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키워드로 본 현실 술·옥상·커피믹스·성희롱

입력 2014-12-05 0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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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tvN

회사 생활하며 가장 좋았던 건 술을 배운 거지.
외로운 거 이놈한테 풀고…
싫은 놈한테 굽신거릴 수 있었던 것도 다 술 때문이지.


‘미생’은 ‘원 인터내셔널’이라는 대기업(무역상사)을 배경으로 치열한 해외영업에 나선 상사맨들의 이야기다. 그 속에서는 하루하루 치열한 경쟁에 뛰어든 이 시대 수많은 월급쟁이들이 살아 숨쉰다. 힘겨운 노동의 단순한 대가를 넘어 직장생활의 유일한 보상인 “월급과 승진”에 목매는 이들은 ‘미생’으로 자신들의 ‘애환’을 실감한다. 그 ‘애환’의 키워드, 드라마가 그려내는 현실의 또 다른 상징이다.


● 가장 좋았던, 그러나 가장 후회하는 것…술

‘미생’의 천과장(박해준)은 계약직의 비애를 곱씹고 있는 장그래에게 말한다.

“회사 생활하며 가장 좋았던 건 술을 배운 거지. 외로운 거 이 놈한테 풀고, 힘든 거 이거 마시며 넘어가고…. 싫은 놈한테 굽신거릴 수 있었던 것도 다 술 때문이지.”

월급쟁이들에게 술은 외로움과 힘겨움, 먹고 살아야 하는 비애감을 털어내게 하는 소중한 친구일 터. “가장 후회하는 것도 술을 배운 거지. 일상을 즐겨본 적도, 한가한 걸 누려본 적도 없다”는 천과장은 그래서 “즐겁게 마셔. 독이 된다”면서 “물은 올리고 불은 내려라. 술은 열을 올린다”며 ‘수승화강(水昇火降)’을 떠올린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 애환이 서린 공간…옥상

‘미생’ 속 인물 치고 옥상을 찾지 않은 이 없다. 극중 옥상은 원 인터내셔널의 외관이기도 한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의 실제 공간. 열심히 일한 뒤 머리를 식히며 담배 한 개비의 짧은 휴식을 즐길 수 있게 해 주는 곳, 상사 ‘뒷담화’를 키득거리며 풀어낼 수 있는 공간, 홀로 고독을 삼키다 다시 현실의 치열함으로 돌아가도록 다짐을 안겨주는 또 다른 무대다. ‘옥상’이 아니더라도, 그런 공간 하나쯤 어느 회사에나 있다.

사장님들! ‘옥상’문 열어주세요!


● “그래도 이게 황금비율이야!”…커피(믹스)

‘미생’에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일회용 커피다. PPL로 등장하는 커피믹스의 브랜드가 유독 눈에 거슬리지만 커피믹스를 마시는 이들의 모습은 보는 이의 입맛을 다시게 한다. “황금비율”로 종이컵에 담긴 커피는 서로 “우리”임을 느끼게 한다. 그 달짝지근함으로는 스트레스를 잊게도 한다. 금방 식어버려 어느새 벌컥 한 모금으로 넘어가는 그 맛은 수많은 ‘미생’들에게 작은 위안이 된다.


● “파인 옷 입고 온 여자가 잘못이지”…성희롱

남성 위주의 조직문화에 온통 물들어 여직원에 대한 희롱의 언사를 서슴지 않는 이들. ‘미생’의 대표적 ‘불량가부장’인 마부장(손종학). 이 시간 수많은 ‘마부장들’은 “내가 만지기를 했어, 들여다보길 했어? 숙일 때마다 가릴 거면 뭐 하러 그런 옷 입고 왔니? 그냥 다 보이게 둬! 내놓고 다녀도 볼 만한 것도 없네”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있을지 모른다. 그 희롱의 언사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이들에겐 “기센 여자들 등살에 살 수가 없다”며 오히려 당당하다. 모멸감과 수치심에 떨고 있을 여성들이여! 그 수많은 ‘마초 아닌 마초’들에게 외쳐라.

“비겁하다! 나쁘다! 좀 많이!”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tadada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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