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동원, 볼카운트 2-0에서도 “칠테면 쳐봐” 배짱투구

입력 2011-09-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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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몸을 태워 불꽃처럼 폭발한 그의 역동적인 투구는 우리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았다. 야구만화에서 금방 나온 것 같은 금테 안경을 쓴 투수, 홈런을 맞은 코스에 다시 공을 던지는 당당함. 우리가 ‘불꽃 에이스’ 최동원에게 열광했고 그를 영원히 기억하는 이유다. 스포츠동아 DB

무쇠팔 최동원의 3색 매력
카리스마 금테안경 너머 번뜩이던 자신감과 승부근성
화끈 투구 홈런 맞으면 다음타석 같은 코스 삼진 잡아내
독한 투혼 팀 100경기 중 51경기 등판 범접 못할 능력
팬들이 최동원에 열광한 것은 단순히 승리를 많이 거두는 ‘특급투수’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뭔지 모를 신비감이 있었고, 잊지 못할 임팩트가 있었고, 인간의 한계를 넘어 신의 영역을 넘본 카리스마가 있었다.

외모부터가 남달랐다. 당시로는 보기 드문 금테 안경. 그 안경 너머로 섬광처럼 번뜩이는 눈빛에는 승부근성이 서려 있었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트레이드마크로 삼았던 스포츠형 머리는 투혼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시원시원했다. 불같은 강속구에다 동작도 빨랐다. 포수의 사인이 나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 한번 끄덕인 뒤 특유의 다이내믹한 동작으로 공을 뿌렸다.

다리를 한껏 들어올린 뒤 도리깨질을 하듯 휘두르는 팔. 작은 체격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만의 투구폼을 개발했지만 이런 역동적인 투구폼 때문에 타자는 타석에서 위압감을 느꼈고, 팬들은 뭔지 모를 경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당시 동네야구를 하던 어린이들 중 최동원의 투구폼을 흉내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좀처럼 피해가거나 에둘러 가지 않았다. 볼카운트 2-0에서도 ‘칠 테면 쳐라’는 식으로 던지는 정면승부. 홈런을 맞으면 다음 타석에서 똑같은 코스에 똑같은 구종을 찔러넣어 삼진을 잡아내고야 마는 오기. 1970년대와 80년대, 개발도상국의 국민으로 힘겹게 살아가던 이 땅의 서민들에겐 최동원의 투구야말로 막힌 가슴을 뚫어주는 청량제로 작용했다.

영화나 만화의 주인공 같았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 신의 영역에 도전했다. 고교 시절과 대학 시절부터 연투 능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었지만, 프로에 입문한 뒤로도 그는 보통 투수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도전을 이어나갔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만 5경기에 등판해 4경기에서 완투를 펼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신화를 썼다. 특히 4승(1패)을 혼자 거두는 투혼을 발휘했다. 그해 페넌트레이스에서도 팀의 100경기 중 51경기에 등판했고, 14차례 완투를 펼쳤다. 그해 기록한 27승은 전년도 장명부의 30승에 이은 역대 2위 기록. 순수 한국선수만 따지면 역대 1위다. 1984년에 기록한 정규시즌 27승과 한국시리즈 4승은 다시는 탄생하기 힘든 불멸의 기록으로 평가받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팀의 승리를 위해 좀처럼 등판을 마다하는 법이 없는 희생정신과 투혼. 현대야구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혹사였고, 이로 인해 그의 투수생명은 짧아졌다. 그러나 그가 전해준 강렬했던 추억을 우리는 잊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 금테안경을 쓴 스포츠형 머리의 강속구 투수는 ‘천상(天上)의 마운드’에 오르기 위해 몸을 풀고 있는지 모른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eyston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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