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다저스 하웰 아내 “남편 재기는 서로의 사랑 덕분”

입력 2013-11-12 0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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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웰 부부가 애견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 하웰 부부 제공

[동아닷컴]

인간은 누구나 시련을 겪는다. 하지만 그 시련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은 크게 달라진다.

LA 다저스 투수 J.P. 하웰(30)은 지난 2010년 어깨수술이란 큰 시련을 겪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제 하웰의 야구인생은 끝났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쏟아냈다.

하웰은 동아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의사를 찾아갔는데 어깨근육이 찢어져 수술이 불가피했다”며 “의사에게 수술 후 다시 공을 던질 수 있겠냐고 묻자 ‘재기할 수 있는 확률은 고작 15~20%’라고 했다. 지금이야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그 때는 정말 눈앞이 깜깜하고 두려웠다”고 말했다.

하웰이 겪은 시련은 이 것이 전부가 아니다. 어린 시절에는 외모 때문에 또래의 아이들로부터 놀림과 따돌림을 당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야구였다. 대학(미 남가주대) 시절에는 코칭스태프와의 갈등 때문에 학교를 옮기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시련이 찾아왔지만 하웰은 그 앞에 주저앉는 대신 이를 극복하고 일어서는 길을 택했고 그 결과 올 시즌 다저스 불펜의 핵심 역할을 했다.

하웰의 부인 헤더에게도 많은 시련이 있었다. 그녀의 나이 13세 때 겪은 부모의 이혼은 정신적으로 큰 충격이었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과 부모의 이혼 등 답답한 현실을 탈출하기 위해 어린 소녀 헤더가 선택한 것은 운동이었다. 그녀는 축구와 농구는 물론 육상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육상에만 전념했다. 주종목으로 800m를 선택한 헤더는 16세 때 전미 최고기록을 달성할 만큼 두각을 나타냈다. 올림픽 기대주로 각광을 받았고 대학(미 남가주대)에서 체육특기자 입학제의도 받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인 2000년 8월, 그녀에게 또 시련이 찾아왔다. 육상팀 동료들과 함께 크로스컨트리 연습을 하다 그만 절벽 아래로 추락한 것.

강에 떨어져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허리와 꼬리뼈가 심각하게 손상됐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재활의 시간을 이겨낸 헤더는 결국 다시 걷게 됐고 체육특기자로 대학(미 남가주대)에도 진학했다. 시련을 이겨낸 결과였다.

사진 | 하웰 부부 제공


하지만 의사는 그녀에게 무리하지 말 것을 권유했다. 위험을 감수하면 자칫 장애를 안고 평생 그 대가를 치르며 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갈림길에 선 헤더는 결국 육상을 포기했다. 그렇다고 자신의 삶마저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헤더는 2006년 졸업과 동시에 미국 폭스스포츠(Fox sports) 방송국에 조연출로 입사했다. 그리고 단 18개월 만에 메이저리그와 대학미식축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전국 방송의 진행자가 됐다. 남편 하웰보다 더 일찍 유명인이 된 것. 하지만 남편에게 ‘어깨수술’이란 큰 시련이 찾아오자 그녀는 과감히 자신의 일을 포기했다.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일보다 남편이 우선이었다”는게 그녀의 설명.

방송 일을 그만 두고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선 헤더는 남편의 어린 시절 왕따 경험을 모티브로 한 동화책(The adventures of Dangles)을 출간했다. 아이들 사이에서 죄의식 없이 성행하는 놀림과 따돌림이 나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올 초에는 남편과 함께 ‘바른길 찾기(Discover your path)’ 재단도 설립했다. 자신들의 불행했던 경험을 토대로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꿈을 향해 바른 길을 찾아 전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동아닷컴은 최근 국내언론 최초로 하웰의 부인 헤더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비록 오프시즌이지만 하웰 부부가 최근 지독한 감기에 걸려 이메일로 몇 차례 일정을 조정한 끝에 인터뷰가 이뤄졌다.

다음은 헤더와의 일문일답.

-전화상이지만 만나게 돼 반갑다. 감기에 걸렸다고 했는데 몸 상태는 어떤가?

“안 그래도 지금 막 의사를 만나고 나오는 길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목소리가 안 나올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정상적인 내 목소리는 아니다. 당신과 첫 대화인데 목소리가 이상해 미안하다.”

-전혀 그렇지 않다. 당신이 예전에 방송을 진행할 때처럼 듣기 좋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본의 아니게 인터뷰 일정을 연기해 미안하다.”

사진 | 하웰 부부 제공


-오히려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줘 고맙다. 먼저, 재단 얘기부터 하자. 재단을 설립하게 된 동기와 설립 년도를 알고 싶다.

“재단 설립은 남편과 이미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오던 일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탬파베이에서 뛸 때 어깨수술과 재활 등의 시련을 겪어 잠시 계획을 접어야만 했다. 그러다 올 초 다저스로 이적하게 됐고, 이 곳 캘리포니아는 남편과 나에게 고향 같은 곳이어서 시기상이나 환경적으로 적기라고 생각했다. 재단을 설립하게 된 동기는 남편이나 나나 팬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 사랑을 조금이라도 돌려주기 위한 방편으로 재단을 설립하게 됐다.”

-현재 재단 홈페이지(www.discoveryourpath.com)를 운영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멘토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 외에 다른 활동도 병행하는가?

