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 고원준. 스포츠동아DB
“선발로 쓴다” 김시진 공언에 V화답
고졸 2년차 “요즘 야구가 재밌어요”
넥센으로선 ‘대첩’이었고, SK에게는 ‘참사’로 기억될 2010년 5월19일이다. 먼 훗날 중립적인 사람들은 ‘5·19 대반란’으로 추억할만한 날이기도 하다.
자타공인 프로야구 최강 SK에 참담한 치욕을 안긴 주역이 신인왕 자격을 갖춘 넥센의 프로 2년차 고졸우완이어서 그 인상은 한층 강렬했다.
고원준(20). 천안북중∼천안북일고를 나왔지만 전면드래프트 시행 첫해 해당자여서 연고구단 한화가 아닌 넥센 지명을 받았다. 넥센은 좌완 강윤구를 1지명했고, 그 다음 선택이 바로 고원준이었다.
데뷔 첫해 1군에서 던져본 적이 없었다. 2군에서 3패만 기록했다. 방어율은 9.29였다. 시즌 막판에 손등을 다쳐 던지지 못했다. 고원준의 행운은 이 암담한 시점부터였다. 명투수코치 출신 김시진 감독은 “선발로 쓰겠다”고 공언했다. 실제 2군에서도 선발로만 던지게 했다.
그러다 5월12일 KIA전 첫 1군선발로 호출돼 덜컥 승리(6이닝1실점)를 따냈다. 18일엔 비가 왔지만 김시진 감독은 19일도 그를 선발 예고했다. 그 믿음은 19일 SK전 8회 1사까지의 노히트노런으로 결실을 맺었다. 100구를 넘어갔어도 140km대 초반 직구가 나왔다.
정민태 투수코치에게 배운 슬로커브부터 스스로 고안했다는 싱커까지, 제구력만 잡히면 재목감이라는 잠재력이 현실화된 순간이었다. 8회 이호준에게 안타를 맞은 뒤 1실점 후 교체됐지만 마운드에 올라간 정 코치는 대견한 듯 웃었다. 7.1이닝 1안타 4볼넷 5삼진, 시즌 2승.
김 감독은 “안타를 맞을 때까지 세워둘 생각이었다. 감독으로서도 노히트 노런을 기대했다”고 했다.
고원준은 “신인 노히트노런은 7회부터 의식했다. 옆에 있었던 동료들로부터 ‘절대 피하면 안 된다. 부담 갖지 말고 해라’고 듣고 의식했다. 덤덤한데 자기 전 아쉬움이 남을 듯하다. 1위 팀 상대로 좋은 피칭을 해 기분 좋다. 가장 큰 수확은 자신감이다. 요즘 야구가 재밌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원준은 ‘오늘이란 너무 평범한 날은 동시에 과거와 미래를 잇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라고 미니홈피에 써 놨다. ‘고시크, 정상에 설 남자’란 미니홈피 대문에 쓴 소원대로 된 19일이다.
문학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