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교 이은혜(위)와 현대 이세은이 2009 WK리그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 치열하게 공중볼을 다투고 있다. 고양 |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대교 미드필더 이은혜(23)는 후반 7분, 자신의 오른 발을 떠난 볼이 우아한 포물선을 그리며 상대 골문을 꽂히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맞잡은 채 눈을 꼭 감았다. 눈에는 살짝 눈물이 고였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부상으로 축구를 도중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 이재호(53)씨가 스쳐갔다. 이 씨는 청소년대표까지 지냈던 1970~80년대 스타플레이어 출신. 그러나 고려대 재학 중 건국대와의 경기에서 공중 볼을 다투다가 머리를 땅에 부딪혀 식물인간이 됐다. 병원에서는 3개월 이상 살기가 힘들다는 진단을 내렸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당시 여자친구였던 유자성(52) 씨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유 씨는 식물인간이 된 이 씨를 데리고 기도원에 들어가 곁을 지키며 결혼식까지 올렸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마음이 치유되면서 몸의 감각도 돌아온 것일까. 이 씨는 얼마 후 거짓말처럼 일어났다. 지금도 한 쪽 다리를 절기는 하지만 거동에는 불편이 없다.
그리고 얼마 뒤 얻은 소중한 딸이 바로 이은혜. 그녀가 축구를 하겠다고 선언하자 깜짝 놀란 어머니는 극구 반대를 했지만 아버지는 조용한 후원자가 돼줬다. 이은혜가 고교 시절에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한 경기도 빠짐없이 경기장을 찾았다.
이은혜가 축구를 그만둘 뻔한 시련을 겪었을 때도 아버지는 묵묵히 힘이 돼 줬다. 울산과학대 재학 시절 피로골절로 1년 동안 훈련을 못하는 사이 2006년 신인 드래프트가 찾아왔지만 오랜 공백을 가진 그녀에게 눈길을 돌리는 팀은 없었다.
그러나 당시 대교 사령탑이었던 안익수 여자대표팀 감독이 이은혜의 성실함에 높은 점수를 줘 마지막 순위로 겨우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다. 연봉은 고작 1500만원.
노력의 결실은 곧 찾아왔다. 이은혜는 3년 만에 팀의 주축 미드필더로 성장했고 올 시즌에도 박남열 감독의 신뢰를 등에 업고 매 경기 알토란같은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마침내 챔프전 1차전에서 천금의 결승골이자 자신의 시즌 첫 골을 신고했다.
이날 경기장을 찾지 못하고 TV로 지켜본 아버지에게 딸의 골이 생애 최고의 선물이었다. 이은혜는 “이렇게 중요한 경기에 골을 넣어 정말 기쁘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남은 2차전에서도 최선을 다해 꼭 우승을 차지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양 |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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