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퍼거슨 감독. 스포츠동아DB
“처제의 죽음…외로운 아내 곁에 있을 것”
OT 고별전 V…우승트로피 들고 축하연
고별사서 팬들에게 모예스 지지 부탁도
세계적인 거목이 정든 일터를 떠난 진짜 배경은 무엇일까. 간단하고 짧은 답이었지만 모두가 수긍되는 내용이었다. 바로 아내를 향한 사랑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를 유럽 최고 명문 클럽으로 일군 알렉스 퍼거슨(71) 감독은 13일(한국시간) 영국 맨체스터 올드트래포드(OT)에서 열린 스완지시티와 올 시즌 정규리그 마지막 홈경기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늘 나를 위해 희생한 아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은퇴를) 택했다”고 털어놨다.
미련이나 회한은 없었다고 한다. 세상에만 깜짝 뉴스였을 뿐, 이미 오래 전에 은퇴를 결심했다고 한다. ‘퍼거슨 은퇴’ 소식은 지난 주 초 갑자기 불거졌지만 명장은 작년 크리스마스 무렵에 마음을 굳혔다. 그는 “아내에게 최고의 친구였던 처제가 작년 말 세상을 떠나면서 마음을 다쳤다. 가족의 든든한 리더였던 아내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사랑하는 손자 손녀들이 많지만 처제의 자리를 누구도 대신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실 맨유는 홈 최종전 직후 은퇴 발표를 하려 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빨리 소문이 퍼지면서 계획을 바꿔야 했다. 퍼거슨 감독은 “아들들은 3월에 내 은퇴 계획을 접했지만 형제들은 지난 주 소식을 들었다. 비밀을 지키는 게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경기는 오직 퍼거슨 감독만을 위해 마련된 무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맨유의 우승 축하연이기도 했지만 진짜 주제는 ‘축복 은퇴’였다. 킥오프 전 맨유 제자들과 원정팀 스완지 선수들은 길게 도열한 채 경의를 표했고, 경기장 스탠드를 붉은 물결로 채운 8만여 관중도 모두 기립해 아낌없는 갈채를 보냈다.
안방 벤치에서 사령탑 자격으로 가진 최후의 90분도 드라마틱했다. 승부는 후반 42분에야 갈렸다. 치차리토의 첫 골(전반 39분)로 앞선 맨유는 후반 4분 상대 공격수 미추에게 일격을 내줬지만 수년간 득점과 거리가 멀었던 중앙수비수 리오 퍼디낸드의 결승골로 짜릿한 2-1 승리를 일궜다. 특별한 순간조차 퍼거슨 감독은 특유의 껌 씹는 속도로 초조감을,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린 채 짓는 환한 미소로 기쁨을 드러내 한결같은 모습을 보였다.
퍼거슨 감독은 고별사를 통해 “각 국 최고 선수들을 지도했던 난 운이 정말 좋았다. 오늘 함께 한 선수들이 우릴 말해준다. 환상적인 우승이었다. 난 은퇴하지만 인생에 맨유가 끝은 아니다. 대신 함께 고생하기보다 경기를 즐기고 싶다. 좋지 않을 때도 맨유는 나를 믿었고, 모두가 지지해줬다. 이제 여러분이 할 일은 우리의 새 감독(데이비드 모예스)을 믿고 지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