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전사 라이프 스토리 ③ 이근호] 눈물로 쓴 2군신화…이근호를 키운 건 독기였다

입력 2010-05-27 18: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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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무대 진출을 노리는 이근호에게 이번 남아공월드컵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2군 설움을 오기와 독기로 이겨낸 그가 월드컵을 통해 빅리그 명문팀의 눈도장을 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스포츠동아 DB]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노리는 국가대표팀의 주축 공격수 이근호(25·주빌로 이와타)는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때 ‘허정무 호’에 승선, 2008년 10월 아랍에미리트(UAE)전 2골과 11월 사우디아라비아전 결승골 등 가공할만한 득점력을 보여주며 ‘허정무의 황태자’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A매치 골 가뭄에 시달리며 주춤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동갑내기 친구 박주영(AS모나코)과 함께 최전방 공격수로 상대 골문을 휘저을 주요 득점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박주영이 청소년대표시절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면, 이근호는 한 때 눈물의 2군 밥을 먹으며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 그의 이름이 축구팬들에게 알려진 건 2007년 이후 불과 몇 년이 되지 않는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볼을 차기 시작한 그의 풀 스토리를 소개한다.



●어머니 손을 잡고 축구부 문을 두드리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회가 열릴 때면 계주 최종주자는 항상 그의 몫이었다. 또래보다 스피드가 탁월했고, 힘이 넘쳤다. 운동신경이 빼어나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던 꼬마는 어느 날 학교 운동장에서 볼을 차던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의 ‘재주가 있다’는 말에 축구부에 들어갈 결심을 한다.
어머니 이남심 씨는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둘째 아들의 말에 곧바로 이튿날 축구부를 찾았다. 테스트를 받았다. 인천 동막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한국 축구를 주름잡는 스타 이근호의 축구 인생은 “수박이 넝쿨째로 굴러들어왔다”는 당시 담당 선생님의 말처럼, 우연으로 시작됐다.

 



●엘리트 코스만 밟은 ‘축구 천재’

5학년 때 첫 유니폼을 입은 꼬마는 이듬해부터 기존의 친구들을 제치고 전국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초등학교 시절 전국대회 3관왕을 차지하며 놀라운 성장 속도를 보여준 이근호는 부평동중과 부평고 시절, 3학년 때마다 전국대회 3관왕을 차지하며 최우수선수(MVP)를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주장으로서 팀의 리더 역할을 한 것도 그였다.

스타들의 뒤에는 항상 그림자 역할을 해준 부모의 힘이 크듯 어머니 이 씨는 고등학교 때까지 원정경기든, 전지훈련이든 때와 장소를 가르지 않고 아들을 따라다니며 뒷바라지했다. 손위 형이 “섭섭하다”고 말할 정도로 어머니의 ‘둘째 사랑’은 남달랐다.

이 씨의 아들 사랑은 이근호가 일본 주빌로에 입단한 뒤에는 ‘음식 공수’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계속됐다. 낯선 이국땅에서 뛰던 시절, 이근호는 어머니가 공수해 온 한국 음식으로 힘을 냈고, 어머니 음식을 일본 선수들에게 나눠주며 동료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뼈아픈 좌절, 더 큰 성장의 밑거름이 되다

고교시절까지 ‘천재’ 소리를 듣던 이근호는 2004년 프로(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뒤 천덕꾸러기로 전락한다.

2군을 전전하다 벤치도 아닌 퇴단 위기 까지 몰리기도 했다.

“당시엔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는 그의 말은 마음고생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케 한다. 좌절의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는 게 아들을 곁에서 지켜본 어머니 이 씨의 설명이다.

2년간의 방황과 좌절을 딛고 2006년 인천을 2군리그 챔피언으로 이끌며 MVP를 수상한 이근호는 2007년 대구로 이적하면서 축구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은 그는 2년간 59경기에서 23골을 터뜨리며 K리그 최고의 골잡이로 떠올랐다. 2년 연속 베스트 11 선정은 2군 설움에 대한 보상이었다.

부평고 시절, 그를 지도했던 임종헌 전 울산 현대 코치는 “3년간의 2군 생활을 통해 근호가 오기가 생겼고, 그 과정을 극복해 나가면서 큰 선수가 되는 밑거름이 됐다”고 했다.

 



●연이은 유럽 진출 실패, 또 한번의 아픔을 겪다

2008시즌이 끝난 뒤 이근호는 유럽 진출을 모색한다. 네덜란드의 한 팀은 계약서까지 갖고 왔지만, 더 좋은 팀을 찾다 결국 실패했고 그는 최선이 아닌 차선으로 주빌로 이와타에 입단, 유럽 진출의 교두보로 삼으려 했다.

유럽으로 가겠다는 다짐은 작년 시즌 초반, 8경기 6골-5도움이란 놀라운 성적으로 이어졌다. 주빌로 팬들로부터 ‘이와타의 구세주’로 불리던 지난해 6월 즈음, 그는 프랑스 명문 파리 생제르맹으로 완전 이적이 발표됐지만 결국 해프닝으로 끝이 나고 만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주빌로 유니폼을 입었고, 꿈을 위한 도전에서 잇달아 상처를 받은 그는 또 한번의 마음고생을 하게 된다.

빼어난 체력과 스피드를 갖춘 이근호는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노리는 한국 대표팀의 주축 공격수로 기대를 받고 있다. 이근호(왼쪽)가 2008년 UAE와의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선제골을 넣은 뒤 이영표와 기쁨을 나누고 있다. [스포츠동아 DB]



●월드컵은 유럽으로 가기 위한 도전의 무대

이근호의 오랜 꿈은 유럽 무대에서 뛰는 것이다.

‘박지성처럼 두개의 심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스피드, 골 결정력을 가진 그는 프리미어리그를 휘젓는 ‘제2의 박지성’이 되길 바란다.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 왔기에, 누구보다 큰 꿈을 갖고 있기에, 생애 첫 꿈의 무대인 남아공월드컵을 앞둔 그의 각오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최근 A매치에서의 골 침묵은 본선 무대에서 극적인 골을 위한 간절한 기다림의 과정에 불과하다.

이근호, 그의 발끝이 어느 때보다 주목되는 것도 그래서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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