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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폭 좁힌 20명 엔트리도 문제
2차 예선 전승? 최종 예선은 달라
또 나왔다. 지긋지긋한 침대축구. 비난이 들끓었다. 그러나 한국어를 모르는 그들은 우리의 질타를 알 턱이 없다. 남는 것은 가해자의 반성이 아닌, ‘알고도 당한’ 피해자의 한숨이다.
축구국가대표팀은 6일 말레이시아 세렘반에서 벌어진 시리아와의 2018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2차전에서 0-0으로 비겼다. 1일 중국과의 홈 1차전에서 3-2로 이긴 한국은 1승1무, 승점 4를 기록했다. 같은 날 중국 원정에서 역시 득점 없이 비긴 이란과 1승1무로 동률이 됐지만 득실차(한국 +1·이란 +2)에서 밀려 조 3위가 됐다. 1위는 2연승의 우즈베키스탄(승점 6)이다.
아무런 접촉도 없이 쓰러지고, 드러눕고, 의도적으로 시간을 끄는 시리아가 ‘페어플레이’를 하지 않았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비난할 필요도 없다. 우리 스스로 만든 처참한 결과다. 내용부터 만족스럽지 않았다. 시리아전을 앞두고 울리 슈틸리케(62·독일) 대표팀 감독은 “중국전 (3골을 몰아친) 후반 중반까지의 흐름을 시리아전에서도 이어갔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3-0으로 앞서다 3분 사이에 2실점한 중국전 후반 막판의 하향세에서 반등하지 못했다.
불필요하게 볼 점유율만 높았다. 패스 축구를 했는데, 비효율적이었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의 공식 기록에는 한국이 볼 점유율 65%로 경기를 지배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유효 슛은 고작 2개였다. 오히려 시리아의 집중력이 높았다. 골키퍼 김승규(26·빗셀 고베)의 선방이 없었더라면 크게 낭패를 볼 뻔했다. 호주 심판진의 미숙한 경기 운영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높은데, 사실 우리도 크게 이득을 봤다. 오재석(26·감바 오사카)의 명백한 퇴장성 파울이 옐로카드로 마무리됐다.
일각에선 동남아시아 특유의 ‘떡잔디’(잎이 넓다는 의미)와 고온다습한 기후가 대표팀에 악영향을 줬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경기장소가 급하게 바뀌면서 혼란이 찾아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환경이 낯설기는 시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로선 이동시간을 절약하며 피로누적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K리그 클래식(1부리그)의 한 감독은 7일 “중동 침대를 몰랐나? 동남아 잔디와 날씨를 모르나? 상대의 눈에 레이저를 쏘고 광적인 응원을 펼치는 시리아나 인근의 레바논으로 향하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팀의 갑작스런 변화도 ‘독’이었다. 중국전과 시리아전의 수비라인이 달랐다. 닷새 만에 오른쪽 풀백과 중앙수비를 오간 장현수(25·광저우 푸리)의 혼란은 당연했다. 멀티 플레이어에게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소속팀에서 계속 결장하고 있는 왼쪽 풀백 김진수(24·호펜하임), 박주호(29·도르트문트) 등 일부 자원을 뽑을 수 없어 23명까지 가능한 엔트리를 20명으로 줄였다고 하는데, 선택의 폭이 지나치게 좁았다. 손흥민(24·토트넘) 대신 추가 발탁한 황의조(24·성남)는 말레이시아 여행만 다녀온 꼴이 됐다.
한 수 아래의 상대들에게서 얻은 ‘무실점 8전승’의 아시아 2차 예선 결과가 자만심만 낳았다. 또 다른 K리그 감독은 “과거를 잊어야 한다. 선수 운용, 옵션 선택, 전술까지 전부 미흡했다. 시리아를 분석했는지도 의문스럽다. 말레이시아에서 치른 시리아전과 10월(11일) 이란 원정은 전혀 다르다”며 초심으로 돌아갈 것을 주문했다.
달달했던 허니문은 끝났다. “냉정한 비판은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슈틸리케 감독에게 주어진 10월까지의 시간은 넉넉지 않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