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캐피탈의 혁신, ‘여오현 45세 현역 프로젝트’

입력 2016-09-13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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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오현은 여전히 KOVO의 정상급 리베로이자 월드 리베로다. 일본 오사카 전지훈련지에서 만난 여오현은 진지하게 조연에서 최고의 조연, 그리고 코트의 주인공이 되는 과정을 말했다. 사진제공 | 현대캐피탈

여오현은 여전히 KOVO의 정상급 리베로이자 월드 리베로다. 일본 오사카 전지훈련지에서 만난 여오현은 진지하게 조연에서 최고의 조연, 그리고 코트의 주인공이 되는 과정을 말했다. 사진제공 | 현대캐피탈

현대캐피탈은 그룹 문화 자체가 ‘긱(geek·괴짜)’스러움을 지향한다. 그들의 독특함이 겉멋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파고들면 그 나름의 필연성이 들어있다. 그룹의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배구단도 기존관념에 도전하는 혁신적 실험을 전방위적으로 실행 중이다. 일본 오사카에서 현대캐피탈의 전훈을 취재하는 과정 속에서 그들의 차별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임을 체감할 수 있었다. 통념을 깨는 움직임 중 하나가 베테랑 리베로 여오현 플레잉코치(38)의 ‘45세 현역 프로젝트’다.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의 상상력이 작동한 끝에 나온 결론인데, ‘얇은 선수층으로 어떻게 조직의 효율성을 유지할 것인가’란 고민에서 출발한다. 이제 배구선수 수명이 몸 관리의 치밀함에 따라 어디까지 연장될 수 있는지, 우리는 여 코치를 통해 검증하게 될 것이다. 당사자인 여 코치는 이 초유의 실험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었다. 일종의 책임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 45세 현역 프로젝트 “리베로니까 가능할 수 있다”

여오현은 “45세 현역 프로젝트 자체가 감사하다. 팀에서 도와주시니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겠다”고 말했다. 일본에 와서 잠시 중단됐지만 캐슬오브스카이워커스(천안에 지은 현대캐피탈의 복합훈련시설·이하 캐슬)에서 이미 여오현 전용 식단과 훈련 메뉴가 2주간 가동된 상태다. 다른 선수들과 달리 탄수화물과 지방을 줄인 ‘도시락’을 따로 섭취한다. “밥심으로 살았는데 힘들다”고 웃었다. 프로젝트의 현실성 여부에 대해 여오현은 “리베로는 움직임은 많지만 점프를 안 하니까 공격수에 비해 체력소모가 덜하다. 부상이 적게 올 수 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여오현이 꼽는 리베로의 조건은 순발력과 판단력이다. 경험이 많을수록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 플레잉코치 신분이지만 중요한 미팅을 제외하면 선수만 전념한다. “감독님하고 송병일, 임동규 코치가 많이 배려해준다”고 고마워했다. 그 대신 코치들이 파악하기 어려운 선수들의 미묘한 분위기를 알려줄 수 있다. 오사카 전훈에서는 외국인선수 톤 벤 랭크벨트의 융화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오레올에 비해 확실히 차이가 있다는 것을 선수들도 느낄 것이다. 토종선수들이 외국인선수에게 의지하지 않고, 소통하며 가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한다.”

현대캐피탈 여오현. 사진제공|현대캐피탈

현대캐피탈 여오현. 사진제공|현대캐피탈



● 살아있는 리베로의 역사가 말하는 리베로의 미덕

리베로 동반자였던 최부식(38·대한항공)이 은퇴해 올 시즌부터 코치가 됐다. 이제 현역선수 중 여오현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는 블로킹 전문 센터 방신봉(41·한국전력)뿐이다. 여오현도 배구선수로서 천수를 누린 셈이지만 ‘7년을 더 가보자’는 누구도 가지 않은 목표가 생겼다. “사실 30대 중반부터 몸이 하루하루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럴 때 은퇴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월 앞에 일방적으로 지고 싶진 않다. 내가 길을 열면 같은 포지션의 후배들이 오래 할 수 있다. 그래서 잘해야 된다.”

여오현은 레프트 공격수 출신이다. 1998년 리베로 제도가 도입된 후 전향했다. “그때는 공을 받기만 하는 리베로를 하라고 하니 답답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덕분에 지금까지 배구를 할 수 있었다. 키 작은(175㎝) 레프트가 대학졸업하고 진로가 불확실했는데…. 받는 것 하나는 자신 있었다. 리베로는 뒤에서 안 보이는 자리 같지만 배구팬들이 룰을 잘 아시니까 관심을 많이 받는다. 유니폼부터 다르니까 눈에 확 들어온다.”

여전히 KOVO의 톱 리베로로 군림하는 비결에 대해 여오현은 “리베로도 서브리시브와 디그를 다 잘할 순 없다. 장점은 극대화하고 단점은 기술적으로 보완한다. 기술 외적으로 코트 안에서 리베로는 동료들과의 융화가 중요하다. 리베로가 후위 수비라인을 구축하려면 대화해야 되니까 활발한 움직임과 소통을 잘해야 한다. 배구는 흐름싸움이다. 수비라인이 뒤에서 디그로 공격포인트 1점만 받쳐줘도 흐름이 바뀐다. 리베로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하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2001년부터 16년 동안 부상 없이 시즌을 계속 뛰어왔다. 1년에 40경기만 잡아도 600경기를 훌쩍 넘겼다. “이제 긴 시즌을 어떻게 하는지 알 것 같다. 힘든 타이밍이 오면 페이스 조절을 알아서 한다. 감독님도 지난 시즌 전반기 ‘투 리베로’를 운영해 체력관리를 해주셨다. 45세 현역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리베로 1000경기 출장도 꿈이 아니다.”

현대캐피탈 여오현. 사진제공|현대캐피탈

현대캐피탈 여오현. 사진제공|현대캐피탈



● 여오현의 존재 자체가 우리 시대 40대를 향한 응원가

최 감독이 여오현의 45세 현역 프로젝트를 결심한 것은 그의 성실성을 전제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16시즌 동안 다치지 않고, 풀 시즌을 뛴 경력이 곧 증명이다. 여오현은 “부모님이 좋은 몸을 물려주신 덕분”이라고 웃었지만 웨이트 트레이닝을 보약처럼 챙겼다. “리베로는 하체 힘이 많이 필요하다. 하체 강화 훈련은 자신과의 싸움일 수 있는데 그런 걸 잘 견디는 기질이 있는 것 같다.”

오사카에서 여오현은 건강목걸이를 샀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두 아들(여광우·여광민)을 위해서다. 큰 아들 광우(11)는 배구를 시작했다. “야구나 축구 해봐라 하니, ‘싫다’더라. 아빠처럼 키가 작을 수 있다 하니, ‘리베로 안하고 세터 하겠다’고 하더라. 일단 좋아해야 열심히 할 것 같아 허락했다”고 미소를 머금었다. 여오현은 “나도 좋아서 배구를 시작했다. 어정쩡하게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현실을 알기에 말리고 싶은데 겁을 줘도 한다니 어떻게 하겠느냐?”고 자랑 같은 걱정을 내비쳤다. ‘45세 현역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부자(父子)선수를 코트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자 여오현은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오사카(일본)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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