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4년만에 첫 풀타임서 13승 ‘팍’
프로야구는 다른 친구들의 무대라고 생각했다. 고교시절까지는 그랬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프로에지명된 줄도 몰랐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실력이 늘기 시작했다. 프로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는 올해 팀내 최다인 13승을 따냈다. 데뷔 4년만에 처음 풀타임 선발로 뛰면서 생애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히어로즈 이현승! 100승투수가 꿈이라는 그의 성공투구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1년만이라도 열심히 한번 해다오!
동산고 시절 이현승의 별명은‘빠삐용’이었다. 1∼2학년때 그는 수도 없이 도망을 다녔다. 수십번도 넘었다.“힘들었어요. 삭발하는 것도 싫었고 훈련은 밤 11시까지 너무 힘들었죠. 규율도 엄했구요.”그는 주전도 아니면서 실력도 없는 자신이 왜 힘든 훈련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방황의 시기였던 2학년말에 어머니가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입원실에서 어머니는 이현승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현승아! 딱 1년만 열심히 한번 해보자. 안되면 그때 그만두자! ” 어머니의 눈물이 이현승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그 때 이후로 이현승은 팀을 떠난 적이 없다.
○1회 2사까지 10실점, 그리고 인하대경기
지금도 이현승이 가장 잊지 못하는 경기가 있다. 3학년 2월에 치러진 성남고와의 연습경기. 선발투수로 나간 이현승은 1회 2사까지 무려 10점을 내줬다.“정신없이 두들겨 맞았죠. 어떻게 던졌는지 기억도 나질 않아요. 그때 마운드에서 서 있는게 얼마나 비참했는지!” 덕아웃에 글러브를 집어던졌다.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 너무 화가 났다. 그런 그를 김학용(현 동국대 감독)감독이 불렀다. “내일 인하대 경기에 다시 선발이다.”다음날 이현승은 공 하나하나를 이를 악물고 던졌다. 형들의 방망이가 서너자루 부러질 만큼 공이 좋았다. 4이닝 1안타 무실점. 그날의 호투는 주성로 인하대 감독(현 히어로즈 이사)의 마음을 휘어잡았고 이현승이 인하대로 진학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능력
형이 입은 야구 유니폼이 멋져 초등학교 5학년때 야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야구를 잘했던 기억은 별로 없다. 3학년 때 팀이 황금사자기에서 준우승을 했지만 그는 겨우 1이닝을 던졌을 뿐이다. 그런 그가 2차 3번으로 현대에 지명됐다. “다음날 친구들이 축하한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지명이 있는 줄도 몰랐고 ‘왜 나를 지명했을까?’하는 생각뿐이었어요.” 당시 이현승을 지명한 김진철 LG 스카우트 팀장은 “발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폼도 좋았고 공을 던질 줄 아는 투수였다”고 지명이유를 설명했다. 김학용 감독과 주성로 감독의 보는 눈도 같았다. 배짱도 있고 공을 던지는 요령이 좋아 훈련만 제대로 하면 좋은 투수가 될 수 있다는 것. 오직 이현승 자신만 모르고 있었다.
○국가대표가 되다!
주성로 감독은 이현승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인물이다. “너는 능력이 있다. 열심히 하면 국가대표도 되고 프로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대학에 진학하면서 체중이 7kg 늘었다. 고교시절 최고 135km를 기록했던 그가 1학년때부터 최고 144km를 던지기 시작했다. 팀의 주전으로 경기에 나가는 횟수가 많아졌고 자신감도 생겼다. 그리고 1학년말 쿠바에서 열린 대륙간컵 대회에 당당히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1년만에 찾아온 엄청난 변화였죠. 제가 태극마크를 달고 뛸 거라고는 솔직히 상상 못했거든요!”
○아쉬웠던 후반기, 12경기에서 단 2승뿐
올시즌 초반 선발 등판한 3경기에서 내리 3승을 따냈다. 성적이 나쁘면 다시 불펜으로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고 힘껏 던졌다. 지난해보다 스플리터가 훨씬 잘 먹혔고 완급조절에도 눈을 떴다. 전반기에만 11승. 다승왕 후보로 거론될 만큼 눈부신 피칭이 이어졌다. 후반기는 말 그대로 악몽이었다. 12경기에서 2승밖에 못했다. 5회 이전에 강판된 경기가 무려 5차례나 됐다. “풀타임 첫해라 체력적으로 벽에 부딪힌것 같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러나 한번도 힘들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무엇보다 팀이 4강싸움을 하는 중요한 순간에 승수를 쌓지 못한다는 게 힘들었다. “마운드에서는 단순해야 하는데 생각이 많았어요. 슬럼프는 누구나 오는 것인데 영리하게 대처를 못했습니다.” 기쁨도 많았고 아쉬움도 컸던 올시즌. 이현승은 많은 것을 얻었고 깨달았다.
○개인운동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정명원 코치
입단 2년째인 2007년은 최악의 시즌이었다. 45경기에 나갔지만 22이닝밖에 던지지 못했다. 방어율이 무려 7.15였다. 항상 자신감을 갖고 살았는데 어느 순간 스스로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프로에 와서 가장 힘든 시간에 그의 손을 잡아준 사람은 정명원 코치였다. 그해 11월 마무리 훈련때 이현승은 정 코치와 훈련이 끝난 뒤 따로 1시간씩 개인훈련을 실시했다. 피칭과 셰도우모션을 통해 밸런스를 찾았다. 정코치는 많은 대화를 통해 이현승이 자신감을 찾도록 도왔다. “솔직히 개인운동은 그때가 난생 처음이었어요. 단체훈련만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한달간의 특훈을 실시하면서 개인운동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그날 이후로 이현승에게 개인훈련은 빠질 수 없는 일과가 됐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는 훈련이 진짜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저는 프로에 와서 깨달았어요.”
○내년 목표는 200이닝, 꿈은 100승!
이현승은 올해 170 이닝을 던졌다. 전체 5위다. 내년에는 200 이닝을 던지는 게 그의 목표다. 선발투수에게 200이닝은 승수와 이닝이터라는 명예가 보장이 되는 훈장과 같다. “올해 많이 던졌다고 걱정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괜찮습니다. 200 이닝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웃는 모습에서 여유와 자신감이 보인다. 이현승의 꿈은 100승투수다. 100승은 해야 나중에 팬들이 기억해 줄 것 같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민태 코치는 “자신감만 유지한다면 이현승의 100승은 어렵지 않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이현승은 야구를 하고 아직 상을 받아 본 적이 없다. 2007년 퓨처스 올스타전에서 우수투수상을 받았지만 제대로 된 상을 꼭 한번 받아보고 싶다고 했다. 내년에는 그가 폼나는 상을 한번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이현승은 계속 발전하고 있는 투수다. 내년에는 분명 올해보다 나은 모습으로 팬들에게 기쁨을 안겨줄 것이라 믿는다.
스포츠동아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