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나보다한수위인우리남편

입력 2008-12-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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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제가 30대였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하루는 거울을 보고 있는데 머리에 새치가 많은 겁니다. 그래서 보일 때마다 조금씩 뽑기 시작했는데, 한 번은 머리를 넘기다가 무수히 많은 새치를 발견했습니다. “아니, 웬 새치가 이렇게 많아? 내가 그전부터 ‘뽑는다. 뽑는다’하고 안 뽑았더니, 이게 이렇게 많아졌네∼ 오늘은 그냥 맘먹고 다 뽑아버려야겠다”하고 자리에 앉아 거울을 보며, 보이는 대로 하나씩 새치를 뽑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반도 안 뽑았는데, 제 앞에 흰머리가 수북하게 쌓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어? 이러다 완전히 대머리 되겠네…” 저는 거기서 스톱∼ 하고 말았습니다. 새치도 새치지만, 그렇다고 대머리가 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한 동안 그냥 두고 살았더니, 지금은 새치가 흰머리가 돼서,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미용실에서 염색을 깔끔하게 하는 날은 마치 여자들 화장하는 것처럼 기분 좋고 예쁜데, 일주일만 있으면 가르마 사이로 하얀 머리가 스멀스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하얀 머리만, 부분 염색을 해주면, 일주일 뒤엔 귀밑머리가 또 하얗게 올라옵니다. 또 다시 부분 염색을 해주고 그렇게 서너 번 정도는 해줘야, 나중에 전체 염색할 때까지 버틸 수가 있습니다. 어휴 지겨운 흰머리∼ 머리카락만 넘겨도 그득한 흰머리 때문에, 속상해 죽겠습니다. 그런데 제 남편이요. 저랑 동갑인데, 남편 머리는 아직도 새카맣고, 흰머리가 잘 안 나는 겁니다. 그걸 보면 아무리 남편이지만, 솔직히 샘이 납니다. 그래서 집에서 부분염색 하는 날은 괜히 남편에게 투덜대곤 했습니다. 어느 날, 남편 머리를 봤는데, 흰머리가 그 것도 두 개가 정수리에 나 있는 겁니다. 그걸 본 순간 제가 이렇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흰머리를 축하합니다∼∼∼ 짝짝짝” 하고 박수까지 쳤더니 남편이 “아 뭐야∼ 이거 흰머리 아니고 새치야 새치. 그리고 봤으면 바로 뽑아줘야지, 어떻게 당신은 노래를 부르고 있냐∼ 아, 노래 그만 부르고 빨리 뽑아. 난 보이지도 않아서 못 뽑는단 말이야∼” 하며 머리를 막 들이밀었습니다. 저는 절대 안 뽑아줬습니다. 같이 늙어가야지, 그걸 제가 왜 뽑아줍니까? 그런데 며칠 후 저녁에, 남편이 퇴근해 들어오면서 “자∼ 선물” 이러고 웬 립스틱 하나를 건네주는 겁니다. 제가 “응? 이거 웬 립스틱이야? 어머, 까만색이잖아∼ 이걸 어떻게 입술에 발라∼” 했더니 “그거 립스틱 아니야. 머리에 바르는 흰머리 커버용 약이야. 염색 못 하고 급할 때, 립스틱 바르듯이 그렇게 발라주면 된다더라” 하면서 사용법까지 자세히 가르쳐 줬습니다. 미처 예상도 못 했던 선물을 사다 줘서 고맙기도 하고, 또 어찌나 미안하던지… 흰머리 났다고 놀린 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역시 우리 남편은 저보다 한 수 위인 것 같습니다. 경기도 시흥| 김도현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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