미팅 하고 싶어”
지난해 여름부터 겨울까지 나인우는 ‘징크스의 연인’(연출 윤상호, 극본 장윤미) 촬영에 매달렸다. 불운한 생선가게 사장 공수광을 연기한 그는 행운의 여신 이슬비(서현)와 지독한 사랑에 빠지고 우여곡절 끝에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저한테는 첫 도전이었어요. 수목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게 처음인데, 부담보다는 걱정되는 부분은 있었죠. 사전 제작 드라마다 보니 내가 어떻게 나올까, 연기를 어떻게 했을까. 12월 말에 촬영이 끝났는데 걱정을 많이 했어요.”
반년간 서로 의지해가며 호흡을 맞췄던 서현에 대해서는 “시야가 넓은 연기자”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서로 존중해 가며 장면을 풍부하게 만들었는데, 극 초반 코믹 장면을 만들 때는 나인우가, 금화 그룹에 들어가서는 서현이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고 한다.
“제게 부족한 부분은 서현 씨가 포착해 얘기해주고, 제가 해석한 신이나 하고 싶은 연기를 서현 씨에게 얘기했을 때 잘 받아줬어요. ‘소녀시대’로 서현 씨를 봤을 땐 내성적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외향적이었어요.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하고 뚝심 있는 사람이고. 다만 ‘1박2일’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힘드니까. 힘들까 봐.”
원작 웹툰에서 수광은 차분하고 무뚝뚝한 편이지만, 드라마 속 수광은 다정하다. 그는 초고 2회 대본까지 받아놓은 후에 원작을 처음 읽었다. 초고 속 수광은 원작과 비슷하게 어두웠는데 윤상호 감독은 밝은 드라마를 원했다고 한다.
“수광이가 원작처럼 차분하고 어둡게 가면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을 것 같아서 캐릭터 변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많이 냈어요. 코믹 신도 잘 나온 것 같습니다. 감독님 원하시는 대로 맞춰드리려고 노력했어요.”
나인우는 얼굴 근육을 잘 쓰는 배우다. 극 초반 슬비를 구하러 간 수광이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인신매매범에게 ‘장풍’을 쏘거나, 슬비의 노출에 질겁하는 신은 짐 캐리의 연기를 보듯 즐겁다. 만취한 슬비에게 뽀뽀를 받고 놀란 연기도 시청자들의 설렘 지수를 폭발하게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재벌가의 저주, 마녀 같은 오컬트한 소재가 극 전반을 지배하면서 드라마는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출생의 비밀, 불륜, 혼외자, 납치, 살인교사 같은 소재도 튀어나왔다. 분명 방송사 마케팅 자료에는 ‘나인우의 첫 로코(로맨틱 코미디)’라고 적혀있었는데, 수비(수광+슬비) 커플은 웃는 일보다 우는 일이 많아졌다.
나인우에게 “로코라더니 신파다. 당신은 7~13화까지 울던데, 애로사항은 없었나”라고 물었다. ‘신파’라고 하니 나인우는 약간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찌 됐든 배우는 표현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신파라고 느끼는 분들도 계시고 다르게 느끼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어려운 상황이든 좋은 상황이든 연기하는 마음가짐은 똑같아요. 시청자들이 감동하고 즐겁게 느끼시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죠. 애로사항은 없다고 보시면 돼요. 아쉬운 부분은 작품마다 있기에, 완벽할 순 없죠.”
“수비 커플이 같이 있는 장면이 적다”, “시청률 아쉬움은 없나”라는 추가 질문이 들어왔다. 초점이 재벌가의 악업과 저주에 맞춰지자 주인공들의 로맨스 분량도 쪼그라들었고 시청률도 서서히 내려갔다. 나인우는 “팬들께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저희가 원해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스토리를 풀고 서로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다 보니 그렇게 된 건데…. 아쉽다면 아쉽지만 그래도 다시 만나게 되니까요. 팬분들께는 죄송합니다. 제 탓은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히 했어요. 시청률은 적어도 제가 표현한 캐릭터를 통해 공감하고 재밌게 보는 분들이 계신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저는 과정 중심형이라서 저에겐 소중한 시간이었으니까요.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 그걸 보여드리는 그 시간이 좋았어요.”
나인우에게 결말이 마음에 들었냐고 물었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스포일러인데, 말해도 돼요?”라며 주춤했다. 그의 작은 저항(?)에 나는 “기사는 종영 후에 나간다, SNS에 스포일러 사진 올라왔었다”라며 길게 설득했다. 나인우는 기자가 결말을 다 듣고 최종화를 덜 재미있게 볼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소속사 관계자는 “인우가 순수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드라마 결말은 최선이었던 것 같아요. 수광이는 행복하게 살고 있겠죠. 끝까지 보시면 아실 거예요. 수광이 인생은 우여곡절이 많아서 참 기구한 인생이에요. 마지막에 의젓한 사람으로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안심했던 것 같아요.”
