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音談패설]‘엘살바도르의연인’도진미

입력 2009-06-07 17:11:3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퓨전 바이올리니스트 도진미(사라토미).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퓨전 바이올리니스트 도진미(사라토미).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노신사의눈물에서삶을배웠어요”
무대로 걸어 나온 그녀가 바이올린을 턱 밑에 꼈다. 이윽고 비발디의 4계 중 겨울의 빠른 프레이즈가 현 위에서 불꽃처럼 타올랐다. 기교적이면서도 클래시컬한 두 번째 곡을 마친 그녀가 마이크 앞으로 다가 섰다.

“안녕하세요. 퓨전 바이올리니스트 도진미입니다.”

엔딩은 아바의 댄싱 퀸. 그녀가 활을 허공으로 치켜 올린 채 온 몸 웨이브를 선보이자 관중석의 온도가 후끈 상승했다. 리듬에 맞춘 박수가 절로 터져 나왔다. 카메라 플래시가 사방에서 번쩍였다.

퀸은 관객의 ‘빈틈’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듯 했다.

그녀의 활은 날렵하게 관객들의 급소를 찔렀고, 관객은 그녀의 음 하나 하나에 귀와 마음을 열었다. 그것은 적지 않은 경험과 음악에 대한 고민이 쌓아 올린, 인간승리의 ‘기적’이었다.

“공연이 많아요. 최근 3주 동안은 하루도 못 쉬었어요.”

도진미(31) 씨는 전날 대구 공연을 마치고 새벽 1시에 서울에 올라왔다. 잠깐 눈을 붙이고 아침 10시부터 리허설을 했다.
퓨전 바이올리니스트 도진미(사라토미).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퓨전 바이올리니스트 도진미(사라토미).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날 광화문 KT아트홀에서 열린 공연은 세계의 가난한 어린이들을 돕는 한국컴패션 문화행사의 일환이었다. 도 씨는 직접 한국컴패션의 사무실로 찾아가 공연을 자원했다. 물론 무료연주다.

그녀는 2년 전부터 컴패션을 통해 엘살바도르의 한 어린이를 후원해 왔다.

도 씨는 어릴 때부터 바이올리니스트로 키워진 ‘정경화 키드’다. 부모가 모두 열렬한 음악팬이었다. 도 씨를 포함한 세 딸이 모두 음악을 전공했다.

중앙대 음대를 수석 입학한 도 씨는 4학년 때 여학생에겐 하늘의 별따기에 가까운 음대 오케스트라의 악장을 맡기도 했다. 졸업도 수석이었다.

미국 보스턴의 명문음대 유학의 길이 자연스럽게 열렸다.

그런데 사고가 났다. 스키장에서 보드를 타다가 그만 팔이 부러지고 말았다. 출국을 불과 이틀 앞 둔 날이었다. 이 사고로 도 씨는 6개월 간 깁스를 해야 했고, 이후에도 8개월 물리치료를 받았다.

언니의 권유로 이태리 피렌체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있던 중 퓨전연주단 일렉쿠키의 요청을 받고 2004년 말 부터 전자바이올린을 잡았다. 클래식 연주자였던 그녀에게 짙은 스모키 화장과 몸에 착 달라붙는 의상, 쿵쿵 울리는 비트를 배경으로 한 전자음악 연주는 경이로운 세계이자 도전이었다.

2007년. 그녀는 일렉쿠키를 나왔다.

자신만의 음악을 찾기 위한 또 한 번의 모험이었다. 그리고 엘살바도르.

“무작정 여행을 간 거죠. 한 달 정도 멕시코, 쿠바 등을 돌았어요. 그러다 한 지인 분의 부탁으로 결혼식에서 연주를 했는데, 뜻밖에 반응이 좋았죠. 초청을 받아 두 달 뒤에 또 엘살바도르로 갔어요.”

새로운 인생이 그녀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세 번째 방문에서는 엘살바도르 한국대사의 초청으로 콘서트홀에서 제대로 된 공연을 가졌다. 1500석 만석. 20여 분 간의 기립박수. 대단한 성공이었다. 현지 언론에서는 그녀를 ‘바이올린의 마법사’, ‘음악의 올림푸스에서 내려온 바이올린의 여신’으로 추켜올렸다.

지인의 초대로 별장에 놀러갔다가 연주 요청을 받았다. 한두 곡정도 하고 내려오려 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 1시간 이상 무대 위에 머물러야 했다. 나중에는 레퍼토리마저 다 떨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관중들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잠깐 고민하다 ‘에델바이스’를 켰다.
퓨전 바이올리니스트 도진미(사라토미).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퓨전 바이올리니스트 도진미(사라토미).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누구나 알고 있는 곡. 듣기에도, 연주하기도 쉬운 곡이었다.

그런데 한 노신사가 눈물을 뚝뚝 떨구며 그녀의 연주를 듣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연주를 마치고 다가가 “왜 그러시냐” 물었다. 그는 스위스의 대사였다. 임기를 마치고 두 달 후 고국으로 돌아가기로 되어 있다고 했다.

그가 “당신은 내게 너무도 큰 선물을 주었다”며 감격해 했다.

에델바이스는 스위스의 국화이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폰 트라프 대령이 불렀던 ‘에델바이스’의 명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면, 스위스인들이 지닌 이 곡에 대한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게는 쉬운 음악 하나가 다른 이들에게는 큰 감동, 큰 선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이날 노신사분의 눈물이 오히려 제게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이었습니다.”

이날 이후 도 씨의 닫혀졌던 마음이 열렸다. 자신의 음악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언제, 어디서든지 악기를 꺼내 연주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스스로 ‘퓨전 바이올리니스트’라고 소개했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녀는 ‘클래식’과 ‘퓨전’의 길을 동시에 가고 있다. 작년에는 금난새의 지휘로 유라시안 오케스트라와 함께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를 협연하기도 했다.

챔버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도 초빙 받았다.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무슨 일이든 ‘지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은 나이도 아니지요. 쏟아내고 싶은 게 많아요. 머릿속에 있는 걸 다 해보고 싶어요. 클래식은 평생 가야 할 길이지만, 사람들이 찾는 이상 퓨전도 계속할 거예요. 바라는 것은 없어요. 연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죠. 제 기쁨과 행복을 더욱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많이 찾아 주세요. 그곳이 어디든, 저와 제 바이올린이 갈 겁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 |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