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스토리 IN 스포츠] 태릉 비밀연애… 큐피드의 화살 명중!

입력 2010-01-3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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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궁 커플’의 사랑은 아름답고 행복하다. 박경모-박성현 커플이 부부의 연을 맺은 2008년 12월 결혼식의 모습. 스포츠동아DB

[3]박경모-박성현 부부선수촌 함께 있어도 ‘따로 또 같이’ 들킬까 조마조마 스릴만점 데이트이젠 태릉 언덕길도 손잡고 당당히! 성현아, 결혼하길 정말 잘했지? ㅋㅋ
2008년 1월. 박경모(35·공주시청)의 아버지 박하용 씨는 박성현(27·전북도청)의 얼굴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아들이 처음으로 “결혼하고 싶다”며 데려온 여자였다. 안 그래도 아들을 응원하러 갔다가 먼발치에서 몇 번 봤던 참. 박 씨는 “참 곱다. 고맙다”라는 말을 연발했다. 임파선 육종이라는 희귀암으로 세상과의 작별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예비 며느리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 이후로도 아들은 종종 며느리감을 데려와 인사시켰다. 볼수록 참하고 귀여워서, 아들과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 해 4월. 양가 상견례를 했다. 박 씨가 거동할 수 있을 때 인사를 마치자는 뜻에서였다. “베이징올림픽에 다녀오면 결혼시킵시다.” 양가는 흔쾌히 둘의 결혼에 합의했다. 그리고 한 달 후, 박 씨는 영영 눈을 감았다. 박경모는 “성현이를 며느리로 여기고 눈을 감으셔서 내가 마음의 짐을 덜었다. 안 그랬다면 불효자가 됐을 것”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박성현과 함께 달랜 것은 물론이다.

○7년 간 가랑비처럼 젖어든 사랑

두 사람의 첫 만남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경모는 상무 소속이었고, 박성현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실업팀 선수였다.

세계선수권 대표 선발전에서 처음으로 만났지만, 당시만 해도 그저 ‘동료’였을 뿐. 박경모는 슬럼프에서 벗어나느라, 박성현은 정상급으로 도약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던 시기였다. 하지만 2001년 전지훈련을 함께 떠나면서 둘은 조금씩 가까워졌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2005년 세계선수권,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등 굵직굵직한 국제대회도 도화선이었다.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으면서 조금씩 다른 여자 선수들 사이에서 눈에 띄더라고요. 예쁘게 보이기도 하고요.”

한 번 출발한 감정은 쉽게 멈출 수 없다. 박경모는 자기도 모르게 박성현을 따로 챙기기 시작했다. 박성현도 유독 자신에게 잘 해주는 오빠를 따랐다. 사랑에는 점점 가속도가 붙었다. 그리고 2007년 11월23일.

올림픽 대표 선발전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박경모는 “지금 얘기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만 같다”는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걸 느꼈다. 곧바로 군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말했다.
“좋아한다. 내 여자친구가 돼줘.”

박성현은 박경모가 놀랄 정도로 흔쾌히 승낙했다. 이미 서로 마음이 통했기 때문이다. 박경모는 “성현이는 차가워 보이는 첫 인상과 달리 활발하고 장난도 잘 치고 마음이 넓다”고 했고, 박성현은 “무척 성실하고 부모님과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남다른 남자”라고 했다. 시작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만큼 결심은 쉬웠다.

박성현-박경모. 스포츠동아DB


○태릉에서 벌어진 ‘007 비밀연애 대작전’

그 때부터 비밀연애를 위한 ‘007 작전’이 시작됐다. 태릉선수촌에 입촌해 있었기에, 평일에는 멀리서 눈빛을 교환하는 게 전부였다. 주말 외출이 유일한 데이트 기회. 토요일 불암산 크로스컨트리를 마친 후 사람들이 하나 둘씩 빠져 나가면, 둘은 태릉 안에 아무도 남지 않은 걸 확인하고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마저도 함께 문밖을 나서는 건 불가능했다. 박성현이 언덕배기를 걸어 내려가 정문 밖에서 기다리고, 박경모가 차를 몰고 나가 몰래 태우는 식이었다.

