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현 기자의 브라질 24시] 함께 벨기에 응원하던 한 - 러 기자들, 본경기 시작하니 기싸움 팽팽

입력 2014-06-19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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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역전골 터지자 서로 박수 갈채
경기가 끝나자 양국 기자들 다시 냉랭

브라질 쿠이아바 현지시간으로 17일 오전 11시. 한국과 러시아 기자들이 단체로 머물던 마토 그로수 팰리스 호텔 로비가 갑자기 붐비기 시작합니다. 양국 취재진의 이날 오전 관심사는 똑같았죠. 1시간 뒤 벨루오리존치에서 열리는 2014브라질월드컵 H조 1차전 벨기에-알제리전이었습니다.

남미대륙 정중앙의 쿠이아바는 벨루오리존치보다 1시간 느려 정오까지는 TV 앞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호텔 카운터에 방 열쇠를 맡기고 서둘러 나선 기자들의 행선지는 비슷했습니다. 아레나 판타날 SMC(스타디움미디어센터)였죠.

그런데 호텔에서 경기장까지 이동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리더군요. 여기서 머문 최근 나흘간 겪지 못한 교통체증 때문이었습니다. 휴일도 아닌데, 축구를 사랑하는 브라질인들답게 쿠이아바의 시민들이 오후 3시 킥오프하는 자국과 멕시코의 A조 2차전을 관전하기 위해 사업장 문을 닫고 일찍 퇴근길에 올랐다죠? 그 덕분에 평소 15분 거리가 30분까지 늘어났습니다. 그나마 빨리 움직여 시간이 덜 걸렸습니다.

사실 브라질-멕시코전은 전 세계가 주목한 빅매치죠. 하지만 저희에게는 벨기에-알제리전이 훨씬 중요했습니다. 브라질의 미래는 상관없었죠. 한국과 러시아 모두 향후 벨기에와 알제리를 만나잖아요. 현장에서든, 그렇지 않든 다음 상대국들을 살피며 자국 대표팀의 대비책을 미리 생각해보는 것 역시 기자들의 일입니다.

재미있게도 서로 생각이 비슷했나 봅니다. SMC에 마련된 대형 평면TV 앞 테이블에 노트북을 펴고 자리한 한국 기자들도, 러시아 기자들도 벨기에를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있었죠. H조에서 가장 강한 상대가 쭉 치고 나가 자국이 조 2위 싸움을 수월히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죠.

기자라면 객관적 시각을 지녀야 하는데, 막상 한국의 경기가 다가오자 빨간 티셔츠(심지어 대표팀 유니폼까지)를 입은 이들이 대거 눈에 띄더군요. 어찌됐든 여기까지는 동지 모드였습니다. 전반 25분 알제리 페굴리가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뽑자 탄식이 나오더니, 후반 25분 벨기에 펠라이니가 동점을 만들자 갈채가 터집니다. 이후 벨기에 메르텐스의 결승골 때는 휘파람까지 들리더군요.

하지만 종료 휘슬이 울리자 모두가 금세 이성을 되찾았습니다. 더 이상 함께 응원할 일이 없어진 거죠. 앞으로 16강 진출을 위해선 각자의 길을 걸어야 하고, 서로를 반드시 꺾어야 할 적이기 때문이죠. 경기 전날 공식 기자회견에 앞서 만나 꽤 오래 대화했던 러시아 기자와 우연히 눈길이 마주쳤는데, 가벼운 인사조차 없이 조용히 시선을 피하더군요. 4시간 뒤 이어진 초록 그라운드에서의 90분 혈전도 치열했지만, 각자 자존심을 건 양국 기자들의 기 싸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오전의 동지가 오후의 적, 그렇게 쿠이아바의 마지막 밤이 흘러갔습니다.

쿠이아바(브라질)|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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