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배구대표팀 임도헌 감독. 스포츠동아DB
2000년 시드니올림픽 출전 이후 5번째다. 아쉬운 결과지만 이제 또 4년을 더 기다리며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기적을 꿈꾸던 임도헌 감독과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던 한선수 박철우 신영석 등 베테랑의 헌신에 감사한다. 방송사의 현장중계마저 외면을 받아 중국의 인터넷사이트를 통해서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우리 선수들은 정말 잘 싸웠다.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모두가 말했던 이란과의 준결승전에서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한 것이 결국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 실력의 차이였다. 다만 전력열세 에도 두 세트를 따냈고 5세트 6-10의 절망적 상황에서도 13-14까지 추격한 것에서 우리 선수단의 간절함과 뜨거운 열망이 보였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실패지만 임도헌 감독이 많은 준비를 했고 모든 대표팀 구성원들이 한국 남자배구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올림픽을 위해 진심을 다해 노력해왔음을 보여줬다. 누구의 말처럼 “보면 눈물이 나는 경기였고 우리 선수들”이었다.
우리 선수들은 패배의 쓰라림 속에서도 먼저 “배구팬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투혼을 불살랐던 박철우는 “후배들에게 짐을 떠안겨서 미안하다”고 했다. 물론 본선진출 실패가 불만인 팬도 있겠지만 현재 한국 남자배구가 가진 인적 인프라와 조건에서 후회 없는 경기를 했던 선수들이 죄송해할 이유는 없다. 더 많은 지원과 관심, 성원을 해주지 못한 우리가 미안할 뿐이다.
신영석의 말처럼 이제 한국배구는 다음을 위해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 “그 시기가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진심어린 당부를 잊지 않고 배구계가 움직여야 한다. 이번에도 확인됐지만 결국 국제대회는 누가 더 체격조건이 좋은가와 충실한 기본기를 가지고 있느냐 여부가 승패를 갈랐다.
우리의 선택지는 2개다. 첫 번째는 카타르처럼 좋은 신체조건의 선수를 영입하는 것이다. 피지컬이 좋은 외국의 유망주를 받아들여서 우리 방식으로 육성하고 귀화시켜서 대표선수로 만드는 방법이 있다. 많은 나라에서는 하고 있다. 효율성은 있지만 우리 팬들이 감성적으로 받아들여야 가능한 일이다. 또 상대적으로 체격조건이 떨어진 토종선수들이 개방화의 물결 속에서 희생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두 번째는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유소년배구에 투자해 차근차근 좋은 선수를 길러내는 방법이다. V리그 출범 이후 황금시대를 만들었던 선수들도 못했던 올림픽을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다만 아직은 그 것이 무엇인지 배구행정을 책임지는 사람들은 잘 모른다. 혹시 알아도 내 임기에는 생색이 나지 않기에 외면해왔는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과 인내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한 일이라 결과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래도 한국남자배구의 미래를 위해서는 누군가는 나서서 꼭 해야 하는 일이다.
남자대표팀을 바라보는 생각도 바꿔야 한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을 돌이켜보면 여자대표팀과 많은 비교가 됐다. 지원스태프의 숫자도 코칭스태프 인원도 훨씬 적었다. 팬과 매스컴의 관심도 떨어졌다. 많은 방송사는 여자대표팀의 중계권을 놓고 경쟁했지만 남자대표팀은 포기했다. 이런 무관심과 풍족하지 않은 지원이 쌓여서 지금의 남자대표팀을 만들었다. 이제부터라도 관심과 애정,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많은 아쉬움은 있지만 우리 선수들은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은 용감한 전사였다. 눈물겨운 헌신에 감사한다. 꼭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귀국하기를 바란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