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김순영의 음악과 골프 “티샷은 아리아처럼, 발성은 퍼팅처럼” [셀럽들의 7330]

입력 2024-10-15 13:3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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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 위에서 포즈를 취한 소프라노 김순영

필드 위에서 포즈를 취한 소프라노 김순영


국내 ‘섭외 0순위 소프라노’가 들려주는 골프 이야기
“골프도 음악도 인생” 골프에서 배운 삶의 철학
가을야구의 시즌 … 목이 안 쉬는 야구장 발성의 비법
“다시 받을 수 있을까. 이 선물.”
7월에 있었던 소프라노 김순영의 롯데콘서트홀 리사이틀을 보고 와서 썼던 리뷰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이 리사이틀의 부제는 ‘감사(Gratias)’. “그동안 여러분께 받은 사랑을 또 다른 누군가와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한다”는 김순영의 바람을 고스란히 담은 감사의 선물을 풀어보는 자리였다.

소프라노 김순영은 국내 남녀를 통틀어 공연 스케줄이 가장 타이트한 성악가 중 한 명이다. 조금 과장하면, 오페라는 물론 전국적인 콘서트 포스터도 한 장 걸러 한 번씩 그의 얼굴이 등장할 정도다. 김순영은 한양대 성악과를 나와 독일 만하임국립음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제64회 스위스 제네바 국제콩쿨 파이널리스트 입상(2009), 제6회 대한민국 오페라대상 특별상(2013)을 받았고, 독특하게도 2015년 뮤지컬 팬텀에서 여주인공 크리스틴 디에 역을 맡아, 이 해 스테이지 톡 뮤지컬 최고 여우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소프라노는 소리의 특성에 따라 콜로라투라, 드라마티코, 리리코 등으로 나뉘지만, 기량이 뛰어난 성악가의 경우 표현의 폭이 넓다 보니, 제삼자가 귀로만 듣고 딱 집어 말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이럴 땐 본인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다. 김순영은 “리릭 레체로에 해당하는 서정성을 가진 소리로, 가벼운 리릭 소프라노에 속한다”고 했다. 어쩐지 커브에 커터를 섞은 슬라이더 같은 얘기로 들리지만, 어쨌든 질문하기를 잘했다.

지난 7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독주회 ‘감사’에서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김순영.

지난 7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독주회 ‘감사’에서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김순영.

김순영의 독주회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소리도 아름다웠지만, 이날 김순영은 관객과 일제히 공명하고 있었다. 그것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14년간 무대에서 연주가로 활동하며 노랫소리를 넘어서는, 관객과의 공감과 보이지 않는 에너지 전달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껴왔어요. 제가 마음으로 노래하고 표현하는 것들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신기할 정도로 관객에게 전달되더라고요. 음악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웃음).”

  “티샷은 아리아, 아이언 샷은 모차르트, 퍼팅은 발성”
김순영의 애정 운동은 골프. 골프는 한 달에 2~3번 정도, 많을 때는 4~5번 필드로 나간다. 코로나 팬데믹 직전에 시작했으니, 구력은 5년 정도. 주로 친구, 지인들과 함께하지만 “때때로 남편과 치열한 대결을 벌이기도 한다”며 웃었다. 
골프를 좋아하는 이유, 매력을 느끼는 점을 물으면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답변을 내놓는다. 사람들과의 유대, 자연 속에서 만끽하는 자유, 호쾌한 타격감. 그런데 김순영의 답은 의외였다. 어쩌면 기대했던 답이었을지도.

“티샷은 골프의 하이라이트로, 동반자들에게 처음 보이는 샷입니다. 그만큼 화려하고 긴장되는 샷이지요.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오페라 아리아의 절정 부분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언 샷은 음악으로 비유했을 때 모차르트 음악과 같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교해야만 하고, 힘이 들어가서는 안 되지요. 음악의 기본이 모차르트 음악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골프의 기본은 아이언 샷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순영이 연습스윙을 하고 있는 모습.

김순영이 연습스윙을 하고 있는 모습.

그렇다면 퍼팅은요?
“퍼팅은 발성과 같습니다. 수없는 발성 연습을 통해 소리가 연마되고, 호흡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듯이 퍼팅연습도 마찬가지거든요. 일정한 속도와 템포, 스트로크가 맞아떨어질 때 홀컵에 공을 넣을 수 있게 되지요. 둘 다 인내심이 꼭 필요한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골프를 주제로 작곡된 가곡 같은 작품이 있을까. “아직 저도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웃음). 어느 작곡가가 만들어준다면, 저도 꼭 불러보고 싶네요.”

주변을 돌아보면 자신처럼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골프에 입문한 클래식 예술가들이 많단다. “늘 무대에서 에너지를 써야 하는 직업이기에, 푸른 잔디를 밟으며 바람을 느끼는 골프는 우리에게 소중한 힐링의 시간”이라고 했다.

골프로 깨닫는 인생 “흐름에 맡기고 순간을 즐겨라”
성악가를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스포츠 팬이라면 피해가기 어려운 ‘야구장 발성’이다. 경기장에서 목놓아 응원을 하고나면 5회도 안 돼 목이 잔뜩 쉬어버린다. 남자들은 ‘고음 안 나는 임재범’이 된다.

“목이 쉬지 않는 야구장 발성법이 있을까요?”. 복식호흡 없이 그냥 소리치듯 내는 소리라 성대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단다. 재미있는 건, 성대가 충분히 훈련되어 있는 성악가들도 일상에서 화를 내며 소리치거나 생각 없이 소리를 내면 금방 목소리가 쉬어버린다는 것.
“소리칠 때는 복식호흡과 두성을 이용해서 최대한 성대에 불규칙한 마찰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야구장에서는 띄워서 공명하듯이, 마음껏 소리 지르세요(웃음).”

골프도 음악도, 김순영은 더 멀리, 더 높이 날아갈 것이다.

골프도 음악도, 김순영은 더 멀리, 더 높이 날아갈 것이다.

김순영은 ‘골프도 음악도 인생’이라고 했다. 많이 닮았다. 골이 잘 맞을 때는 신이 나지만, 안 맞으면 짜증이 난다. 안타깝게도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똑같이 공을 치는 데도, 매번 결과는 다르다.
“안 된다고 짜증 부리지 말고, 낙담하지 않는 인내심이 골프에는 필수거든요. 골프를 치면서 저는 스스로 정신력을 단련합니다. 물론 잘 안되지만요(웃음). 골프는 정복할 수 없는 운동이기에 더욱 우리 인생과 비슷하다고 느껴집니다. 그저 흐르는 대로 맡기고, 매 순간을 즐기는 것이 골프의 철학 아닐까요.”

김순영의 하반기도 공연 스케줄로 빼곡하다. 당장만 봐도 27일은 함신익 지휘자가 이끄는 심포니 송과의 협연, 29일은 창작합창서사시 ‘훈민정음’ 출연, 11월 17일에는 푸치니 서거 100주년 기념 공연이 있다. 

“노래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강한 사람, 이라고 믿어 왔다. 노래하듯 골프를 치고, 골프를 치듯 노래하는 사람. 연말은 올 한 해의 끝을 향해 퍼팅하는 시간이다. 김순영의 멋진 버디 퍼팅을 응원한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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