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이 금메달 한 풀어주기를…
때로는 핏대를 세우다가 임계숙의 명찰을 보고는 “하키 선수가 아니었냐”며 한 발 물러서는 고객들도 있다. “선수시절 팬이었다”는 말을 들을 때면 스틱을 잡은 듯 손이 꿈틀거린다.
임계숙은 여전히 1년에 한·두 번 OB모임에 나가 필드에 선다. 연습경기를 펼쳤던 하키대표팀 김종은(22·아산시청), 김미선(25·KT)은 “처음에는 살살하시다가도 땀이 좀 나기 시작하면 여전히 한두 명 제치는 것은 우습다”고 했다.
임계숙의 바람은 후배들이 자신의 금메달 한을 풀어주는 것이다. 2008년 8월은 임계숙에게 잔인한 달이었다. 근무시간에 경기가 펼쳐질 때면 컴퓨터 앞에 앉아 베이징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우리 때는 지금보다 지원이 훨씬 좋았어요. 실업팀에서는 선수들에게 정직원 신분을 보장해줬고, 해외전지훈련도 마음 놓고 갔지요. 이 정도 여건에서 세계 최강팀들과 대등하게 싸운 후배들도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마무리는 역시 하키후배들 이야기였다. 바깥쪽을 향할 듯하다 다시 안쪽으로 구부러진 하키스틱의 헤드처럼, 하키를 떠났지만 다시 하키를 향해있는 그녀의 마음. 임계숙은 천상 여자하키사상 최고의 포워드였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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