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출신 메이저리그 안타 제조기 스즈키 이치로는 지난해 올스타 브레이크를 앞둔 인터뷰에서 타율을 2할 2푼만 쳐도 된다면 40홈런도 때릴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안타를 만들어내는 기술과 홈런을 만들어내는 타격 기술은 다른 만큼 안타를 치기 위해서 공격하다보니 홈런을 때릴 수 없는 것이지, 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칠 수 있는 게 홈런이라는 자신 있는 표현이었다. 실제 그런 일을 시도하진 않았기 때문에 결과는 알 수 없었지만, 일부 전문가들이나 팀 동료들은 이치로가 스윙 방식만 바꾼다면 30홈런, 많게는 50홈런도 가능할(실제 그의 평균 홈런 수는 고작 9개) 잠재적 홈런왕으로 받아들이기에 망설임이 없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타율(.357), 최다안타(168), 출루율(.454)로 주로 안타로 만들어낼 수 있는 부문을 휩쓸며 타격 3관왕을 거두었던 김현수가 홈런 타자로 크고 싶다는 의견을 밝혀 모두를 놀랍게 했다. 지금 가진 재능만으로도 이미 국내 정상급 타자임에도 타율을 줄여서라도 홈런을 더 치고 싶다는 그의 의지는 컨트롤만으로 리그를 평정한 투수가 더 빠른 볼을 던져 볼넷이 늘어나더라도 탈삼진을 늘리고 싶다는 말처럼 센세이션 했다. 나아가 지난해에는 9개에 그쳤지만, 일단 2009 시즌에 15개 정도의 홈런을 치고 점점 늘려 결과적으로는 타율이 2할 8푼 정도로 줄어들더라도 30~40홈런을 치는 타자가 되고 싶다고 매우 구체적으로 밝혔다.
결코 적은 홈런 숫자 때문에 MVP 투표를 적게 받은 어리광이 아니란 뜻이었다.
어떤 김현수가 더 가치가 있느냐는 논란을 떠나 팀에서 이에 대해 별 얘기가 없는 걸 보아 일단은 그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김경문 감독도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실제로 30~40홈런을 치는 타자가 될 수 있겠느냐, 잠실을 홈구장으로 쓴다는 불리한 점에 대한 극복 등은 일단 뒤로 미루더라도 김현수의 도전은 야구 판에서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 이치로의 발언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김현수가 이제 스물을 갓 지난 젊은 선수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그가 깨고 나올 수 있는 새로운 껍질은 무궁무진 하다.
다만 변화의 과정에서 찾아올 심리적, 기술적 불안감을 어떻게 극복할지는 숙제가 될 것이다. 야구 선수의 스윙이 게임에서 다루 듯 컨텍을 몇%로, 파워를 몇%로 수치화 하여 클릭 하나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보니 타율 감소를 감수하고서라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실제로 언젠가 찾아올 슬럼프나 결정적인 공격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감각을 잃지 않고 그가 스스로 만든 스윙 매커니즘에서 벗어나지 않고 공략을 할 수 있겠느냐가 가장 큰 과제이다. 안타를 치려는 건지, 홈런을 치려는 건지 혼란스러운 공격을 한다면 단기 타격 페이스 저하가 장기 슬럼프로 빠져들 우려를 씻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그의 의지나 뚜렷한 목표설정은 매우 높이 살 만하다. 이치로처럼 막연한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적으로 올해 몇 개를 때리고 다음해에 또 몇 개를 더하고 타율 감소도 감수하겠다는 굳은 자세는 그의 변신을 더욱 더 기대하게 한다.
꼭 그게 수치상으로 몇 개를 더 치는 게 아니더라도 상대팀 감독들은 그의 장타력 상승만으로 충분히 큰 위협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삼성의 박진만이 김현수의 안타를 깨는 훌륭한 수비위치를 찾았지만, 펜스를 넘기는 타구는 그 어떤 시프트로도 잡아낼 수 없게 마련이다.
-엠엘비파크 유재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