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산틸리 감독-삼성화재 고희진 감독-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 스포츠동아DB
‘2020 제천·MG새마을금고컵 프로배구대회(KOVO컵)’는 비시즌 동안 감독들이 구상한 배구가 선을 보이는 대회다. 시즌 준비과정에서 많은 시간 공들인 부분을 선수들이 어떻게 소화하는지 살펴보고, 수정할 점을 찾아 보완하려고 한다.
대한항공은 수비와 블로킹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것이 확인됐다. 로베르토 산틸리 감독이 국내 취재진과 첫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해온 대한항공의 배구에 소스를 약간 섞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 소스는 생각 이상으로 매웠다. 팀의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중앙에서 세터 한선수와 만들어내는 속공과 블로킹이 탄탄해졌다.
눈에 들어온 것은 산틸리 감독의 불같은 성격이었다. 판정에 이상이 있으면 세트 교체 때 심판에게 따졌다. 훈련도 많이 시키고 선수들이 실수하면 즉시 플레이를 멈추고 수정을 요구했다. 전임 박기원 감독은 선수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지만, 새 감독은 반대였다. “우리 감독님 성격 보통이 아니다”고 어느 코치는 털어놓았다. 매콤한 ‘핫소스 배구’로 변한 대한항공은 3연승, A조 1위로 4강에 올라 대회 2연패를 노린다.
분업화 배구를 상징하던 삼성화재도 변했다. 젊은 고희진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여러 곳에서 달라지려고 노력한다. “다른 팀 선수들이 우리 팀에 오고 싶어 하는 팀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감독의 꿈이 담긴 변화다. 그는 선수들과 소통, 공감을 강조한다. 감독으로서 공식경기 첫 승을 거둔 24일 KB손해보험전에서도 그랬다. 공격 스텝에 변화를 줘 아직 팀에 잘 적응하지 못한 황경민에게 “슈퍼스타, 어떻게 할 거야? 뛸 거야?”라고 의사를 물었다. 선수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교체해준다는 뜻을 유머러스하게 말하며 편하게 해줬다. 선수들은 “감독님께 첫 승을 해드려야 해. 너희들 뭐 하냐”며 서로를 격려하고 다그친 끝에 승리를 따냈다. 고 감독은 “첫 승리가 어렵다는 걸 절실히 느끼게 해준 선수들이 고맙다”고 했다. 4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삼성화재 배구는 ‘공감배구’로 다가올 시즌을 노린다.
또 다른 눈높이를 시도하는 팀도 있다.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이다. 테크니컬 타임아웃이나 세트 교체 때 선수들을 자리에 앉히고 작전지시를 한다. 농구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이다. 선수들이 서서 작전지시를 들었던 것을 최 감독이 바꿨다. 선수와 눈높이를 맞추겠다는 뜻이다.
이와 함께 현대캐피탈은 ‘발 배구’를 시도한다. 배구는 네트를 사이에 두고 점프하는 공중전이지만, 좁은 코트에서 움직이는 선수들의 발이 승패를 가른다고 말해왔다. 그래서 발 배구, 스피드 배구를 늘 거론했지만 기술훈련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 방법은 없었다. 현대캐피탈은 발 배구 구현을 위한 맞춤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임동규 코치를 이 분야 전문가로 키워내기 위해 투자하고 있다. 최 감독은 “아직 변화를 체감하기는 쉽지 않지만 선수들이 주춤하다 못 움직이는 현상이 줄기는 했다. 동작이 자연스러워졌고 유기적으로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발 배구를 앞세워 A조 2위로 4강에 올랐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