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문 생애 첫 PGA 우승 뒤엔 어머니가 있었다…배모삼천지교

입력 2013-05-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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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프로골프 상금왕을 거쳐 2012년 미국 PGA 투어로 진출한 배상문이 20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어빙의 포시즌스TPC에서 열린 HP 바이런넬슨 챔피언십에서 PGA 첫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제공|캘러웨이골프

홀몸으로 캐디 자처…지극 정성 후원
경기 부진에 호통…출입정지 당한 일도

아들 경기 당일 절 찾아 밤새워 불공
“꿈에서 꽃다발 받아” 우승 예견 길몽
이젠 골프장서 소리지르는 일 없을 것


맹모삼천지교 못지않은 배모삼천지교(裵母三遷之敎)! 배상문(27·캘러웨이)의 성공 뒤엔 어머니가 있었다.

배상문은 20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어빙의 포시즌스TPC(파70·7166야드)에서 열린 바이런넬슨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에서 2011년 PGA 챔피언십 우승자 키건 브래들리(미국)를 접전 끝에 2타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최종성적은 13언더파 267타. 2012년 미 PGA의 문을 두드린 지 2년 만에 첫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한국 선수로는 최경주(43·SK텔레콤), 양용은(41·KB금융그룹)에 이어 세 번째 PGA 투어 우승자가 됐다. 재미교포를 포함하면 앤서니 김(27·나이키골프) 케빈 나(30·타이틀리스트), 존 허(23)에 이어 여섯 번째다.

또 배상문은 한국인(재미교포 제외)으로 PGA 투어에서 우승한 최초의 20대 선수가 됐다. 최경주는 32세(2002년 컴팩클래식), 양용은은 37세(2009년 혼다클래식)에 첫 우승을 신고했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후원’이 컸다.

배상문에게 어머니 시옥희(57) 씨는 특별한 존재다. 평범한 모자(母子)가 아니다. 시 씨는 아들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절을 찾는다. 20일(한국시간) 대회 마지막 날에도 시 씨는 경남 합천의 해인사에서 불공을 드렸다. 매번 해온 일이지만 이번엔 느낌이 달랐다. 그리고 예감 좋은 꿈까지 더해졌다.

“꿈에서 낯선 남자가 꽃다발을 선물했다. 그때 문득 ‘혹시 우리 아들이 우승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 씨의 일상은 이렇듯 늘 아들과 함께 한다. 한마디로 지극정성이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어머니는, 아들의 경기에 따라가지 못할 때는 절을 찾는다. 그리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불공을 드리는 게 당연한 일이 됐다.

그는 아들을 홀로 키웠다. 그래서 때론 ‘극성’이라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그건 시 씨만의 특별한 가르침이었다.

배상문은 어머니의 교육에 대해 “나에겐 보약”이라며 “억척스럽게 행동하시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찡할 때가 많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배상문은 2011년 일본프로골프투어 상금왕에 오른 뒤 “어머니는 나만을 바라보고 계신다. 나에게 어머니는 코치이면서 친구이자, 멘토다. 혼자의 몸으로 모든 역할을 다 하신다. 어렸을 때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듣기 싫을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철이 들었는지 어머니의 잔소리가 약으로 들린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없었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시 씨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 배상문이 골프를 시작한 중학교 때부터 프로가 돼서는 캐디를 자처하며 투어생활을 함께 했다. 그러다보니 불미스러운 일도 종종 있었다. 경기 중 아들을 다그치고 혼을 내는 일이 많았고, 한번은 경기 운영에 간섭하다 한국프로골프협회로부터 대회장 출입정지까지 당했다. 다른 이의 눈에는 극성스런 엄마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 역시 배상문에겐 자양분이 되었다.

지금도 시 씨는 아들을 위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4월 발렌타인 챔피언십 때의 일이다. 배상문은 PGA 투어 출전을 마치고 급하게 귀국했다. 서둘러 오다보니 비행기 안에서 잠을 잘 못 잤다. 그 때문에 목 부위의 근육이 뭉쳤다. 대회 하루 전, 프로암에 나가려던 배상문은 목 통증이 더욱 심해졌다. 결국 프로암에서는 스윙 한번 해보지 못하고 9홀 동안 걷기만 했다.

시 씨는 아들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때도 해인사에 있다가 서둘러 서울로 올라왔다. 다음날 경기를 치러야 하니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자칫 초청선수로 출전했다가 기권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었다.

시 씨는 “밤새 지인들에게 전화해 치료를 잘한다는 곳과 통증이 빨리 낫는 약을 찾아다녔다. 하루 종일 수소문한 끝에 결국 서울에 있는 한 의료원을 찾았고, 통증에 좋다는 약도 구했다. 그날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정성에 배상문은 다음날 정상적으로 대회에 출전했다.해인사에서 아들의 우승 소식을 전해들은 시 씨는 “아들이 이제 PGA 투어에서도 우승했으니 더 이상 간섭하지 않겠다. 앞으로 골프장에서 소리 지르는 일도 없을 것”이라며 웃었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na1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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