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R&F FC 장현수(오른쪽). 스포츠동아DB
정확하고 강한 킥, ‘강심장’ 갖춰 적임
미얀마전 실축 후에도 위축 없이 만회골
12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미얀마의 2018러시아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G조) 경기. 한국이 1-0으로 앞선 전반 23분 황의조(23·성남)가 미얀마 수비의 반칙을 유도해 페널티킥(PK)을 얻어내자 오른쪽 풀백 장현수(24·광저우 푸리)가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천금같은 기회를 직접 만들어낸 최전방 공격수 황의조도 있고, 기성용(26·스완지시티) 구자철(26·아우크스부르크) 등 A매치를 50경기 이상 뛴 미드필더들도 있었지만 키커로 나선 이는 수비수 장현수였다.
● 왜 장현수였을까?
의아하게 생각하는 팬들이 적지 않았지만, 장현수는 ‘슈틸리케호’의 PK 전담 키커다. 골키퍼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포지션을 경험한 진정한 ‘멀티맨’으로 불리는 그는 정확하고 강한 킥을 자랑한다. 일찌감치 각급 대표팀을 거치며 PK 전담 키커로 활약했다. 주장으로 출전한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에선 일본과의 8강전 후반 43분 PK 결승골을 기록했다. 태국과의 준결승에서도 전반 종료 직전 얻은 PK를 실수 없이 성공시켜 2-0 승리에 힘을 보탰다.
A매치 데뷔골도 PK에 의한 것이었다. 8월 5일 중국 우한에서 벌어진 2015동아시안컵 일본과의 2차전(1-1 무)에서 상대의 핸드볼 반칙을 PK 골로 연결하며 성인대표팀 첫 골을 신고했다. 3-0으로 승리한 9월 8일 레바논과의 아시아 2차 예선 원정경기 첫 골의 주인공도 PK를 성공시킨 장현수였다. 10월 13일 자메이카와의 평가전에서 기성용이 PK로 한 골을 넣었는데, 그 때는 직전 쿠웨이트전에서 풀타임 출장했던 장현수가 벤치에서 쉬고 있어 기성용이 키커로 나선 것이었다.
● 미얀마전서 확인된 장현수의 매력
자타공인 ‘PK 전담 키커’지만 장현수는 12일 미얀마전에서 오른쪽 골포스트를 맞히며 PK를 실축했다. 그러나 경기 후 코멘트를 들어보면 왜 그가 PK 전담 키커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재확인할 수 있다.
장현수는 PK 실축 후 2-0으로 앞서던 후반 37분 헤딩으로 쐐기골을 터트리며 자신의 실수를 만회했다. 그러나 정작 그의 머릿속에 실수의 잔상은 남아있지 않았다. “(곽)태휘 형이 ‘만회골 넣었다’고 하길래, 그때서야 내가 PK 실축을 했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는 것이 그의 말이었다. 장현수는 “일부러 실수를 만회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평소보다 더 공격에 많이 가담하다보니 운 좋게 골이 나왔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A매치에서 PK 실축 후 필드골을 성공시킨 선수는 2002년 안정환 이후 처음’이라는 말에 대해 “그런 대선배님의 기록을 이어받아 영광”이라며 웃어넘기기도 했다.
PK는 모든 이의 시선이 한 곳에 모이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펼쳐진다. 키커로선 ‘넣어야 본전’인 게임이다. 당연히 여느 선수 같으면 실축 후 위축되기 마련. 그러나 장현수에게 그런 모습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무심한 듯 필드골로 보기 좋게 실수를 스스로 털어냈다. PK 전담 키키로서 강한 중압감을 이겨내기 위해선 킥 능력뿐 아니라 ‘강심장’도 필요하다. 우리 대표팀에선 장현수가 그런 존재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