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어둠 속 무전기 소동
“눈앞이 캄캄해질 때까지 골프를 쳐본 건 난생 처음이었어요.”‘가을사나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김형태(32)는 지난 9월 특별한 경험을 했다. 되돌아보면 허무하기도 하고 웃음만 나온다.
“삐릭~ 페어웨이 왼쪽으로 떨어졌습니다.”
“휴~ 잘 갔군.”
골프장에서 때 아닌 ‘무전’ 소동이 일어났다.
선수가 티 샷을 하면 경기위원들이 공이 떨어진 위치를 다른 경기위원에게 무전기를 이용해 전달해주는 웃지 못 할 광경이 펼쳐졌다.
지난 9월 17일의 일이다.
강원도 횡성 오스타 골프장에서 열린 한중투어 KEB 인비테이셔널 1라운드에서 김형태와 강지만, 쩌우 준(중국)은 오후 1시에 티오프했다.
평소 같았으면 해가 떨어지는 시간까지 충분히 경기를 끝낼 수 있었지만 이날은 달랐다. 처음 접해본 난코스에 선수들의 플레이가 예상 시간을 훌쩍 넘겼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 조에서 경기를 펼친 김형태와 강지만, 쩌우 준은 해가 떨어진 시간까지 경기를 다 마치지 못했다.
마지막 9번홀(10번홀부터 플레이 시작)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왔을 때는 이미 땅거미가 져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위원회는 선수들에게 계속 플레이를 할 것인지, 다음날 잔여 경기를 치를 것인지 의견을 구한다. 웬만하면 다음날 경기를 계속하는 게 좋겠지만 만약 컷 탈락이 확실시 되는 경우라면 굳이 다음날 경기를 계속하는 것보다 빨리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편이 훨씬 낫다.
쩌우 준의 컷 탈락이 확실한 상황이었기에 경기를 강행했다. 티잉 그라운드에 섰을 때는 볼의 낙하지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했다. 그린에서는 더 심했다. 몇 m 앞에 있는 홀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김형태는 “마치 눈을 감고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떻게 경기를 끝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KLPGA 투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11월 8일 제주 사이프러스 골프장에서 열린 대신증권-토마토투어 한국여자 마스터즈에서 해가 떨어져 승부를 결정짓지 못해 다음날로 경기를 연장하는 일이 벌어졌다.
유소연(19·하이마트)과 김현지(21), 이정연(30)은 54홀 경기로 승부를 내지 못했다. 연장전에 돌입한 시간은 오후 5시30분경. 늦가을의 산속이어서 이미 일찍 해가 떨어져 사물을 분간하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KLPGA는 연장 승부를 강행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선수들은 눈앞이 캄캄해질 때까지 경기를 계속해야만 했다.
미 PGA나 LPGA 투어의 경우 천재지변 등을 대비해 예비일을 정해놓는다. 정해진 시간 안에 경기를 마치지 못하더라도 다음날로 순연해 경기를 재개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별도의 예비일을 지정해 놓지 않아 이 같은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국내 골프장의 경우 대회 유치보다 영업이 우선이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