태릉으로 복귀할 때도 마찬가지다.

숙소 앞에서 연인과 작별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했다. 박경모가 박성현을 태릉 인근 버스 정류장에 내려주면, 박성현은 “오빠는 날 버린 사람”이라고 입을 삐쭉하면서도 묵묵히 숙소까지 택시로 이동하는 불편을 감수했다. 그래도 남몰래 공기 좋고 인적 드문 춘천이나 양평으로 드라이브를 떠날 때면, 행복한 마음이 샘솟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들킬 뻔한 위기도 있었다. 선수촌 입구에서 막 박성현을 태운 박경모의 차가 신호에 걸려 멈춰 있는데, 무심코 고개를 돌렸더니 바로 옆 차에 문형철 국가대표 감독이 탄 게 아닌가. 게다가 조수석에는 팀 동료 윤옥희가 앉아있었다. 박성현은 빛처럼 빠른 속도로 의자를 뒤로 젖혀 누워버렸고, 박경모는 황급히 담요를 집어 여자친구를 가렸다. 하지만 이후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결국 둘은 문 감독과 윤옥희에게 괜히 전화를 걸었다. ‘봤는지, 못 봤는지’를 체크해보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다행히 목격 불발. 박경모는 말했다. “그 땐 미안했어요!”

○세상이 눈치 챈 사랑, 그리고 축복

아무리 숨기려 해도 끝까지 감출 수 없는 게 사랑이다. 베이징올림픽 남자 단체전 금메달을 따내고 인터뷰장으로 향하던 박경모는 문득 손에 들린 꽃다발을 봤다. 주변을 둘러보자 눈에 띄는 연인의 얼굴. 그래서 다가가 “잠시 갖고 있어달라”며 꽃다발을 건넸다. 그게 발단이었다.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졌다. “둘이 사귀는 거 아니야?” 서울에 돌아가려면 발표하려고 일단
부인했지만, 이미 소문은 퍼졌고 언론 보도로 이어졌다. 주위 지도자들은 “어떻게 나에게조차 비밀로 할 수가 있냐”며 노발대발했고, 동료 선수들은 “어쩐지 이상했다”며 분노(?)의 펀치를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두 금메달리스트의 사랑은 결국 전 국민의 축복을 받았다. “걱정 많이 했는데, 주변에서 축복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올림픽이 끝나고 박성현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떠난 박경모는 촛불을 켜고 풍선을 불어 달콤한 프러포즈를 준비했다. 박성현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두 사람은 그 해 12월8일에 백년가약을 맺었다.

○여전히 애틋한 신혼부부…2세는 셋 낳고파

박경모는 “결혼하니 애정표현을 숨기지 않아도 돼 너무 좋다”고 했다. 이제는 태릉 언덕길을 손잡고 내려올 수도 있고, 늘 붙어있어도 모두 당연하게 여긴다. 연애 때의 스릴이 사라진 대신 안정감이 둘 사이를 굳건하게 한다.

같은 일을 하다보니 불편할 때도 있지만, 대표 선발전이나 메이저 대회를 앞두고는 서로 좋은 코치 노릇도 해준다.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기 때문이다.

둘은 지금 주말부부다. 주중에는 태릉에서 ‘따로 또 같이’ 지내다, 주말에 공주 집에 와서야 신혼을 만끽한다. 남녀 구분 없이 셋을 낳아 잘 키우겠다는 자녀 계획은 현재 진행형. 가족이 북적였으면 좋겠다는 남편의 바람에 아내도 흔쾌히 동의했다. 모르긴 몰라도,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는 대한민국 최고의 양궁 유전자를 타고날 듯 하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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