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기자의 베이스볼 벤치스토리] 한화 박정진, 어엿한 ‘불펜 필승카드’ 우뚝

입력 2010-05-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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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청주 LG전 8회초. 8-5로 앞서던 한화는 2점 홈런을 얻어맞고 1점 차로 쫓겼다. 그리고 다시 볼넷∼안타∼안타. 1사 만루였다.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한화 한대화 감독은 곧바로 한 베테랑 투수를 마운드에 올렸다. 그 결과는 이랬다. 투수 땅볼로 3루 주자를 묶어 놓고 투 아웃, 그리고 삼진. 박정진(34)은 마운드를 내려와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후배들 사이로 뛰어 들었다. 오랜 만에 느껴 보는 성취감이었다. 그는 “이런 게 중간 계투의 매력”이라며 웃었다.

● 위기 뒤 찾아온 기회 ‘놓치지 않는다’

늘 기대를 많이 받았다. 공익 근무를 마치고 복귀한 2007 시즌에는 더 그랬다. 스스로도 의욕에 불탔다. 하지만 성적은 기대 이하. 부상도 끊임없이 찾아왔다. 2008년에도, 2009년에도 마찬가지였다. 한 시즌이 끝날 때마다 ‘내가 방출되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까지 엄습했다. 팀 분위기도, 주변의 전언도 불안하기만 했다. 지난해 말 새로 부임한 한대화 감독이 “팀에 좌완 불펜이 별로 없으니 내보내지 말자”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지금쯤 야구장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을 지도 모른다. 위기 뒤에는 기필코 기회가 온다. 지난 겨울 나가사키 교육리그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이다. “원래는 어린 유망주들만 보내거든요. 베테랑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가요. 하지만 감독님께서 허락해 주셨어요. 후배들은 ‘저 형이 왜 가지?’ 싶었겠지만, 저는 그 곳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어요. 감사한 일이죠.”

정작 시즌 초반엔 밸런스가 무너져 고생 좀 했다. 하지만 벼랑 끝에 서본 덕분에 절박함을 알았다. 신인 같은 마음으로 여기저기 조언을 구했고, 스스로가 옳다고 믿는 쪽을 선택했다. 무엇보다 새로 부임한 성준 투수 코치와 2년간 룸메이트였던 정민철 투수 코치는 그에게 기술적·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줬다. 순조로운 새 출발을 도운 은인들이다. 투수 조장인 그를 잘 따르는 후배들도 든든한 힘이 된 것은 물론이다. 그는 “힘들다고 야구를 놓았다면 미련이 많이 남았을 것 같다”고 했다. 12일 청주 경기는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초반에는 점수차가 큰 경기에 주로 등판했지만, 이제는 1점 차의 결정적 위기가 그의 몫이다. “막아낸 뒤의 희열도 크고, 무엇보다 저에 대한 믿음이 느껴진다는 게 참 좋아요.”

새 시즌을 앞둔 프로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새 각오와 목표를 품는다. 하지만 그 각오와 목표를 현실로 이뤄 내는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 박정진은 올해 ‘특별한 선수’가 될 각오다. 프로 데뷔 12년차가 되는 올해, 그에게 야구는 ‘행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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