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트리 오브 라이프’, ‘오늘’을 보고나서

입력 2011-11-22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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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예술’에 너무 빠지면 숨막힌 관객, 발길을 끊는다

관객의 공감을 얻는 데는 실패한 테런스 맬릭 감독의 ‘트리 오브 라이프’. 진진 제공

“예술은 섹스랑 비슷해. 너무 자주 해도 문제고, 너무 뜸하게 해도 문제니깐 말이야. 자주 하면 그 가치를 모르게 되고, 뜸하다 보면 어느새 어떻게 하는지 잊어버리게 되거든.”

한 재기발랄한 중견 영화감독이 7년 전 나와 술잔을 주고받으며 농담처럼 던진 진담이다. 이 감독은 이후 예술을 너무 ‘자주 하다’가 평단으로부터 “만날 동어반복만 하다 예술적 영혼이 증발해버렸다”는 혹평을 듣고 은퇴 아닌 은퇴를 했다.

최근 이정향 감독의 ‘오늘’을 보고 난 후 이 말을 다시금 떠올렸다. ‘집으로’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이 노작은 예술가의 영혼이 지나친 밀도로 응축되어 폭발하는 바람에 관객이 도리어 부담스럽게 된 경우다. 오토바이 사고로 약혼자를 잃은 여주인공(송혜교)이 가해자를 용서한 자신의 행위를 곱씹으며 ‘용서’라는 말이 갖는 감성적 유혹과 허울을 깨닫는다는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용서를 개념정리하려는 주입식 대사들로 차고 넘친다.

“용서란 미움을 없애는 게 아니에요. 미움을 마음의 가장자리로 밀어 넣는 거예요.” “이놈의 사회는 용서만 있고 반성이 없어.” “대책 없는 용서는 죄악이에요.”

감독의 예술적 번뇌가 청심환처럼 응축된 대사들을 속사포처럼 쏴대는 바람에 주옥같은 대사들은 희소가치를 잃은 채 정작 관객이 용서에 대해 생각하고 깨달음을 얻을 여백은 허락하지 않는다.

‘은둔자’ 테런스 맬릭 감독이 연출해 올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트리 오브 라이프’도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라는 진리를 떠올리게 만든다. ‘황무지’(1973년)로 장편데뷔한 뒤 ‘천국의 나날들’(1978년)을 만들고, 20년 만에 ‘씬 레드 라인’(1998년)을 내놓은 뒤 다시 7년 후 ‘뉴 월드’(2005년)를 연출하고,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이 최신작은 감독의 과잉된 예술적 발언 때문에 이야기가 산으로 가버린 경우다.

억압적 아버지 밑에서 자라나 어머니를 탐하게 되는 아들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담은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요즘 신세대 표현으로 “이게 뭥미(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이지)?”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둘째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전화로 전해 들은 아버지가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이 지나면 갑자기 우주가 빅뱅을 벌이면서 지구가 탄생하고 다시 화산폭발을 거쳐 가장 원시적인 생명체가 잉태되는 과정이 돌연 등장한다.

놀라지 마시길. 이 장면 뒤에는 더욱 놀랍게도 공룡들이 떼를 지어 나타난다! 쓰러져 숨져가는 한 초식공룡을 잡아먹고자 그의 머리통을 짓밟았던 육식공룡이 묘한 눈빛을 남기며 그냥 떠나버리는 이 뜬금없는 대목에서는 ‘아, 감독이 현실 속 이야기와 태초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는 동시에 진화론과 창조론을 오가면서 뭔가 범우주적 철학을 말하려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자기 세계에 감옥처럼 갇힌 채 관객과의 접점을 잃고 혼잣말만 미친 듯이 해대는 작가감독의 예술정신에 제대로 짜증이 치민다.

맬릭은 정작 태양계의 원리는 간과한 것이 아닐까. 지구가 태양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딱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기에 수많은 생명체가 ‘삶의 나무’를 이루며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작가의 내면이 과잉되면 작품이라는 행성은 관객이라는 태양으로부터 너무 떨어져 결국 얼어 죽어버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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