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의 전통 속에 빛난 소녀 골퍼들의 열정-커티스컵 관전기 [윤영호의 ‘골프, 시선의 확장’]〈8〉

입력 2024-09-11 11: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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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티스컵에서 승리를 확정하고 좋아하는 영국과 아일랜드 아마추어 선수들. 사진제공 ㅣ R&A

커티스컵에서 승리를 확정하고 좋아하는 영국과 아일랜드 아마추어 선수들. 사진제공 ㅣ R&A



골프대회 초창기에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의 경계는 뚜렷했다. 프로는 골프를 생계수단으로 삼는 사람이었다. 캐디, 그린키퍼, 골프용품 제작자와 판매자, 골프를 가르치는 사람, 베팅업자, 골프클럽 매니저, 골프코스 디자이너 등을 통칭하여 프로라고 불렀다. 아마추어는 대부분 골프클럽의 멤버였다. 유명 골프클럽 멤버는 귀족, 지주, 부유한 상인이었다. 신분차이가 존재하던 시절이었기에 골프클럽 멤버는 프로와 자신들을 명확히 구별지었다. 프로는 클럽하우스를 이용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초기 골프대회는 대부분 골프클럽 멤버의 대회로 프로의 참여가 허용되지 않았다. 참여할 대회가 별로 없었던 프로들은 프로 중에 누가 최고인지를 가려보고자했다. 그것이 1860년 프레스트윅에서 개최된 1회 디오픈이었다. 실력이 뛰어난 아마추어도 있었기 때문에 2회 대회부터는 아마추어 참여도 허용했다. 명실상부한 최고를 가리기위해서였다.

1894년에 USGA(미국골프협회)가 생기고 처음 열린 대회는 1895년 9월에 열린 US아마추어챔피언십이었다. 10월에는 US오픈이 개최되었는데, 이 대회에는 프로와 아마추어가 모두 참여할 수 있었다. 미국과 영국의 아마추어 골퍼가 실력을 겨루는 워커컵은 1922년에 시작되었고, 프로 골퍼의 대결인 라이더컵은 1927년에 시작되었다. 골프대회 초창기를 보면 아마추어 대회가 프로대회보다 조금 먼저 생겼거나 비슷한 시기에 생겼다.

여자부 초창기 대회는 아마추어 대회였다. 프로 대회는 한참 후에나 생겼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골프를 생업으로 삼은 여성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미국과 영국아일랜드 여자 아마추어 대항전은 1905년에 시작되었다. 이것이 커티스컵 태동의 배경이다. 지금과 같은 형식의 단체전은 1930년에 런던 외곽의 서닝데일에서 시작되었다. 1932년 대회부터 USGA와 LGU(영국여성골프협회)가 주관하면서 커티스컵이 공식적으로 출범했지만, 연원은 1930년이나 190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과 유럽 여자 프로선수의 대결인 솔하임컵이 시작된 해가 1990년이므로 커티스컵은 솔하임컵보다 60년 이상 앞선다.

골프 역사상 최대 상금인 1억 달러를 놓고 벌인 남자 프로대회인 PGA투어챔피언십 페덱스컵이 진행되는 기간에 서닝데일에서는 제43회 커티스컵이 열렸다. 서닝데일은 커티스컵 태동지이기도 하지만, 골프코스 자체만으로 골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세계 최고 골프코스 랭킹의 상단은 역사가 깊고, 자연미가 뛰어난 링크스 코스가 차지한다.

내로라하는 링크스 골프코스 사이에서 인랜드 코스로서 테이블 상단을 차지하는 곳이 서닝데일이다. 서닝데일은 올드코스와 뉴코스를 가지고 있다. 역사와 전통에서 올드코스가 앞서지만, 뉴코스는 최고의 설계자로 평가받고 있는 해리 콜트가 디자인한 것이어서 가치가 높다. 서닝데일의 코스가 높은 점수를 받는 이유는 완벽한 히스랜드 코스이기 때문이다. 인랜드 코스는 링크스 코스와 같은 여건을 갖추기 위해 골프코스 전역에 두터운 모래층을 조성한다. 배수가 잘 되어 골프코스가 사계절 내내 질척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서닝데일은1미터에 달하는 깊은 천연 모래층을 코스 전역에 가지고 있다. 산성 모래층에서 잘 자라는 진달래과에 속하는 히스의 자주색 꽃은 코스의 경관을 아름답게 만들어 골퍼에게 더할나위없는 만족감을 선사한다.

커티스컵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서닝데일 골프 코스를 가득 메운 관중들. 사진제공 ㅣ R&A

커티스컵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서닝데일 골프 코스를 가득 메운 관중들. 사진제공 ㅣ R&A



LPGA 메이저 대회인 셰브런 챔피언십에 아마추어로 출전하여 공동 13위를 기록했던 재미교포 자스민 구는 “이 대회가 이렇게 큰 줄 몰랐다. 커티스컵은 커티스컵이다. 이것은 내가 지금까지 플레이해 본 대회중에 가장 대단했다. 내가 여기에서 플레이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굉장했다”라고 말했다.

어린 선수들은 모두 강한 승부욕을 보여 주었다. 공격적인 플레이 중에 실수가 나오기도 했지만, 연속 버디는 물론이고 이글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마지막 날 1대1 싱글매치가 시작되면서 미국팀 기세에 영국아일랜드팀이 잠시 주춤했다. 열세에 처한 상황을 반전시킨 사라 번은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치를 넘어선 플레이를 했다. 이것은 꿈이다. 이것이 우리가 연습하는 이유며, 우리가 골프를 치고 싶어 하는 이유다. 골프를 시작하던 아홉살의 나는 이런 장면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프로에 데뷔하기 직전의 10대 소녀들이 보여준 골프에 대한 열정은 서닝데일 골프클럽의 전통과 서닝데일 골프 코스의 자연미 위에서 찬란히 빛났다. 맹렬한 승부욕과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도 상대에 대한 존중을 잃는 모습이나 골프의 품격에 벗어나는 행동은 하나도 없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골프를 즐기고 사랑하는 이유다.

윤영호 골프칼럼니스트

윤영호 ㅣ 서울대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증권·보험·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2018년부터 런던에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등이 있다. 런던골프클럽의 멤버이며, ‘주간조선’ 등에 골프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 골프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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