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토피아] ‘팀 문화 실종’ 롯데의 변화를 기다리다

입력 2015-08-10 05:4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구단주대행과 사장이 오너가의 다툼에서 다른 길을 택한 롯데 자이언츠. 지난해 CCTV 사찰 파문의 후유증 속에 모든 것을 새롭게 바꿨지만, 신생팀과 다름없는 행보로 여전히 부산 팬들의 기대치에 밑돌고 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팀을 이끄는 정신, 팀 문화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더 크다. 스포츠동아DB

■ 2015 롯데와 팀문화

CCTV 사찰 파문 급조된 프런트·코칭스태프
엔트리 등록일 착각…심수창 선발·불펜 거듭
구단주대행-사장 ‘서로 다른 길’ 설상가상

8월 들어 화제의 정점에 선 팀은 롯데다. 야구때문만은 아니었다. 모기업 오너 일가가 얽힌 이전투구에 원치 않게 끌려들어갔기 때문이다. 누가 그룹의 주인이 될지는 그들끼리 알아서 할 일이고, 프로야구 팬의 입장에서 롯데를 지켜보는 포인트는 따로 있다. 이 싸움이 어떤 식으로든 결말이 난 뒤 자이언츠의 미래다.

하필 구단주대행이 이번 싸움의 중심에 있다. 신동인 구단주대행은 신동주 전 부회장 편에 섰다. 신격호 총괄회장을 따라 일본까지 갔다. 반면 이창원 자이언츠 사장은 신동빈 회장의 사람으로 분류된다. 4일 신동빈 회장을 지지하는 롯데그룹 사장단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구단을 이끄는 투톱이 서로 다른 길에 섰다. 야구단 내부의 누구라도 어디에 줄을 서야 할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프로야구단은 수많은 계열사들 가운데 수익을 내지 못하는 소규모 사업체지만, 팬이라는 소비자와 가장 가까이 있다. 모기업과 오너의 부정적 이미지를 단시일에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는 프로야구단만한 것이 없다. 롯데가 일본기업이라는 인식에 불매운동까지 벌어지고 있지만, 아직 자이언츠의 경기를 보이콧하자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프로야구단이 차지하는 그룹 홍보의 역할은 돈 이상이다. 요즘 이글스 덕분에 김승연 회장과 그 일가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사라지고 한화그룹의 이미지도 덩달아 좋아지고 있다. ‘광복절 사면’ 이야기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 2015년 롯데는 신생팀이다!


롯데는 지난 시즌 CCTV 사찰 파문으로 사장과 단장, 운영부장이 동반 퇴진하는 홍역을 앓았다. 현재 프런트의 중심에는 프로야구를 아는 사람이 드물다. 지난 시즌 팀을 이끌었던 코칭스태프 대부분도 물러났다. 숱한 오해 속에 아까운 사람들이 떠나갔다. 현재 코칭스태프는 그 공백을 메우려고 급조됐다. 2015시즌의 롯데는 이런저런 이유로 제10구단 kt와 마찬가지다. 신생팀의 위치에서 출발했다. 30년 넘게 야구단을 운영해온 노하우가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

서투른 행보는 시즌 도중 이런저런 해프닝을 만들었다. 엔트리 등록일을 착각했던 것이 단적인 예다. 코칭스태프의 전략적 미숙함은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대표적 사례가 아직도 정돈되지 않은 불펜과 마운드다. 심수창을 마무리에서 선발로, 다시 불펜으로 돌리는 등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시즌이 60% 이상 지나갔지만 여전히 어지럽다.

비록 올 시즌은 실패하더라도 다음 시즌은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라도 보여줘야 하는데 그마저도 없다. kt와 결정적으로 다른 대목이다. kt는 시즌 초반 수많은 패배를 통해 보완을 거듭했고, 그 결과 이제는 다음 시즌 누가 어떤 역할을 하고 누가 주전으로 성장할 것인지 큰 그림과 희망이 엿보인다. 롯데에는 여전히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그 일을 해야 할 리더가 지금 없다. 비극이다.


● 야구단이 일부를 보여준 롯데의 기업문화

현재 롯데그룹 경영진은 형제의 싸움만 바라보며 일손을 놓고 있다고 한다. 오너의 손가락질에 전문경영인이 하루아침에 물러나는 체제에선 어느 누구도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눈치만 보고 납작 엎드려서 각자도생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그래서 리더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올바른 조직문화를 만드는 일이다. 롯데 야구단을 20년 넘게 알아왔지만, 그동안 롯데를 경험했던 사람들로부터 들은 얘기들 가운데 상징적인 말은 이렇다. “롯데는 도둑질만 하지 않으면 잘리지 않는 회사다.” 어느 원로 야구인의 얘기다.

롯데 자이언츠도 기업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1984년 롯데가 사상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던 그날 밤, 우승의 주역 강병철 감독은 실망했다. 천신만고 끝에 우승을 차지한 뒤 열린 우승축하연이 기대이하였던 것이다. 결국 그 불만은 보너스를 둘러싼 ‘과자 값’ 발언으로 이어졌고, 강 감독은 롯데를 떠났다. 그날 선수단이 원했던 것은 엄청나게 화려한 파티도 아니었다. 고생한 만큼 인정해달라는 얘기였다.

롯데의 문제는 항상 그런 사람들의 기대치를 밑도는 보상과 대우에 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노력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쳐주지 않는 조직을 사랑하진 않는다. 게다가 롯데 야구단을 경영하는 리더들의 기본 생각은 제과업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선수들의 연봉을 따질 때 어느 사장은 “그 돈이면 공장에서 만드는 검이 차로 몇 대인데”라고 했다. 선수단 관리도 공장의 생산라인 연장선상에서만 생각했다. 그 결과 롯데는 자랑스러운 전통을 만든 스타들과 악감정을 가지고 헤어졌다.


● 이성민의 SNS와 자이언츠의 팀 문화

롯데 이성민은 2일 경기 도중 SNS를 사용해 문제가 됐다. 4일 구단 자체 징계위원회에서 벌금 300만원과 10경기 출장정지가 결정됐다. 이성민은 경기 도중 불펜에서 휴대전화로 SNS를 했다. 몇 년 전 일본프로야구에선 외국인투수가 강판당한 뒤 라커룸에서 SNS를 한 것이 발각돼 징계를 받았다.

기자는 이성민의 행동에서 자이언츠 팀 문화의 부재를 본다. 시즌 도중 다른 팀에서 왔던 25세의 어린 선수가 휴대전화를 경기 도중 마음껏 사용할 수 있도록 선배들이나 동료들이 방치해뒀다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롯데 선수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야구를 하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자이언츠의 팀 문화 부재는 사실 선수들의 문제는 아니다. 선수들은 팀을 거쳐 가는 순간적 존재다. 이들을 팀 이름 아래 하나로 뭉치게 하고 자랑스러운 전통을 만들어 문화가 되도록 만드는 것은 프런트와 코칭스태프가 해야 할 일이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간과 노력, 성과, 구성원 모두의 의지가 화학적 결합을 이뤄야 하고 리더가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가능하다. 선수가 좋고 때를 잘 만나면 우승은 할 수 있지만, 팀 문화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진정한 리더는 구성원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전문적 지식과 실행력이 필요했지만, 지금까지 롯데는 이 점을 외면했다. 오직 대증요법만 사용했다. 여론이 나쁘거나 성적이 좋지 못하면 사장, 단장, 감독만 바꾸는 방법으로 아까운 시간을 낭비했다. 어느 누구도 미래를 생각하거나 바라보지 않았고, 그 결과가 2015시즌 오리무중의 롯데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