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야기] 가을만 되면 겸손해지는 ‘시한폭탄’ 김현수

입력 2015-10-20 05:4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19일 창원 마산야구장에서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NC 다이노스와 두산 베어스의 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가 열렸다. 5회말 2사에서 NC 김태군의 플라이 타구를 두산 김현수가 잡아내고 있다. 마산|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19일 창원 마산야구장에서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NC 다이노스와 두산 베어스의 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가 열렸다. 5회말 2사에서 NC 김태군의 플라이 타구를 두산 김현수가 잡아내고 있다. 마산|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저는 핵폭탄입니다…언제 터질지 몰라요”

“아무래도 제가 폭탄인 것 같습니다. 우리 덕아웃에 터지느냐, 상대 덕아웃에 터지느냐, 그게 문제죠.”(준PO 미디어데이)

“이번에도 핵폭탄은 저입니다. ‘자폭’하지 않도록 열심히 뛰겠습니다.”(PO 미디어데이)

‘폭탄.’ 두산 김현수(27)가 올 가을 가장 입에 많이 올린 단어다. 스스로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분류한 것이다.

김현수는 언젠가부터 가을만 되면 겸손해졌다. 두산 타선에서 없어선 안 될 귀중한 존재인데도, 가을에는 스스로를 낮춰도 너무 낮춘다. 7년 전 가을의 기억이 여전히 아프게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역대 최연소 타격왕에 오르며 한껏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2008년 한국시리즈. 두산이 2-3으로 뒤진 3차전 9회말 1사 만루, 그리고 0-2로 뒤진 5차전 9회말 1사 만루. 2번의 기회가 모두 김현수의 앞으로 돌아왔다. 결과는 모두 병살타. 1루를 지나 외야까지 달려간 김현수가 돌아오지 못한 채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는 동안, SK 선수들은 한데 모여 우승 세리머니를 했다. 스무 살 타격왕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그렇게 가을의 아픔을 달랬다.

그때 두산 사령탑은 지금 PO에서 두산과 맞붙고 있는 NC 김경문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당시 ‘마지막 순간에 김현수를 교체할 생각은 해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 팀에 김현수보다 나은 타자가 누가 있느냐.” 그리고 덧붙였다. “다음에 또 기회가 온다면 현수가 두산을 우승시켜줄 것이다.”

그 김현수는 지금 나이를 일곱 살 더 먹었다. 그 후로도 숱한 포스트시즌 무대를 거치고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지난해 두산이 포스트시즌 경쟁에서 탈락한 탓에 “야구를 안 하니까 가을이 너무 재미 없었다”는 김현수다. 환절기마다 심한 알러지성 비염(도핑테스트에 걸릴까봐 약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으로 고생하면서도 “가을에는 야구를 꼭 하고 싶다”는 그다.

그런 김현수에게 가을잔치는 여전히 설렘이자 부담이다. 재미 이상의 압박감이 찾아온다. 넥센과의 준PO 4차전 9회초 또 한번의 1사 만루 기회가 돌아왔을 때, 김현수는 ‘이렇게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순간이 꼭 한번은 올 줄 알았다’는 생각부터 했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김현수는 3번째 ‘9회 1사 만루’서 2타점 적시타를 쳤다. 과거의 아픔을 스스로 씻어냈다. 이전과는 다른 김현수가 됐음을 만천하에 알렸다.

김현수는 올 시즌이 끝나고 FA(프리에이전트) 자격을 얻는다. 그는 “올해 우승을 한다면 무조건 두산에 남겠다”는 무모한(?) 공약까지 내걸었다. 물론 이 약속은 지켜질지, 안 지켜질지 아무도 모른다. 김현수는 그저 “그만큼 우승에 대한 희망이 간절하다는 뜻으로 해석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나는 지금도 걸어다니는 폭탄이에요. 언제 터질지 몰라요.” 가을의 징크스를 훌훌 털어낸 지금도, 그는 여전히 김현수라는 ‘폭탄’의 가치를 스스로 너무 낮게 평가하는 듯하다.

마산 |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