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많은 흥미로운 얘기가 숨어 있는 여자부 신인왕 경쟁

입력 2020-02-18 10: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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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박현주.스포츠동아DB

요즘 갑자기 2019~2020시즌 V리그 여자부 신인왕 경쟁이 화제다. 16일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이 도로공사와의 경기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박현주를 신인왕후보로 강력히 추천하면서부터다. 시즌 초반만 해도 현대건설 이다현이 더 자주 거론됐지만 5라운드 끝 무렵이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이재영의 부상공백으로 출전기회가 많아진 박현주가 여러 지표에서 앞서가기 시작했다. 박미희 감독은 “배구에서 가장 힘든 것이 리시브인데 어린 선수가 큰 부담을 이겨내면서 득점도 많이 하고 있다. 대견하다”고 했다. 이날 개인최다 14득점을 기록한 박현주의 신인왕 등극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 모양새다.

흥국생명 이주아. 스포츠동아DB


박현주와 이다현은 서울 중앙여고 동기동창생이다. 2005~2006시즌 수원 한일전산여고 출신의 김연경(당시 흥국생명)~김수지(당시 현대건설) 경쟁 이후 모처럼 같은 학교 출신이 신인왕을 다투는 흥미진진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의 소속팀은 지난 시즌에도 신인왕 경쟁을 벌였다.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 이주아와 4순위 정지윤이었다. 2순위의 박은진(KGC인삼공사)도 있었지만 사실상 1-1 맞대결이었다. 승자는 정지윤이었다.

당시 흥국생명은 정규리그 우승 프리미엄을 앞세워 이주아를 응원했다. 국가대표라는 후광효과도 있었다. 5위에 그쳤던 현대건설은 시즌 성적에서 정지윤이 앞선다고 했다. 결국 역대신인왕 투표역사상 가장 근소한 차이인 14-13으로 정지윤이 트로피를 들었다.

이번에는 반대상황이다. 현대건설은 18일 현재 정규리그 선두다. GS칼텍스와 끝까지 경쟁을 해야겠지만 우승을 한다면 프리미엄이 기대된다. 반면 3위 자리 지키기가 급선무인 흥국생명은 박현주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다. 사실상 정규리그 우승경쟁에서 탈락했기에 선수기용의 폭이 현대건설보다는 넓다. 최근 이다현보다 더 자주 그리고 오래 코트에 머무는 박현주는 30명 투표인단의 선택에 큰 역할을 하는 시즌성적에서 앞설 가능성이 크다.

18일 현재 박현주는 22경기 72세트에 출전해 97득점(공격성공률 34.78%), 4블로킹, 21서브에이스를 기록했다. 161개의 서브를 받았고 리시브효율은 16.15%다. 이다현은 22경기 67세트 출장에 70득점(공격성공률 40.78%), 24블로킹, 4서브에이스다.

현대건설 이다현. 스포츠동아DB


이들의 경쟁을 더욱 흥미로운 만드는 양념도 많다. 만일 이다현이 신인왕에 선정되면 모녀가 함께 신인왕에 오르는 새로운 기록을 세운다. 발레를 하던 딸 이다현에게 초등학교 때 배구를 권유했던 어머니 유연수 씨는 중앙여고 출신의 미들블로커다. 실업배구 시절인 1990년 제 7회 대통령배 배구대회에서 선경소속으로 신인왕을 받았다. 남자부 신인왕은 성균관대 임도헌 현 남자대표팀 감독이었다. 당시 배구협회는 ‘백구의 대제전’으로도 불리던 대통령배 배구대회가 끝나면 가장 인기 있는 선수를 선정했는데 여자부 인기상은 대농의 박미희가 받았다. 남자부는 최천식(대한항공) 현 인하대 감독이 인기상의 주인공이었다.

현대건설 정지윤. 스포츠동아DB


만일 박현주가 신인왕에 오르면 V리그 역사상 첫 번째 2라운드 지명출신의 신인왕이 된다. 2005년 황연주(당시 흥국생명)를 시작으로 지난 시즌 정지윤까지 역대 여자부 신인왕은 모두 1순위가 차지했다. 이전까지 가장 낮은 신인드래프트 순위의 신인왕은 2017~2018시즌 1라운드 전체 5순위였던 김채연(흥국생명)이다. 박현주는 16일 도로공사전 뒤 “리그 막판이 되니까 욕심이 많아진다. 이다현, 권민지(GS칼텍스)도 잘했지만 신인왕은 내가 받고 싶다”고 했다. 이처럼 모든 선수들은 생애 단 한번의 기회밖에 없는 신인왕을 탐내지만 스스로 거부한 선수도 있다. 바로 장소연 SBS스포츠 해설위원이다.

실업배구 시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들블로커로 활약했고 올림픽에 3번이나 출전했던 그는 35세에 엄마의 몸으로 2009~2010시즌 V리그 신인드래프트 신청서를 냈다. “은퇴한지 5년 만에 다시 프로선수가 되는 것이 내심 걱정도 되고 설레기도 한다. 지도자가 되려고 하는데 프로무대를 경험해보지 못해 이렇게 도전 아닌 도전을 하게 됐다”며 쑥스러워했다. 당시 KT&G에 1라운드 3순위로 지명 받은 그는 성적상 가장 유력한 신인왕 후보였지만 자신보다는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길 원했다. 이미 슈퍼리그에서 신인상을 받았고 성인배구 18년을 했는데 다시 신인왕이 된다는 것이 어색하다고 판단해 수상포기 의사를 알렸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그의 뜻을 받아들였다. 이 바람에 양유나(GS칼텍스)가 신인왕과 상금 200만원을 받았다. 대신 KOVO는 장소연에게 특별히 배구발전기여상과 상금 300만원을 줬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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