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희 감독 “쿠웨이트전도 닥공!…지고는 못 사는 성격”

입력 2012-01-3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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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 감독의 안정된 샷에 스포츠동아 기자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공의 흐름을 날카롭게 응시하는 최 감독의 모습에서 고수의 포스가 느껴진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beanjju

최강희 축구대표팀 감독과 당구장 토크

“사장님 여기 났어요~”
7개월만에 300 친 당구 고수
본지 기자 2명 손목 비틀 듯 요리
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 끝내도 되는 거야?” 큐를 떠난 수구가 1적구에 맞은 뒤 당구대를 빙그르르 한 바퀴 돌아 스리 쿠션 후 2적구와 부딪혔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끝내기. 축구대표팀 최강희(53) 감독을 당구장으로 초대했다. 이유가 있다. 최 감독은 뭔가에 빠지면 무서울 정도로 파고드는 스타일이다. 당구와 연을 맺은 지는 오래 됐다. 우신고등학교 졸업 후 한일은행에 입단했을 때, 동기 7명과 당구장에서 살았다고 한다. 7개월 만에 당구 수지 300이 됐다. 당구 좀 쳐본 사람들은 잘 안다. 7개월 만에 300을 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우리땐 한일전서 지면 비행기 탈 생각도 못해
위기에 강한 비결? 죽는다는 각오로 뛰면 돼

그는 당구와 궁합이 잘 맞는다. 당구는 내기에 적합한 스포츠다. 최 감독도 내기를 즐긴다. 현역으로 뛰던 한일은행 시절에는 동기들과 보너스를 통째로 거는 무시무시한 내기 당구를 즐겼다는 후문이다. 당구는 축구와 공통점도 많다. 안정된 기본기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게임 중 여러 차례 리듬을 타는 데 그 흐름을 가져오는 것도 중요하다. 최 감독은 전북 현대 감독 시절에도 숙소 앞 당구장에서 코칭스태프와 내기 당구를 치며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최 감독의 당구실력은 허언이 아니었다. 당구수지 120의 스포츠동아 윤태석 기자가 나섰다가 명함도 못 내밀고 물러났다. 당구수지 200으로 축구기자들 사이에서 ‘큐 좀 잡는다’고 알려진 최용석 기자가 도전장을 냈다. 초반 최 기자가 앞서 가자 최 감독 얼굴이 잠시 굳어졌다. “이제 제대로 된 적수가 나왔네. 그럼 또 달라져야지요.” 최 감독의 추격이 시작됐다. 28분 후 게임 오버. 최 감독의 완승이었다.

최강희 감독. 김종원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죽는다는 각오로

최 감독은 2월18일 선수들을 소집할 계획이다. 소집 첫 날 첫 미팅에서 어떤 말을 할지 이미 생각해 놨다. “한국축구 미래가 여러분 어깨에 달려 있다. 쿠웨이트 전(2월29일)은 죽는다는 각오로 하자.”

최 감독이 잠시 선수시절 기억을 더듬었다.

“우리 선수시절 때 한일전에서 3-0으로 졌다? 그럼 비행기 타고 올 생각도 못 했지. 미우라 가즈요시 알죠? 걔 얼굴에 침 뱉은 선수도 있었어요. 1991년 나가사키에서 열렸던 한일전에서 우리가 하석주 골로 1-0으로 이겼지. 그 때 미우라가 헛다리짚기 하면서 잘 나갈 때였거든. 그런데 갑자기 하프타임 때 교체가 된 거야. 영문을 몰랐는데 한 후배가 말하더라고. ‘형, 아까 나 미우라와 같이 넘어졌을 때 주심 몰래 얼굴에다 그냥 침 뱉었어요’라고. 그게 누구냐고? 그건 말 못하죠. 우린 그렇게 했다니까. 쿠웨이트 전도 선수들이 그런 마음으로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최강희 감독. 김종원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위기에 강한 최강희와 한국축구

당구든 축구든 스포츠에는 늘 고비가 있다.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분기점. 승부처다.

최 감독은 승부처에 강한 사람이다. 핀치에 몰렸을 때 진짜 능력이 나온다. 비결은 집중력이다.

