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위해 돌아온 35세 ‘맏형’ 이현일의 선물

입력 2014-09-25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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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현일.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세계 최강 중국 꺾고 단체전 금메달 이끈 배드민턴 이현일

후배들 위해 2번이나 국가대표서 은퇴
인도네시아 진출…해외진출 가교 역할
철저한 자기관리로 AG서 만리장성 격파

5시간 20분의 혈투가 끝나는 순간, 이용대(27·삼성전기)는 코트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곧장 후배들을 향해 두 팔을 벌린 서른다섯 노장 선배의 품에 안겼다. 자신의 아시안게임 첫 금메달을 완성해준 선배를 높이 헹가래치며 무려 28년 만에 단체전에서 중국을 함께 꺾은 기쁨을 나눴다. 이용대를 넓은 품으로 끌어안은 이는 바로 배드민턴 국가대표 맏형 이현일(MG새마을금고)이다.


● “후배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두 차례나 스스로 국가대표 은퇴

이현일은 이미 두 차례나 국가대표에서 스스로 은퇴했었다. 오롯이 후배들을 위해 국가대표에서 은퇴했고 다시 후배들을 위해 태극마크를 가슴에 품었다. 그리고 12년 만에 자신이 선배들에게 받았던 금메달이라는 영광스러운 선물을 후배들에게 전했다.

이현일의 국가대표 은퇴는 2004년 배드민턴 남자 단식 세계랭킹 1위에 올랐던, 그래서 한국 셔틀콕 역사상 사상 처음으로 남자단식 올림픽 금메달을 기대했던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 컸다.

2012런던올림픽에서 4위를 기록하며 대표팀에서 은퇴한 이현일은 중국 천룽에게 패하며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한국 배드민턴에도 톱클래스 단식 선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중국과 유럽, 동남아시아에 각인시켰다. 여전히 세계랭킹 톱10 실력을 갖고 있었지만 옛 선배들이 그랬든 대표팀을 스스로 떠났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두 번째 국가대표 은퇴였다.

배드민턴은 1년 내내 전 세계에서 대회가 이어진다. 총 상금규모가 100만 달러 이상인 대회도 많다. 상금과 함께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랭킹은 배드민턴 선수들이 세계를 누비며 땀을 쏟는 가장 큰 이유다. 세 번의 올림픽을 마친 이현일은 “이제 후배들이 국제대회에서 더 많은 기회를 가질 때 인 것 같다”고 짧게 말하며 아쉬움을 삼켰다. 자신이 떠나면 국가대표에 한 자리가 생기고 더 많은 후배들이 세계랭킹 포인트를 쌓고 상금을 받을 수 있는 국제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거라 생각했다.


● 국내선수 해외리그 진출 1호… 국내대회 없을 땐 인도네시아 리그서 출전

실업리그로 돌아온 이현일은 후배들을 위해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있었다. MG새마을금고 창단 멤버로 국내대회 우승을 이끌며 신생팀 돌풍을 일으켰다. MG새마을금고의 선전은 포스코특수강, 인천국제공항 등의 실업팀 창단의 물꼬를 텄다. 이현일은 국가대표 은사이자 현 소속팀 사령탑 성한국 감독의 허락을 받고 국내대회가 없을 때 인도네시아리그 뮤치카 챔피언 소속으로 해외리그서 뛰고 있다. 남자단식 세계랭킹 1위 리총웨이와 한 팀이다. 이현일은 “국내 선수가 해외리그에 참가한 것은 내가 처음이다. 후배들의 해외진출에 가교 역할을 했다는 점이 한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 열 살 아래 후배들과 땀 뻘뻘

MG새마을금고와 뮤치카 챔피언의 우승을 바라보며 한국대표팀은 이현일에게 다시 한번 대표팀 유니폼을 권했다. 우리나이로 서른다섯, 비교적 체력소모가 극심하지 않은 야구선수였다고 해도 노장이다. 35세는 배드민턴 선수에게 환갑을 지난 칠순, 팔순 나이다. 그러나 이현일은 철저한 자기관리로 여전히 세계 정상급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득춘 대표팀 감독은 “단체전에서 중국을 꺾기 위해서는 노련하고 담대한 이현일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후배들을 위해 다시 들어선 태릉선수촌, 열 살 아래 이동근(MG새마을금고)과 치열하게 훈련하며 땀을 쏟았다.

그리고 23일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중국과 운명의 결승전, 후배들은 5단식 주자 이현일 앞에서 세계최강 중국과 2-2로 비겼다. 마지막 일전에서 가호우한(24)을 꺾고 금메달을 함께 품었다. 이현일은 “2002아시안게임 단체전에 막내로 참가해 선배들 덕분에 금메달을 땄다. 후배들에게 그 선물을 되돌려 주는데 12년이 걸렸다”며 깊은 감동이 묻어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ushl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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