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미 라소다 전 LA 다저스 감독은 “1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시즌이 끝나는 날”이라고 했다. 그것이 오프시즌의 고된 일면을 대변하는 말은 아닐까. 각 구단은 다음 시즌을 준비하느라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다. 특히 올 시즌 4강 진출에 실패한 한화(왼쪽), KIA(오른쪽 상), LG(오른쪽 하)의 겨울은 더 뜨겁다. 스포츠동아DB

토미 라소다 전 LA 다저스 감독은 “1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시즌이 끝나는 날”이라고 했다. 그것이 오프시즌의 고된 일면을 대변하는 말은 아닐까. 각 구단은 다음 시즌을 준비하느라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다. 특히 올 시즌 4강 진출에 실패한 한화(왼쪽), KIA(오른쪽 상), LG(오른쪽 하)의 겨울은 더 뜨겁다. 스포츠동아DB


2012 프로야구 겨울풍경

하위권 팀들 벌써 바쁜 겨울
마무리캠프 마치고 자율훈련 한창
쉼없는 땀방울…내년 시즌 채비

경제위기 여파 구단마다 대책 고심
스폰서 비용 대폭 삭감…허리띠 조여

류현진 ML행도 국내야구 흥행 악재


1981년 12월 11일 오후 2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에메랄드룸. 서종철 한국반공연맹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이 땅에 프로야구가 처음으로 탄생하는 기념될 날이며,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는 그 산파역으로서의 기쁨과 증인으로서의 책임을 함께 갖게 되었습니다.” MBC, 삼미, OB, 삼성, 롯데, 해태 등 6개 창단팀의 구단주를 대신해 모인 사람들은 서종철 이사장을 초대 커미셔너로 추대하며 한국프로야구의 출범을 알렸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매년 12월 11일 골든글러브 시상식을 여는 것은 프로야구 탄생의 그날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다. 올해 31번째 생일을 앞두고는 잔치가 엉망이 될 뻔했다. 다행히 우여곡절 끝에 새 식구를 맞이하기로 결정한 뒤 생일잔치 케이크에 31번째 초가 무사히 꽂혔다. 700만 관중 돌파를 비롯해 행복한 스토리가 많았던 2012년을 마감하는 멋진 해피 엔딩이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다. 지금 우리 주위로 다가오는 현실은 녹록치만은 않다.


○경제위기의 그림자가 차츰 다가온다!

최근 수도권 모 구단의 마케팅팀은 호떡집에 불이 난 상황이 됐다. 6억원짜리 스폰서계약이 중단될 처지다. 예상 못한 스폰서 중단 소식이다. 경제위기의 여파가 프로야구로 몰아닥치고 있다. 요즘 각 구단 마케팅 담당자들을 기존 스폰서와의 계약을 이어가기 위해 무척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대답은 신통치 않다. 각 기업이 경제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혹은 어려운 경영실적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스폰서 비용을 대폭 삭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700만 관중 동원의 실적도 소용이 없다. 이제 각 구단은 관행이라는 이유로 유지해왔던 여러 사업들을 재검토하고, 합리적으로 비용을 지출하기 위한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1995년 호황에 뒤이은 IMF 위기

1995년 한국프로야구는 엄청난 호황이었다. 최초로 500만 관중을 돌파했다. 1982년 143만명으로 시작해 1993년 443만명이 야구장을 찾았다. 1994년 420만명으로 떨어졌다가 1995년 540만 관중으로 불어났다. 폭발적이라고 표현할 만했다. 우리 프로야구가 마침내 전 국민의 여가로 자리 잡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2년 뒤 찾아온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사태는 프로야구의 연평균 관중수를 200만명대로 뚝 떨어트렸다. 2008년에야 500만명대로 회복됐다. 엔터테인먼트산업은 경제 환경에 따라 부침을 겪을 수밖에 없지만, 과거 한국프로야구는 변화에 너무 허약한 체질이었다. 삶이 빡빡하면 여가를 즐길 여유조차 없어진다. 인기는 물거품처럼 허무하다. 게다가 메이저리거 박찬호의 활약이 겹치며 한국프로야구는 연달아 강펀치를 얻어맞은 권투선수처럼 위태로워졌다.


○1996년 박찬호와 2013년 류현진

IMF 시절 빡빡한 삶에 찌든 사람들은 박찬호의 피칭에 기뻐하고 박수를 쳤다. 메이저리그의 화려한 구장시설과 역동적인 중계기술, 수준 높은 플레이에 밀려 한국프로야구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 LA 다저스가 국민구단이었다. 박찬호와 함께 뛰던 다저스 선수들의 이름이 우리 귀에 익숙해질수록, 한국프로야구선수들의 이름은 묻혀갔다. 2013년 다저스 마운드를 지킬 류현진은 박찬호보다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전망이다. 박찬호는 무명의 대학생 선수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케이스지만, 류현진은 한국프로야구에서 이미 이름을 널리 알렸던 존재다. 그의 피칭은 한국프로야구와 이런저런 면에서 비교될 것이기에 파괴력이 더 크다. 내년 한국프로야구가 류현진과 다저스 때문에 어떤 영향을 받을까.


○야구를 못하면 겨울이 더욱 바쁘다!

요즘 각 구단은 내년 준비에 들어갔다. 선수들은 마무리훈련을 끝내고, 자율훈련에 들어갔다. 성적이 나쁜 팀들과 선수들은 겨울이 바쁘다. 지금 한화는 혹한 속에서도 자율훈련에 한창이다. 야구선수의 캘린더는 자신의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슈퍼스타는 포스트시즌이 진정한 시즌 개막이지만, 스타는 4월이 개막이다. 팀에서 주전경쟁을 벌이는 선수는 스프링캠프가 개막이다. 주전 경쟁에서 이겨야 안정된 자리가 보장된다. 1·2군을 오가는 선수들은 마무리캠프가 새 시즌의 시작이다. 그곳에서 감독과 코치의 눈에 들어야 스프링캠프에 참가할 수 있다. 물론 해외전지훈련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한화의 전설 정민철은 1992년 빙그레에 입단한 첫해 해외전훈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빼어난 기량을 과시하며 스타가 됐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있다. 다만 그 기회를 잡느냐, 못 잡느냐는 선수들이 흘리는 땀의 질과 양에 달려있다.

하위팀은 프런트도 힘들다. 몇몇 팀의 프런트는 요즘 보름씩 휴가를 얻었다. 주머니도 두둑하다. 팀 성적이 좋았던 덕분이다. 이처럼 업무가 가장 한가한 시기를 활용해 화끈하게 쉬는 구단들도 있지만, 겨울나기가 더욱 힘든 구단들도 있다. 팀 발전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는 구단들이다. 야구단의 성적은 선수들이 올린다. 프런트의 노력과는 다소 상관성이 떨어진다. 팀의 성패는 프런트가 결정하지 못한다. 선수들이 몫이다. 구단 직원이 팀을 잘 나가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 별로 없다. 그 대신 사장, 단장의 잘못된 선택과 판단으로 팀을 망가뜨리는 것은 쉽다. 그래서 겨울에 프런트가 해야 할 일은 야구공부다. 특히 사장과 단장이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 문제는 야구가 어렵고 오묘해 1∼2년의 속성과정으로는 어렵다는 것이다.

전문기자 marco@donga.com 트위터 @kimjongk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