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브레이크] 박한이 때문?…스피드업 강화 오해와 진실

입력 2014-12-27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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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이. 스포츠동아DB

박한이. 스포츠동아DB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3일 서울 강남구 KBO 회의실에서 경기 시간 단축을 위한 경기 스피드업 관련 회의를 열고 규정을 한층 더 강화했다. 그동안 스피드업을 위해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노력했지만 이번엔 실질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 강력한 시행 세칙을 마련한 것이 특징이다. 올 시즌 평균 경기시간이 역대 최장인 3시간27분을 기록함에 따라 모두가 경기 지연의 심각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권고와 경고 대신 과감하게 페널티를 적용하는 항목을 늘렸다.

2015시즌에 새롭게 시행될 스피드업 규정은 어떤 것이 있으며, 왜 이런 규정을 만든 것일까. 또한 고려했던 일부 항목은 왜 빠진 것일까. 규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면 선수도 팀도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궁금할 만한 경기 스피드업의 오해와 진실을 파헤쳐본다.


Q-타자 등장 시 배경음악인 BGM(Background Music)은 10초 이내로 하고, 타자는 BGM이 끝나기 전에 타석에 들어서야 한다.

A-신설된 부분이 아니다. 2014 대회요강 ‘경기의 스피드업’ 규정과 관련해 ‘5.타자 ⑦’항에 이미 명문화돼 있다. 다만 그동안 이에 대한 제재 규정은 없었다. 그런데 일부 선수는 “나만의 루틴이 있다”며 BGM이 다 흘러나온 뒤에야 비로소 덕아웃에서 방망이를 들고 타석으로 걸어 나가는 선수들이 있었다.


Q-그래도 BGM이 다 끝난 뒤 타석으로 향하는 선수가 있다면 어떻게 되는가?

A-위반 시에는 주심이 타자가 타석에 서지 않더라도 투수에게 투구를 지시한 뒤 스트라이크를 선언하도록 했다. 신설된 규정이다. 투수가 던진 공이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지 않아도 심판은 무조건 스트라이크를 선언하게 된다. BGM을 트는 시점이 논란이 될 수 있어 BGM 담당자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KBO가 직접 BGM 담당자를 만나 정확히 설명할 예정이다.


Q-타자의 불필요한 타임을 불허하고, 타자는 타석에 들어선 순간부터(대회요강에 명시된 예외가 인정되는 경우 제외) 최소 한 발은 타석 안에 두어야 한다. 위반 시 주심은 투수에게 투구를 지시한 후 스트라이크를 선언한다.

A-종전에는 1차 경고 후 2번째 이탈시 스트라이크를 선언하도록 했지만, 이번에 경고 없이 바로 스트라이크를 선언하도록 했다. 그동안 투수는 12초룰 등 스피드업과 관련한 규정이 엄격하게 적용된 반면 타자에게는 별다른 제재가 없었다. 이번에 타자에게도 강력한 페널티를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경고를 통해서는 습관이 고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Q-타석을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시간을 소모하기에?

A-KBO가 준비한 영상자료에 따르면 H구단의 K선수는 볼이 들어오거나 스트라이크가 들어오거나 무의식적으로 공 1개마다 타석을 벗어났다. 공을 지켜보기만 했기 때문에 몸의 중심을 잃지도 않았지만 타석에서 벗어나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뭔가를 고민하다 다시 타석 앞에서 배트를 가랑이 사이에 끼우고 장갑을 고쳐 낀 뒤 비로소 타격 준비에 들어갔다. 투구수 5개를 상대하는 데 무려 2분16초나 걸렸다. 오히려 삼성 박한이가 헬멧을 벗었다가 다시 쓰고, 장갑을 고쳐 쓰고, 배트로 홈플레이트 앞에 선을 긋는 동작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반면 넥센 서건창과 삼성 최형우는 볼이나 스트라이크를 지켜본 뒤에는 두 발 모두 타석에서 벗어나지 않는 대표적인 타자로 꼽힌다. 양 다리를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타격 준비자세에 들어간다. 최형우는 투구수 5개를 상대하는 데 1분43초가 걸렸다. 물론 영상에는 동일한 투수가 아니라 투구 인터벌이 다른 투수였지만, 공 5개를 상대하는데 K선수는 최형우보다 33초가 더 걸린 셈이었다. 한 경기 4타석(타석당 공 5개)을 기준으로 하면 한 타자가 무려 2분 이상 더 잡아먹게 되는 셈이다. 만약 승부가 길어져 9~10구 승부를 기준으로 한다면 K선수는 혼자서 타석당 4~5분을 더 소모할 수 있다.




Q-대회요강에 명시된 예외가 인정되는 경우는?

