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K기업은행 박정아(맨 오른쪽)가 3일 청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KOVO컵 KGC인삼공사와 결승전에서 공격하고 있다. 청주|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이 감독은 선수 칭찬에 인색하기로 소문난 지도자다. 반면 지적은 깨알 같다. 이런 이 감독이 KOVO컵을 앞두곤 내심 마음을 비웠다. 리우올림픽 여자대표팀을 이끄느라 팀을 비웠고, 핵심전력인 세터 김사니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연습경기부터 연전연패였다.
그러나 막상 KOVO컵에 돌입하자 예선 2경기(도로공사전 3-1, KGC인삼공사전 3-1)와 4강전(GS칼텍스전 3-1)에서 차곡차곡 승리를 쌓더니, 결승까지 거칠 것이 없었다. 이 감독은 “기술을 가르치는 것보다 기술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론의 소유자다. 이런 이 감독이 리우올림픽이 끝나고, KOVO컵이 열리기까지 신경을 썼던 이가 레프트 공격수 박정아(23)다. 박정아는 “올림픽 후 감독님께 덜 혼난 것 같다”고 말했다.
역대 최강팀으로 평가받던 대표팀은 8강전에서 탈락했는데 박정아가 패배의 주범처럼 몰린 것이다. 박정아는 지금도 “대표팀이 무섭다”고 말했다.
이 감독에 따르면 “처음에는 눈물만 흘려서 말도 붙이기 어려웠다. 정상적 대화가 힘들 지경”이었다. 이 감독은 선수단에 인터넷 댓글을 보지 말 것을 지시했다. 그래도 주위에서 걱정해주는 마음에 댓글 내용을 알려줘 선수 귀에 들어갈 때가 많았다. 고마운 마음은 잘 알았지만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가족이나 진짜 친한 친구들한테는 “배구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말라”고 하고 견뎠다. 버티는 과정에서 “팀 동료들의 진심을 더욱 느낄 수 있었다”고 박정아는 말했다.
팀의 리더인 세터 김사니는 “이제 외국인선수 비중이 줄어드니까 네가 어떻게든 해내야 된다”고 조언했다. 그리고 KOVO컵은 리우의 아픔을 치유하는 무대가 됐다. 이 감독이 “(4경기 중에서) 가장 못했다”고 말했던 결승전에서도 박정아는 14득점을 성공시켰다. 외국인선수인 리쉘, 도로공사에서 이적한 김미연이 들어오며 박정아의 수비 부담이 줄어든 것이 긍정적 영향을 줬다. 에이스 김희진은 센터로 이동했다. 박정아의 역량을 극대화하려는 이 감독의 배려였다.
박정아는 기자단 29표 중 23표를 얻어 MVP로 뽑혔다. 상과 인연 없이 살았는데 첫 수상이다. “아직 실감이 잘 안 난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주신 상 같다”고 박정아는 오랜만에 웃었다.
청주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