최근 ‘징크스의 연인’, ‘클리닝업’ 등 드라마와 예능 ‘1박2일’에 동시에 출연한 나인우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구척장신이지만 많은 국내외 팬들은 그에게 “귀엽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실제로 보니까 귀엽지 않죠? 팬들이 ‘귀여워’라고 해요. 저 귀엽지 않죠? 그렇죠? (당황스럽다. 귀엽다는 말이 듣기 싫은가?) 싫은 게 아니라 저는 귀엽지 않은데 왜 귀엽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1박2일’ 보면 애교가 많던데?) 저 애교 없습니다. 형들은 막내라서 예뻐해 주는 거죠.”
‘1박2일’ 가정방문 편에서 쓸 만한 가구도, 밥상도 없는 휑한 나인우의 살림살이가 공개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는 여전히 그 상태로 생활한다고 한다. 미니멀리스트(minimalist)냐고 물었더니, 그런 말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고 했다.
“불편해도 그냥 살아요. 밥상도 없어요. 에어컨만 추가됐어요. 미니멀리스트라는 말이 있는지도 몰랐고, 필요한 것만 해 놓고 살고 있어요. (왜 그러고 사나?) 그렇게 물어도 그러고 사는 건데. 쉴 때는 음악 듣기 좋아하고, 기타 치는 거 좋아하고, 햇빛 보는 거 좋아하고, 커피 좋아하고, 누워있는 거 좋아하고, 이 다섯 개를 집에서 다 해요.”
피부가 많이 탔다고 하자 나인우는 “‘1박2일’ 촬영하다 그렇게 됐다”고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소속사 허재옥 실장의 말은 달랐다. 허 실장은 “내가 못산다. 하루에도 30분씩 거리에 나가 있다가 다 태우고 온다. 요즘은 더우니까 에어컨 켜진 베란다에 나가서 앉아 있는데 햇빛 받는 게 그렇게 좋단다. ‘광합성 한다’라면서”라고 했다. 참고로 인간에겐 엽록체가 없어서 광합성을 할 수 없다.
나인우를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는 “힘을 받는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옛날에는 어르신들이 많이 알아봤는데 지금은 젊은 친구들이 알아봐서 사진을 많이 찍어 드려요. 식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절 사랑해주고 응원해주는 분들 덕분에 움직여요.”
수광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나인우는 한참을 고개 숙이고 있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수광아, 아픔과 어려움을 누구보다 많이 겪었지만 너에게 사랑을 알게 해주고 너 자신을 찾게 해준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고 사랑을 주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저도 수광이처럼 받은 사랑 돌려드리면서 행복하게 살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여담
인터뷰를 마치고 나인우에게 셀카를 요청했다. 슬쩍 ‘팬심’을 담아 물었다. “나인우 씨, 한국에선 팬 미팅 언제 해요?”
나인우는 “아!”하더니 고개를 돌려 허 실장을 보며 화통을 삶아 먹은 목소리로 “누나 나 팬 미팅 언제 해? 나의 ‘생애 첫 팬 미팅’ 언제 잡아줄 거야?”라고 크게 물었다.
실장 누나의 복잡한 사정을 뒤로하고 우리끼리 이미 팬 미팅을 기정사실로 하고(장소도 정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나인우가 팬 미팅 아이디어를 달라고 해서 ‘캐논 록’ 기타 연주는 어떠냐고 했더니 그가 “와!”하고 손뼉을 쳤다. 하지만 이내 풀죽은 레트리버 표정이 되더니 “그걸 치려면 3~4년은 걸리는데”라며 시무룩해했다. 레드벨벳의 ‘빨간 맛’을 추면 팬들이 좋아할 텐데 당시엔 그 생각을 못 했다. 과거 그는 한 드라마에서 이 춤을 팔랑팔랑 췄는데 팬들 반응이 열광적이었다.
당장 군대에 가는 건 아니라기에 차기작 소식도 빨리 들려달라고 당부했다. 나인우는 “‘동감’ 영화 촬영을 마무리하고 차기작을 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소속사에 따르면 대본 들어온 게 좀 있어서 들여다보고 있다고.
엘리베이터까지 같이 가면서 도란도란 얘기했는데, 나는 그가 다음 인터뷰를 하러 가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팬이라고 배웅해 준 것이었다. 정감 어린 덕담과 하트와 미소, 눈물 이모티콘이 담긴 사인도 받았는데, 그가 애교 많고 귀여워서 요런 사인을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는 정말 안 귀엽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