A-대회요강에는 타자가 타석을 이탈할 수 있는 경우를 9가지 항목으로 정리해놓았다. ▲타격행위를 한 후 중심을 잃었을 때 ▲몸쪽 공을 피하기 위해 타석을 이탈하는 경우 ▲양팀 벤치에서 타임을 요청할 때 ▲폭투나 패스트볼이 일어났을 경우 ▲투수가 투구 뒤 볼을 받고 마운드를 벗어났을 때 ▲포수가 수비지휘를 위해 포수석을 벗어났을 때 ▲부상 또는 선수의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배트교환 등 정당한 이유로 타석을 벗어났을 때 ▲천재지변이나 그 외의 경우로 인하여 경기가 중단되었을 때 ▲기타 주심이 인정하는 경우


Q-만약 박한이처럼 타격준비 동작으로 시간을 끌 경우 제재조항은 없나?

A-두 발 모두 타석에서 벗어나지 않고 자신만의 타격 준비동작을 하면 현재로서는 제재할 근거는 없다. 선수 개개인의 습관까지 지나치게 강제적으로 금지할 경우 경기력과 형평성에서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한이 외에 다른 선수들도 자신만의 루틴이 있기 때문에 두 발만 타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제재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한 발은 반드시 타석에 있어야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는 충분히 압박감을 받을 만한 상황이다. 박한이는 “스피드업 규정이 강화된다는 기사를 봤다”면서 “스프링캠프부터 준비해 보겠다. 나만의 타격 준비동작이 규정에는 벗어나지 않지만 스피드업 취지에 맞출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 1개마다 타석에서 멀리 벗어나는 선수들도 많은데 왜 나만 갖고 그래~”라며 우는 목소리로 하소연(?)을 했다.


Q-타자는 볼넷이나 사구 때(부상시 제외) 뛰어서 1루로 출루하고, 보호대는 1루에 출루한 후 주루코치에게 전달한다.

A-일부 선수는 볼넷 후 어슬렁거리며 걸어가는 것이 습관이 돼 있다. KBO가 준비한 영상자료를 보면 L구단의 C선수는 실제로 볼넷을 얻어낸 뒤 보호대를 타석 앞에서 천천히 풀고 양반이 산보를 하듯 1루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볼넷 후 1루까지 도착하는 데 34초가 소모됐다. 반면 다른 L구단의 젊은 C선수는 볼넷 후 1루까지 뛰어가다 보니 11초 걸렸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두 화면을 비교해 보면 한 쪽은 느릿느릿한 동작 때문에 지루함을 느낄 수 있고, 한 쪽은 전력질주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쾌하게 뛰어가다 보니 박진감이 넘쳤다. 심한 통증을 수반하는 사구야 어쩔 수 없지만, 가벼운 사구에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처럼 통증을 참고 뛰어가는 장면이 훨씬 더 강인한 인상을 준다. 물론 볼넷이나 사구시 뛰어가도록 하는 규정은 권고 사항이다.


Q-감독 어필 시 수석코치 동행을 금지하고, 위반시 해당 코치를 퇴장시킨다.

A-일부에서는 “수석코치가 함께 나가야 감독과 심판의 싸움이 확대되는 것을 말릴 수 있다”는 주장도 하지만, 수석코치가 싸움을 확전시키는 사례도 발생하곤 한다. 감독에게 과잉충성을 하려다 수석코치가 오히려 심판에게 감정이 상할 만한 말을 하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감독이 심판에게 어필할 상황이 발생하면 혼자 나와서 항의를 한다. 굳이 수석코치를 동행시킬 이유는 없기에 이번에 감독 어필 시 수석코치가 동행하면 퇴장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이번 스피드업 강화 규정의 특징은 경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야구의 본질까지 훼손할 수 있는 조항은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고의4구(볼넷) 시 투수의 투구 없이 감독의 시그널에 의해 타자가 자동 1루 진출권을 얻는 방안. 메이저리그에서도 도입을 검토했지만 아직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다. 투수의 투구가 폭투가 될 수 있고, 포수가 일어서서 투구를 받을 때 주는 긴장감과 후속 타자와의 심리전 등 고의4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의 재미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서 선수와 팬들, 코칭스태프가 심각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부분이지만 실질적으로 시간을 많이 소모하는 항목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제재방안을 시행하기로 했다. 한 경기에 양 팀 합쳐 70타석이 진행된다고 가정하면, 한 타석당 무의식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10초만 줄여도 경기 시간을 10분 이상 단축할 수 있다. 물론 지난해 경기 시간이 길어진 가장 큰 원인은 투수가 타자를 이기지 못하는 극심한 타고투저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경기력을 제도를 통해 인위적으로 강제 조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타석에서 불필요하게 벗어나지 않기, 볼넷 후 1루로 뛰어가기 등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하다보면 경기 시간도 줄이고 야구에 훨씬 더 큰 박진감을 입힐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eyston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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