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 우현주 “여배우 위해 만든 극단, 사회적 책임도 느껴요”

입력 2015-12-13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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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들 위해 만들었던 극단,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적인 책임감도 느껴져요.”

2007년 첫 작품으로 ‘썸걸(즈)’를 올려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울다가 웃으면’, ‘디너’, ‘갈매기’, ‘벚꽃동산’, ‘프로즌’ 등으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극단 ‘맨씨어터’가 올해를 지나면 9살이 된다. 당시 대학로에 여배우가 설 자리가 없던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 우현주와 함께 여배우 3명이 극단 ‘맨씨어터’를 만들었다. 그러다 이석준, 박호산, 박해수 등 남자배우들이 들어오며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극단을 꾸리게 됐다.

“여배우들은 30~40대가 되면 보통 일을 계속 할 것인지, 결혼이라는 새로운 인생길을 걸을 것인 것 고민을 하게 돼요. 제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그 시기는 넘기기 힘든 것 같아요. 저 역시 혼자서 이 길을 뚫고 갈 수는 없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친한 여배우들과 이 극단을 시작했죠. 그러다 이석준 씨가 합류하게 되고 박호산 씨도 들어오게 됐죠. 덕분에 우리 극단이 하고자 하는 바를 잘 이뤘던 것 같아요.”

특히 올해는 극단 대표 우현주에게 조금은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한 해다. 극작가 브리오니 레버리 대표작 ‘프로즌’이 연일 매진 행렬을 이뤘다. 연장 공연까지 하게 됐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한 연쇄살인범, 연쇄 살인으로 어린 자녀를 잃게 된 엄마, 다양한 사례의 연쇄살인범을 연구하는 정신과 의사의 삶이 씨줄과 날줄로 얽히며 인간 본성을 파헤치는 이 작품은 소위 ‘멘탈 탈곡기’라 불릴 정도로 한 번 보면 기가 빠지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연일 매진 사례를 이루는 모습을 보며 우현주는 “호불호가 갈린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불호’만 있을 줄 알았던 작품”이라고 말했다.

“최근에 ‘검은 사제들’이 흥행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이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아무리 강동원 씨가 좋아도 작품이 안 좋다면 그렇게 성적이 좋진 않았을 거예요. 관객들이 예전보다 다양한 장르를 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프로즌’도 마찬가지였어요. 난해하고 불쾌한 장면이 있어서 선호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많은 분들께서 좋아해주셔서 큰 용기를 얻었어요.”

맨씨어터가 이번에 도전하는 작품은 연극 ‘터미널’이다. ‘터미널’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주목 받는 젊은 작가들로 이루어진 ‘창작집단 독’의 소속 작가들이 집필한 아홉 가지 단편으로 구성된 작품.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혹은 어딘가로 돌아오기 위해 모두가 거쳐 가지만 결코 머무르지 않는 공간 ‘터미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독특한 이야기와 솔직 담백한 대사는 2013년 초연 당시 연극 팬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화제를 모았다. 또한 신선한 창작극을 만들어내기로 정평이 난 전인철 연출을 필두로 한 최고의 스탭들과 대학로 대표 배우들의 만남은 색다르고 수준 높은 연극에 대한 관객들의 갈증을 완벽하게 해소해 주며 호평을 모았다.

2015년 새롭게 재구성되어 공연되고 있는 ‘터미널’은 기존 작품 중 인기 있었던 ‘전하지 못한 인사’, ‘소’, ‘Love So Sweet(러브 소 스윗)’3편과 작품과 더불어 새롭게 집필된 6편의 작품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그 중 우현주는 출퇴근을 위해 찾던 서울역에서 만나 6개월 동안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가까워진 두 사람이 같이 떠나기로 한 여행길에 나타나지 않은 여자로 인해 그 동안 나누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들을 꺼내며 시작되는 ‘거짓말’에서 열연 중이다.