“집중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 결과에 차이가 많이 나죠. 나 승부처나 위기에 아주 강합니다. 때론 강한 척 할 때도 있어요. 당구 칠 때도 상대방이 5∼10점 연달아 치면서 달아나면 어때요. 화나고 걱정되죠? 그럴 때는 신경도 안 쓰는 척 하는 거지. 언젠가 한 번은 나에게도 기회가 온다는 믿음을 갖고. 지금 한국축구 위기 맞아요. 정말 큰 위기지. 그런데 위기에 진짜 강한 게 바로 한국축구에요. 이번 쿠웨이트 전? 강한 집중력을 보여줄 좋은 기회죠.”

최강희 감독이 당구 고수들만 칠 수 있다는 ‘찍어치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 감독은 실제 찍어치기를 시도해 멋지게 성공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beanjjun




내달29일 쿠웨이트전 닥공 축구 하고싶어
혹시? 질거면 대표팀 감독 맡지도 않았다


○지고는 못 살아

최 감독은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다.

그가 2005년 전북 지휘봉을 잡았을 때 구단은 “다른 팀에는 다 져도 좋으니 수원 한 번 이겨 달라”고 했다. 당시 전북은 수원의 밥(절대 약자)이었다. 최 감독도 수원에 갚아야 할 빚이 있었다. 수원은 그가 코치 시절 지도자의 청춘을 바친 팀. 그러나 하루아침에 잘린 아픔이 있다. 전북 감독 부임 이후 그는 수원과 K리그에서 10번 만나 딱 1번 졌다. 5승4무1패. 2008년과 2010년 두 차례나 빅버드(수원월드컵경기장 애칭)에서 상대 골문에 5골을 때려 넣으며 천적으로 군림했다. 전세가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최 감독은 선수를 뽑을 때도 승부욕을 꼭 체크한다.

“예전에는 선수를 선발할 때 우선순위가 기술, 체력, 정신력 순이었어요. 그런데 요즘 바뀌었어요. 정신력이 세 번째에서 첫 번째로 올라왔지. 유럽에서도 승부욕 없는 선수? 절대 최고 수준까지 못 올라옵니다. 요즘 세대는 어때요? 지고도 숙소 갈 때 웃으면서 가요. 그게 요즘 세대지. 이해해야지. 그래도 승부근성 강한 아이들이 있어요. 전북 최철순 같은 선수죠. 걔 눈을 봐요. 그런 선수들이 어려운 경기에서 제 역할을 해주는 경우가 많아요.”

최강희 감독. 김종원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닥공과 실리 사이에서

최 감독은 전북 시절 ‘닥공(닥치고 공격)’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지고 있을 때는 물론 이기고 있을 때도 끊임없이 몰아치는 전북 축구에 팬들은 매료됐다.

작년 12월 전북과 울산의 챔피언결정전 2차전. 최 감독은 0-0으로 팽팽하던 후반 초반 수비형 미드필더 정훈을 빼고 공격수 정성훈을 투입했다. 전북은 비기기만 해도 우승컵을 품에 안을 수 있는 상황인데 최 감독은 더 적극적인 공격을 지시했다. 미드필더 김상식이 경기 도중 벤치를 보며 팔팔 뛸 정도로 무모해 보였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전북은 선제골을 내주고도 2-1로 역전하며 정상에 올랐다. 내용과 결과 둘 다 잡았다.

많은 팬들은 궁금해 한다. 대표팀에서도 최강희표 닥공 축구를 볼 수 있을까. “쿠웨이트 전은 내용보다는 결과가 중요한 경기인데…. 솔직히 말해도 되나? 나 쿠웨이트 전에서도 닥공하고 싶은데. 그러면 안 될까. 닥공해도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쿠웨이트 분석은 이미 끝냈다.

“쿠웨이트는 6명이 중앙선 아래서 내려오질 않아. 4명으로만 공격하지. 그런데 쿠웨이트는 우리랑 비겨도 되는 상황이 아니거든. 걔네는 우리를 반드시 이겨야 돼. 우리가 선제골 넣으면? 쿠웨이트는 올라올 수밖에 없어. 그럼 다 득점도 가능해요. (만약에 선제골을 내준다면?) 그러면 골치 아파지지. 에이 그런데 안 그런다니까요. 쿠웨이트한테 안 진 다니까. 나 믿어요. 그럴 거면 대표팀 감독 맡지도 않았다니까.”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Bergkamp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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