“그렇다. 지금처럼 오프시즌에는 항상 남편과 함께 아이들이 있는 학교나 YMCA 또는 고아원 같은 단체를 찾아가 그들에게 우리의 경험도 들려주고 아울러 우리가 준비한 야구공이나 내가 쓴 동화책 등을 선물로 주며 그들을 격려한다. 시즌 중에도 남편이 LA에서 쉬는 날 늘 아이들을 찾아간다. 때로는 아이들을 다저스 구장으로 초대해 행사를 열기도 한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비용도 많이 들 것 같다.

“그렇다. 지금은 전적으로 우리가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웃으며) 적지 않은 금액이다. 앞으로 기업이나 단체들도 이 일에 동참했으면 하는데 잘 됐으면 좋겠다.”

-지금은 전업주부이지만 과거 유명한 스포츠방송 진행자였다. 일을 그만둔 계기는 무엇인가?

“남편에게 어깨수술이란 큰 시련이 닥쳤기 때문이다. 수술 뿐만 아니라 당시에 기약 없는 재활을 해야만 했다. 남편이 좋은 시설에서 재활을 하기 위해 당시에 연고도 없는 앨라배마 주로 이주했다. 남편에게 내가 꼭 필요한 시기였다. 그래서 일을 그만두게 됐다.”

-전국 방송의 진행자 자리를 포기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다.

“물론이다. 게다가 당시에 더 좋은 조건의 스카우트 제의도 있었다. 하지만 일보다 남편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포기할 수 있었다. 후회하지 않는다. “

헤더 하웰. 사진 | 하웰 부부 제공


-고3 시절 연습을 하다 중상을 당했다. 부상을 극복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내가 부상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어머니의 덕이다. 내 어머니는 항상 긍정적이다. 내가 부상을 당했을 때도 ‘세상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며 희망을 잃지 말라고 격려했다. 어머니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아울러, 부상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남편이나 나나 인생에서 건강이 가장 중요하고 우선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물론 부상의 여파로 인해 아직 남편과 나 사이에 아이가 없다. 하지만 희망을 갖고 계속 노력하고 있으니 분명히 좋은 소식이 생길 것이라 믿는다.”

-16세 때 이미 전미 최고기록을 달성했다. 부상이 없었다면 올림픽 금메달도 노려봤을 텐데 아쉬움은 없는가?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올림픽에 출전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처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시련은 있었지만 그 경험을 통해 어린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저마다 바른 길을 찾아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그리고 그들이 그 길을 긍정적으로 걸어가다 보면 결국에는 사랑과 안정을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다.”

-당신과 하웰의 러브스토리를 듣고 싶다. 어떻게 만났으며 언제 결혼했나?

“남편과 나는 대학(미 남가주대) 시절 캠퍼스 커플이었다. 그러다 남편이 대학 2학년 때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 대학으로 옮겼다. 본의 아니게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된 것이다. 비록 멀리 떨어져 지냈지만 친구 같은 연인으로 지내면서 서로 맡은바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그러다 남편이 탬파베이에서 뛰던 지난 2009년 3월 17일 약혼했고 그 해 11월 7일 결혼했다.”

-그렇다면 조만간 결혼기념일이겠다. 미리 축하한다.

“고맙다.”

-하웰은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다. 야구선수가 아닌 남편으로는 어떤가?

“(주저 없이) 최고 중 최고이다. 남편은 정말이지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깊고 특히 마음이 너무 따뜻한 남자다. 야구 선수 하웰보다 남편 하웰이 그래서 더 멋지고 자랑스럽다.”

사진 | 하웰 부부 제공


-남편 하웰과 시즌 중 인터뷰를 했을 때 집에서 오락을 자주 한다고 하더라. 요즘도 그런가?

“하하. 그렇다. 오락을 자주 하더라도 늘 함께 있을 수 있어 너무 좋다. 그 것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다. 시즌 중에 자주 볼 수 없기 때문에 지금처럼 오프시즌이 야구 선수 부인들에게는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다.”

-남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책의 후속편은 언제 나오는가?

“후속편은 현재 집필 중이다. 아마 내년 스프링캠프 때 쯤이면 출간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남편과 나의 경험담을 소재로 한 책을 우선 집필 중인데 이 책은 앞으로 두 달 안에 출간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대된다. 책이 나오면 꼭 사서 보겠다. 나중에 만나면 책에 사인 부탁한다.

“물론이다. 내년 스프링캠프 때 만나면 꼭 사인해 주겠다.”

-언론 보도를 보면 당신을 포함해 다저스 선수 부인들이 서로 친하게 지내는 것 같다. 다저스 부인들만의 특별한 모임이 있는가?

“특별한 모임은 없다. 하지만 경기 전이나 경기 후에 모여 함께 운동도 하고 식사도 하며 서로 친하게 지낸다. 커쇼, 그레인키, 이디어 부인 등 다저스 부인들 중에는 참 좋은 사람들이 많다.”

-끝으로 야구선수의 부인으로 살기에 힘든 점이 있다면?

“좋은 질문이다. 가장 힘든 점이라면 연간 162경기를 치를 만큼 시즌이 길다 보니 사랑하는 남편과 장시간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 그래서 지금처럼 항상 함께 지낼 수 있는 오프시즌이 너무 좋다.”

-오늘 몸도 불편한데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줘 고맙다. 빠른 쾌유를 빈다.

“천만에. 비록 전화상이지만 이렇게 만나게 돼 반가웠다. 연락해 줘 고맙고 내년 스프링캠프 때 직접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로스앤젤레스=이상희 동아닷컴 객원기자 sang@Lee22.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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