“‘창작집단 독’의 김현우 작가에게 ‘멜로’를 써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랬더니 ‘선배님이 출연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거짓말’을 맡게 됐어요.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했어요. ‘이별’에 대한 이야기인데 정작 주인공들은 구구절절이 자신의 이야기나 하고 있잖아요. 이게 뭘까 생각해봤어요. 원했지만 꿈이 꺾이는 순간에 대해 말하는 것이었어요. 여자와 남자는 일상에서 벗어나 함께 ‘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결국 현실 때문에 그 꿈을 꺾고 말죠. 우리 주변에서도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요. 어떠한 이유로 자신의 꿈을 꺾어야 하는 경우 말이에요. 아마 오글거리는 부분이 있을지 몰라도 어느 순간 확 와 닿는 순간이 있을 것 같아요.”

‘소’, ‘망각이 진화를 결정한다’ 등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공감을 살 만한 주제의식이 맞닿아 있다. 한 사람이 일생에 할 수 있는 노동의 양을 넘어서면 소가 된다는 신선한 설정 아래 소가 되어버린 아버지를 우시장에 팔기 위해 모인 삼형제의 이야기를 그린 ‘소’, 2165년 미래의 우주선착장 대합실에서 사고로 인해 원치 않게 몸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한 여자와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사이보그화 시키는 것이 취미인 남자가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망각이 진화를 결정한다’는 ‘4대강 사업’과 ‘세월호 사태’에 관한 사회 문제를 다루기도 한다. 이는 극단이 성장하며 성숙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각자 가져가시는 것들이 다르시더라고요. 상황적으로, 감정적으로 처해진 부분이 많을 테니까요. 하지만 아무래도 작년에 우리 모두에게 큰 재난이 있었고 트라우마가 컸기 때문에 ‘소’나 ‘망각이 진화를 결정한다’를 많이 좋아하시더라고요. 저희도 초반에는 배우 중심의 연극을 했지만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요. 작품을 바라보는 눈이나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책임적인 의식이 생긴 거죠. 작품이라는 게 즐겁게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앞서 말했듯, 2007년 창단된 극단 ‘맨씨어터’는 2년 뒤면 10살이 된다. 감회가 새롭지는 않다. 꾸리면서 힘든 적도 많았고 작품을 올리지 않고 쉬어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한 번도 공연을 안 올린 적은 없었다. 그는 “이렇게 살려고 한다. 극단 식구들을 바라보면서”라고 말을 줄이다 “같이 성장해나가는 극단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맨씨어터’는 ‘형제의 밤’의 김봉민 작가를 영입해 내년 ‘흑흑흑 희희희’를 올린다. ‘프로즌’의 김광보 연출과 함께 ‘데블 인사이드(가제)’를 하게 될 예정이다. 그는 “김봉민 작가는 예측할 수 없는 장르의 작품을 만든다. 그 동안 라이선스만을 하는 극단처럼 보여지는 두려운 시점이 됐는데 김 작가만의 B급 정서로 재미있는 창작극을 만들 것”이라고 했고 “’데블 인사이드’는 3~4년 동안 고민했던 작품이다. 영화로 치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작품과 같은 잔혹한 웃음이 있다”라고 말했다.

“‘프로즌’을 하면서 관객을 믿고 작품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데블 인사이드’도 용기도 생겼고요. 게다가 이슈와 정치 등이 아니더라도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고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굳이 무대에서까지 생활 연기를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가장 중요한 것은 연극의 기본 정신에 충실한 것이겠죠. 날것이 고스란히 살아있으면서 퇴보하지 않고 진화하는 것이요. 깨어서 살아있어야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게 계획이라면 계획이에요. 지켜봐주세요.”

※ 우현주가 출연하는 연극 ‘터미널’은?

어딘가로 떠나거나 돌아오기 위해 모두가 거쳐 가지만 결코 머무르지 않는 공간인 ‘터미널’을 배경으로 수많은 노선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와 사연들을 아홉 가지 단편 안에 담아낸 옴니버스 연극이다.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2015년 11월 25일부터 2016년 1월 10일까지 공연된다. 문의 02-569-1614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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