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작가 츠치다 히데오의 작품 ‘살짝 넘어갔다가 얻어맞았다’를 연출한 김광보 연출이 입을 뗐다. 5일 언론에게 공개된 이 작품은 경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제45 갱생시설’에 지내던 두 간수와 여섯 명의 수감자가 이 교도소를 경계로 둘로 나뉘어졌다는 소식을 들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양갑 성(유병훈)은 “여긴 꾸리야, 저긴 동꾸리야”라며 장난스럽게 선을 하나 긋는다. 처음엔 모두들 그 경계선을 가지고 “해외여행 갔다 귀국했다”라며 놀다가 출신을 가리고 날선 말들이 오가며 인간의 지질한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김광보 연출은 “이 작품은 무겁지 않고 재미있게 그렸다. 원작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단지 관객이 보기 편하게 이름이나 지명 정도만 바꿨을 뿐이다. 선을 그은 것을 시발점으로 패거리 문화가 만들어지고 종국까지 치닫는 것을 표현했다. 어두운 인간의 본성을 역설적으로 유쾌하게 풀어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날 함께 참석한 작가 츠치다 히데오는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는 당시 일본과 중국은 영토문제로 정치적 관계가 좋지 않았다. 마침 중국에 가게 됐는데 거기서 알게 된 중국인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귀국했다. 그런데 일본은 중국에 대한 거센 비판이 있었다. 그 때, ‘나라’와 ‘국경선’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이 작품을 쓰게 됐다”며 작품을 쓰게 된 의도를 밝혔다.
전날 최종 리허설을 본 츠치다는 “한국 배우들이 매력적이었다. 연기가 뛰어난 사람일수록 튀어 보이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팀은 협동심이 좋더라”며 여덟 명의 배우를 칭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배우 유연수, 김영민, 유병훈, 이석준, 유성주, 한동규, 이승주, 임철수는 주연급 배우들로 자칫 캐릭터들이 스며들지 않고 튀어 보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에 김광보 연출은 배우들에게 ‘배려’를 강조했다.
“주연급의 배우들을 캐스팅 해놓고 앙상블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가 화두였다. 한 팀으로 잘 해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배우들에게 ‘배려’를 요구했다. 이에 ‘런 스루’가 거했던 점도 있었다.”
극중 다혈질의 장창 우 역을 맡은 이석준 역시 “’김광보 사단’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이 모였다. 한 작품씩 주연을 했던 터라 나 역시 앙상블이 걱정됐다”라고 말했다.
“이 배우들이 앙상블을 이뤄서 부딪히진 않을까, 기다려주고 상대방을 메워줄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연기가 넘쳐나진 않을지 걱정도 됐다. 그런데 선배님들부터 이미 배려를 해주셨다. 배우들이 내려놓은 작업을 많이 했다. 김광보 연출가께서 ‘배려’를 강조하셨다. 연습 시작하면서 들었고 어제도 들었다. 아마 공연 내내 듣지 않을까 싶다. 하하.”
이어 그는 “김광보 연출가는 무대 위에서 배우 본연과는 다른 이면의 모습을 꺼내신다. 우리를 너무 잘 아신다. 너무 오랫동안 친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내 캐릭터는 좀 실망스럽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잘못 뽑았다는 느낌이 든다”라고 웃으며 농을 쳤다.
수용소에 갓 들어온 신입 ‘수철 용’을 맡은 김영민은 “인간의 치졸한 심리가 우리에게도 숨겨져 있다는 걸 연출가님께서 간파하신 것 같더라. 숨겨져 있는 진정성과 자기 개성을 표현하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이구 허’ 역을 맡은 이승주는 “우리의 깊숙한 지질함을 (연출가님께서)끄집어 내셨다. 나는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라고 전하자 김광보는 “잘생긴 배우가 지질하면 더 지질하지 않겠냐”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연극 ‘살짝 넘어갔다가 얻어맞았다’는 11월 5일부터 18일까지 LG 아트센터에서. 문의 02-5005-0114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LG 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